이삭줍기 환상문학의 두번째 작품 책 <바텍>이 나왔다. 열림원의 '이삭줍기 시리즈'는 다양한 세계문학 목록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시리즈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세계문학 작품 외에 문화적 이질감이나 특정 나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명작들을 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프랑스 작가 아벨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이상줍기 환상문학의 첫번째 작품이었다면, 두번째 작품은 바로 영국 작가 윌러엄 벡퍼드의 <바텍>이다.
이 작품에는 특이한 배경이 있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윌리엄 벡퍼드가 1782년 <바텍>을 불어로 썼다. 그 후, 새뮤얼 헨리가 저자의 감독하에 이것을 영어로 번역했지만 1786년 영국에서 이 번역판을 출간할 때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치 아랍의 텍스트를 번역한 것 처럼 꾸몄다고 한다. 결국 "벡퍼드는 1816년 내용과 주석을 고쳐서 제3판을 냈고, 영어판 <바텍>은 이 제3판을 가리킨다(p.183)"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현재의 <바텍>역시 제3판이 원전인 셈이다.
책은 이슬람 국가의 칼리프 바텍이 신 - 지아우르 - 를 따르지 않고 재물과 욕정을 탐하다 저주를 받는 이야기다. 책에는 두 가지 큰 욕망이 등장한다. 바텍의 어머니 카리타스의 욕망과 바텍의 그것이다. 카라티스가 절대권력으로 모든 신하들과 재물을 활용해 신조차 압도하려드는 반면, 바텍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과 풍류를 즐기는 데 그친다. 이런 대조적 설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해지며 독자들에게 점점 카리타스의 위세에 눌린 칼리프 바텍이 초라해 보이도록 한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고 하는 인간, 또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을 하려고 하는 무모한 인간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p.22)”
이야기는 풍부하고 과장적이다. 공상과 상상의 극한이라고 할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묘사는 이야기 속 장면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그리게 만든다.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부분은 바로 '공차기'다. 소설의 초반과 후반에 마치 수미상관을 노린 것처럼 공차기가 등장한다. 초반의 공차기가 인도인을 공으로 몰아서 바텍과 궁중 신하들이 차는 것이라면, 후반의 것은 바텍이 공이 되어 온 도성 사람들이 그 공을 차기 위해 서로 달려드는 장면이다. '공'이 된 주체는 다르지만 모두 '분출'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하고, 마지막의 공차기는 도성 사람들의 분노로 읽힌다. 더 나아가 내게는 바텍의 몰락으로 보여 쾌감마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