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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안도현
도끼 한자루를 샀다
눈썹이 잘생긴 놈이다
이 놈을 마루 밑에 밀어 넣어두고 누었더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드디어 도끼를 가졌노라,
세상을 명쾌하게 두 쪽으로 가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살아가다 내 정수리에 번갯불 같은 도끼날이 내려온다해도 이제는 피하지 않으라라, 생각하니
내 눈썹이 아프도록 행복하였다
장작을 패보겠다고
이튿날 새벽, 잠을 깨자마자 도끼를 찾았다
나무의 중심을 향해 내리치면 나무는 장작이 되고 장작은 불꽃이 되고 불꽃은 혀가 되고 혀는 뜨거움이 되고 뜨거움은 애욕이 되고 애욕은 고독이 되고
그리하여 고독하게 나는 장작을 패다가 가리라 싶었다
도끼를 다룰 줄 모르는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옛적 아버지처럼 손바닥에 침을 한입 뱉고
균형을 읽지 않으려고 양발을 벌린 다음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도끼를 치켜들고는
(허공으로 치켜올려진 도끼는 구름의 안부와 별들의 소풍날짜를 잠깐 물어보았을 것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고요한 세상의 한가운데로
도끼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내 도끼는
나무의 중심을 가르지 못하였다
장작을 패는 일이 빈번히 빗나가는 사랑하는 일과 같아서
독기 없는 도끼는 나처럼 비틀거렸다
'나무는 장작이 되고 장작은 불꽃이 되고 불꽃은 혀가 되고 혀는 뜨거움이 되고 뜨거움은 애욕이 되고 애욕은 고독이 되'는 과정. 수많은 과정을 거쳤지만 나무는 결국 고독이 되었다. 나무와 고독은 한 족속이었구나.
백련사 마당에 빈가지를 허공에 뿌리처럼 박고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배롱나무. 고독의 열매인 듯 붉은 입술을 열지 않는 동백에게 왜 마음이 끌렸는지 이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