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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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작가의 책 <산책>에는 소설 <산책>과 <경유지에서>가 담겼다. 표제작 <산책>은 자매를 통해 '집'에 대한 관점을 드러낸다. 윤경은 서울의 리모델링한 아파트에 산다. 은행 이자에 시달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에 숨이 가쁘다. 반면, 여경은 경기도 외곽의 새 아파트에 살고 있다. 동네 주민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혼자로서의 삶에 퍽 만족하는 모습이다. 핏줄로 맺어진 윤경과 여경은 '산책'을 하며 '집'에 대한 관점과 욕망을 확인한다. 자신의 바람과 상대의 처지를 비교해가며.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의 상황과 관점에 따라 해석하도록, 어떤 쪽의 편도 들지 않는다. 여유롭고 고즈넉한 산책 속에 드러나는 자매의 신경전, 묘한 속내가 흥미롭다. '집'은 우리에게 그렇게나 복잡한 존재인걸까.

표제작이 선천적 관계 - 자매 - 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경유지에서>는 후천적 관계를 설정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영어학원을 다니게 된 이화는 그곳에서 에릭을 만난다. 이화는 에릭에게 '그냥' 집주소를 건네고, 둘은 동거를 하게된다. 이화는 에릭과 섹스를 하고 그의 시중을 들고 생활비를 댄다. 가끔 에릭이 '이 정도까지? 다 들어준다고?' 묻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이화는 불평 한마디 없이 살아갈 뿐이다. 이화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건 소설의 서두에 등장하는 '엄마의 죽음'과 연결된다. 또 이화는 에릭을 보며 '느닷없이' '기묘한 느낌'(p.48)을 받는다. 그러나 둘을 결정지은 건 에릭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대로 이화와의 관계를 매듭짓는다. 두 인물의 삶, 모두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특히 이화의 행동은 '방기'에 가깝다. 어렵게 근거를 찾아본다면 엄마의 죽음, 시끄러운 말들 정도가 있겠다. 고영직 문화평론가는 소설 <경유지에서>가 '외로움'에 내몰린 인물을 통해 '경유하듯' 사는 삶(p.71)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소설의 엔딩은 이화의 '달라질 삶'을 기대하게 한다. 스스로를 돌보며 나아가리라는 결심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에릭과의 시간이 이화에게 '경유지'였던 모양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산책'이 등장한다. <산책>이 자매의 산책을 <경유지에서>는 이화와 에릭의 이별 전야의 산책이 등장한다.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생각을 고르게 하는 '산책'이 누군가에게는 집을 꿈꾸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공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작가는 삶에 대한 방식, 불안, 욕망, 자기돌봄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물들의 성격과 구성이 명확해 장면은 확실하게 그려지는데, 여운은 가늘고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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