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과 경이 I21총서 1
이영광 지음 / 천년의시작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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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악연일 수도 호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사놓고 몇 년 째 읽지 않는 책이 있다면 악연일까? 호연일까? 출간과 동시에 구입해서 바로 읽었다면 그건 호연일까? 악연일까? 끙끙대며 읽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그건 악연일까? 호연일까? 이상한 몰입의 힘에 이끌려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자 진이 다 빠지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건 호연일까, 악연일까?

 

최근 이런 책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출간 소식은 출판사의 개인 메일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서점에 깔리기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시름과 경이 』라는 제목에 기대어 시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저자가 시인이라는 믿음도 있었겠고 그가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서 소개한 두보의 시에 대한 기억도 있었으리라.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423413&cloc=olink|article|default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공부하여 쓴 글과 시와 시 쓰기에 대한 글을 골라 묶’은 책이다. 본문은 총 네 부분으로 나뉘었다. 1부의 글에서는 시의 형식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특히 소월시의 수미상관을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 진단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2부는 무속의 세계로 미당의 시를 해석하고 있는데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3부는 오탁번, 조정권 등 시인들의 시세계를 다루었다. 오탁번 선생의 ‘폭설’이나 ‘굴비’처럼 적나라한 욕이나 성애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시들이 사람들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늘 궁금했었다. 나는 있는 사실을 말해도 외설이 되고 음담이 되는데 말이다. 저자는 이런 나의 궁금증을 마치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이 알려주었다. 조정권론에서 저자는 ‘미묘하고 역동적인 분열의 느낌’이 눈길을 끈다고 했다. 내가 시집 『고요로의 초대』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http://blog.aladin.co.kr/734872133/4590458)’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보유’라는 제목으로 5편의 산문을 묶었다. 바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책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세 권의 시집을 낸 사람으로서, 시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시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동틀 때까지 잠들 수 없었다.

 

시의 황홀경을 맛본 자가 다시 그것에 접하려 할 때, 아마도 그 정신의 상태는 모종의 비상한 ‘몰입’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몰입이란 정신이 딴 데로 가 버렸다는 것, 그는 현실이 아닌 곳에 자기 아닌 다른 이로 다가가서, 없던 말을 얻어 와 이곳을 충격에 빠뜨림으로써 낯선 진실을 드러내는 자이다. 이처럼 시는 어떤 특별한 몰입을 통해, 그러니까 “모든 감각들의 이치에 맞는 착란(랭보)”을 통해 만나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고, 특별한 순간에 태어나는 낯선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시 쓰기는 어렵다. 제 감각과 의식을 지우면서, 그러나 지성의 컨트롤타워를 유지한 채 미쳐야 하기에, 시에 미치는 것과 미치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265쪽)

 

이렇게 시는 어디선가 온다. 의식 하의 몸의 소리가 의식에 남기는 흔적이 곧 시의 순간일 것이다.……그러니 시에 닿으려면 아예 그것을 의식 차원에서는 잊고 있거나, 아니면 찌른 자리를 또 찌르듯 무의식의 작동 메커니즘에 다시 몸을 맡겨야 한다. 그렇게 시인은 괴롭게 넋을 잃는다. 넋을 잃다니, 하면서도 시인은 그렇게 제 몸의 시간의 수라장을 건너간다. 넋을 잃으면 많은 것을 더 잃겠지. 생활의 균형, 페르소나의 분실 같은 것. (-270쪽)

 

 

 

‘책은 사람을 비추는 종이거울’이라고 썼던 적이 있었다. 시를 흉내 내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내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을 만난 것 같다. 시인의 종이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하기가 비에 젖은 닭 같다. 시와의 치열한 만남 앞에서 나는 헐겁기가 터진 그물망 같다. 이렇게 부끄러워 본 적 없었다. 아니 창피했다. 나는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흉내 내는 얼치기 독자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잔뜩 기가 죽어서, 때로는 질투에 떨면서 인정해야했다. 카프카였던가?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한 이가? 나는 지금 카프카가 말하는 도끼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은데 이 책은 내게 과연 악연일까, 호연일까?

 

갑자기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대한민국의 국가 대표급 시인이 낸 책인데 어째서 그 흔한 보도자료 한 장이 없는 걸까? 네이버 책에서는 아예 검색도 안 된다.

“시는? 정신을 조금만 잃고, 삶은?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라더니, 시인은 아예 삶에서 정신을 놓아버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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