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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本紀 ㅣ 까치동양학 22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4년 3월
평점 :
사기 본기
본기 12권은 제왕의 기록이다. 말 그대로라면 총 12명의 제왕이 등장하는 셈이다.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의 우임금까지에는 완벽한 인간형이 등장한다. 권력다툼이 없고 적도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임금은 세습되지 않았다.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순임금이다. 순에게는 고수라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맹인이다. 후처가 낳은 아들을 편애해서 항상 순을 죽일 궁리만 한다. 창고에 올라가 벽을 바르게 하고는 아래서 불을 지르고 우물을 파게 시키고는 흙을 퍼부어 구멍을 막아버린다. 지붕에서 순은 삿갓을 낙하산처럼 사용하여 목숨을 지키고 우물을 팔 때는 몰래 파놓은 다른 길로 도망쳐 나온다. 이렇게 당하고도 복수는커녕 화를 내지도 않는다.
주본기에서 부터 무모한 왕들이 등장하며 악의 축을 이룬다. 익히 알고 있는 진시황제와 여태후가 가장 악랄한 왕은 아니었을까. 죽는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던 진시황제는 그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실제 인물의 크기로 만든 인형들을 줄 세웠고 자동으로 발사되는 화살, 수은이 흐르는 강, 도롱뇽의 기름으로 양초를 만들어 오랫동안 꺼지지 않도록 한 등불 등을 설치하여 일반인들의 근접을 막았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는 비를 세우며 온 나라를 순시했는데 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의 신하였던 이사는 황제가 외지에서 서거하자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상을 치르지 않았다. 여름날 시체를 옮기니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터 시황제의 아들 호해와 이사, 조고 등은 시체를 소금에 절이인다. 그리고 절여말리 고기를 함께 수레에 실어 어물냄새와 시신 썩는 냄새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을 통일하고 호령하던 황제의 종말이다.
여태후는 유방의 아내였다.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갖은 수를 다 써서 이긴다. 한나라의 고조가 된 유방은 본색을 드러내 주색을 즐기게 된다. 그는 여태후를 제쳐놓고 척부인과 그의 아들을 총애했다. 유방 사후 여태후는 이 척부인의 눈을 뽑고 귀를 잘라 불태우고 사지를 절단하여 몸둥이만 남은 것을 돼지우리에 넣어 인간돼지라 부른다. 저 많은 신체형을 가하면서 한가지 씩 형벌을 가할 때마다 죽지 않도록 치료를 병행 했다한다. 도대체 여태후는 이런 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사마천은 여태후 본기 뒤에 태사공의 이름으로 ‘고후가 여성으로서 황제의 직권을 대행하여 모든 정치가 방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형벌을 가하는 일도 드물었으며 죄인도 드물었다.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을 쓰니 의식은 나날이 풍족해졌다.’고 덧붙여 두었다. 여태후는 척부인 한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나라의 평정을 유지했다는 말인가?
본기의 클라이맥스라 할 부분은 책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항우본기이다. 항우가 등장하는 시간은 5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내게는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갓 서른 정도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항우와 유방의 인물비교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항우가 스스로를 서초패왕이라 불렀지만 그 당시 초나라는 남초, 북초, 동초, 서초 등의 구분이 있었으니 초나라를 제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항우를 본기에 그것도 가장 한 가운데에 스펙터클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항우본기에는 사실 항우에 관한 이야기보다 유방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한고조 이후의 여태후본기, 효문본기, 효경본기, 효무본기는 모두 한(漢 )나라 제왕의 기록이다. 본기의 대부분을 漢代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사마천은 어떤 의도로 이렇게 漢代의 비중을 많이 둔 것일까? 본기와 세가, 열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며 읽다보니 손이 바쁘고 진도가 안 나간다. 하지만 본기나 세가를 따로따로 읽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재미가 배가 된다. 제1참고서로 필수였던 고우영의 <십팔사략>은 잠시 접어두었다. 십팔사략없이 책을 읽으면서 고우영의 가치를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