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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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무실에 앉아 한숨부터 쉬었다. 회사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팀별 1/3의 인원만 출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더 나아가 우리팀 리더는 육아를 하고 있는 직원들은 100% 재택근무를 시키겠다는 자체결정을 내렸다. 직원이 네 명인 팀에서 육아중인 팀원은 절반이다. 결국 나와 또 다른 한 명이 번갈아가면서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화가났다.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


책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에서 정여울은 나이, 포기, 선택, 독립, 관계, 자존감 등 20개의 키워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뭐랄까. 단순한 위로는 아니다. 대신 자신의 30대를 반추하며 그때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공감과 통찰로 읽는 이의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준다. 정여울 작가는 '나의 일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서 글쓰기라는 일을 언급하며 "'내가 일을 함으로써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깨닫는 마음씀씀이야말로 소중한 마음 챙김의 기술이 아닐까(p.212)"라고 말한다. 일이란 죽지못해 살고, 입에 풀칠은 해야하니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기 보다, 자신과 세상의 연결 끈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맞네, 맞다.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속에서 각도를 10도만 돌려보면, 프리랜서로 혼자 일할 때의 내가 있다. 더럽고 치사하고 화나고 억울해도 돈은 벌어야 하니 고객님 말에 대답봇처럼 반응하며 일을 꾸리던 때다. 시공간의 자유로움 대신 나는 이 사람을 놓치면 먹고살 걱정을 해야했다. 친구를 만나 커피 한잔 순순히 사주지 못했던 그때, 나는 얼마나 '소속'을 원했던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가 있다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당하게 홀로 살아가는 내가 자랑스럽기보다 걱정되고 불안하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책에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내 일을 잘해냈는가'를 묻기 전에, 이제는 조금 색다른 질문을 해보자. 나는 일을 통해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었는가. 일을 통해 나 자신의 마음은 얼마나 크고 깊어졌는가.(p.212)"라고. 나는 어떠한가. 누군가의 일을 대신 떠맡는것도,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냐 집이냐의 물리적 공간 비교로 마음을 날카롭게 돌렸다. 그렇게 동료를 원했으면서, 같이 있는 동료의 상황도 보듬지 못하는 나를 보니, 작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30대는 내게 찬찬히 가르쳐주었다. 나이 들수록 책임이 커지는 것은 부담감만 커지는 게 아니라 능력, 관계, 인격, 나아가 내 인생의 울타리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책임은 늘 무겁고 어려운 것이라고 두려워하던 내가, 지금은 더 많이 책임을 기꺼이 떠맡는 삶을 꿈꾼다. 더 많은 책임이란 더 많은 사랑을, 더 깊은 우정을, 더 뜨거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p.11)

책장을 넘기며 작가를 들여다보고 나를 끄집어 낸다. 일하는 나, 선택하는 나, 고민하는 나, 흔들리는 나, 그리고 살아가는 나. 정여울 작가의 한 마디를 읽으면서 그 '나'들은 간혹 부끄럽기도 혹은 자랑스럽기도 하다. 먼저 이 지난한 시간을 보낸 언니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나의 언젠가 저질렀던 행동에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한탄도 하게 된다. 안도가 된다면, 작가도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동질감 뿐. 작가의 문장에 눈이 머물며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나를 놓아두고 토닥이자 생각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있다. 작가의 말처럼 30대는 무언가를 진짜로 해낼 수 있는 시간들이다. '누군가와의 비교대조로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기 보다 '내 안의 감정'에 솔직하자. 나를 타인의 삶처럼 만들기 위해 애쓰기 보다 내 안의 진심어린 누군가를 살펴보고 안아주자.' 리커버에디션으로 출간된 정여울 작가의 책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통해 나는 그런 마음들을 스스로에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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