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메 소세키 문명론
나쓰메 소세키 지음, 황지헌 옮김 / 소명출판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강연록을 모았고 2부에는 아사히신문 입사의 변을 비롯해서 평론 등을 모아 시론(時論)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강연록은 1911년 6월부터 1914년 11월까지의 총 8편을 실었다. 1910년 위장병으로 대량의 토혈을 한 후 다음해 2월까지 병상생활을 한 후이다.

2월에는 문부성의 문학박사학위 수여를 거부했고 8월에 관서지방에서 개최된 아사히신문사 주최 강연회에 참석했다. 아사히신문사 주최 강연회였으므로 반드시 소세키가 강연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강연을 할 때마다 나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 하지만 아카시에서의 <도락과 직업)>, 와카야마에서의 <현대 일본의 개화>, 사카이에서의 <내용과 형식>, 오사카에서의 <문예와 도덕> 등은 강연이 순차적으로 진행될수록 내용상으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제1고등학교에서의 <모방과 독립>, 동경고등공업학교에서의 <무제>, 이 모든 내용들은 학술원 보인회에서 한 강연 <나의 개인주의>라는 열매를 위한 밑거름이었다. 동경고등공업학교에서의 강연은 공업학교라는 특색을 감안해서인지 기술과 예술을 비교 설명하는 방식인데 다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내용 또한 쉽고 간단하다.

2부의 時論에는 <아사히신문 입사의 변>과 수여를 거부한 <박사문제의 전말>,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점두록>등 총 11편이 실렸다. 선생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은 그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아사히신문 입사의 변>에는 노골적으로 나타나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나는 내 강의가 항상 개가 짖는 것처럼 생각되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내 강의가 형편없었던 것은 거의 반쯤은 이 개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소세키에게 신문사 쪽에서 제의가 왔다. 출근할 필요도 없고 매일 서재에서 용무를 보면 그것으로 그만이고 생활비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급료를 준다는 것이었다. 다만 교사로서의 돈벌이만 금지했다. 소세키는 신이 나서 학교를 그만두고는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고 한다. 입사의 변에 실린 마지막 말은 죽는 날까지 글쓰기를 계속했던 소세키의 성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은 명예나 영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되어 일한다는 말이 있다. 괴짜와 같은 나를 괴짜에 가장 알맞은 처지에서 일하게 해준 아사히신문을 위해서, 별난 인종으로서 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하는 것은 나의 즐거운 의무일 것이다.”

<박사문제의 전말>은 박사학위를 주겠다는 문부성 국장이 보내온 편지와 그 편지에 대한 소세키의 답장이 실려 있는데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박사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은 <도락과 직업>의 강연 내용 중에도 나온다. “여러분들은 박사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사정과 인간과 관련된 일체의 일을 포함하여 천지우주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완전히 그와 반대여서 불구 중에서도 가장 불구적으로 발달한 사람이 바로 박사라는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사는 미리 사양해 두는 바입니다.” 강연장에 참석한 사람들을 웃기려고 한 이야기이겠지만 소세키의 생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거기다가 너도 나도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게 될 폐해에 대해서 언급해두었다.

 <점두록>은 1916년 1월에 쓴 글이다. “다시 정월이 돌아왔다”로 시작되는 이 글은 자신에게 한 해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하늘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자 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 표명이다. 소세키는 이번 전쟁이 ‘내면적 배경’ 도 피비린내에 비례하는 정도의 ‘근거’도 없는 ‘천박한 활동사진이나 경박하고 선정적인 소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는 1차 세계대전을 ‘인도(人道)를 위한 싸움’도 아니고 ‘신앙을 위한 투쟁’도 아니며 ‘의미 있는 문명을 위한 충돌’로도 평가하기 어려우며 단지 ‘군국주의의 발현’으로 해석한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평론가는 니체, 헤겔, 비스마르크 등을 들먹이며 이번 전쟁의 배후에 사상가나 학자들의 이론이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하고 싶어 하지만, 헤겔 같은 순수 철학자를 군인정치가와 연결시키는 것을 못마땅해 하면서 학자들은 그 정도로 실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소세키의 견해다. 현대 일본도 정치는 어디까지나 정치일 뿐이고, 사상 또한 사상일 뿐 상호간에 어떤 이해도 교섭도 없다고 단언한다. 소세키는 군국주의, 애국주의를 제창했던 트라이치케와 비스마르크의 관계조차도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 편이 적당하다고 한다.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가 <점두록>의 마지막에 한 말은 새겨 읽어야 할 듯싶다. “트라이치케는 독일이 전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정복하기까지 그의 군국주의, 국가주의를 관철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인류가 모두 독일에 정복당했을 때, 우리들은 그 보답으로서 독일로부터 과연 무엇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독일과 트라이치케는 우선 이 점부터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독일 대신 일본으로 바꿔 읽어도 소세키의 질문은 유효할까?

『문명론』은 강연록에 8편, 시론에 11편의 글이 실려 있고, 『나의 개인주의』에는 소세키의 간사이 지방 강연 4편과 ‘문학론 서’, ‘점두록’이 실려 있다. 그리고 요코하마 시립대학 명예교수 이즈 도시히코의 ‘소세키의 자기본위’라는 해제와 더 읽어야할 자료들을 덧붙여 두었다. 『문명론』은 하드카버에 8쪽 분량의 사진과 소세키 연보까지 합쳐 381쪽 분량이고 『나의 개인주의』는 문고판으로 사진 없이 234쪽이다. 『문명론』에서 오탈자가 12개 나왔고 『나의 개인주의』에서는 못 봤다. 전작읽기가 아니었으면 나는 『나의 개인주의』만을 읽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두 권을 다 읽어야했다. 책세상 문고판 『나의 개인주의』에서는 '문학론 서', '나의 개인주의', '현대 일본의 개화', '내용과 형식', '문예와 도덕', '점두록'의 순으로 실려있다. 강연한 날짜 순으로 실었으면 소세키의 개인주의가 어떤 경로로 완결에 이르는지 이해하기가 훨씬 편했을 것이다. '나의 개인주의'를 먼저 읽고 다른 것을 읽으면 마치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내용상 다른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16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의 모든 책을 찾아 읽으시는군요. 앞으로 따문따문 읽어볼 예정인데 반딧불이님의 리뷰가 좋은 안내가 되겠네요^^

반딧불이 2010-05-16 23:02   좋아요 0 | URL
이제 제일 두꺼운 <명암> 한권 남았습니다.헉헉...

후와님 쓰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보니 뭐 2년에 걸쳐 읽은 저보다 더 나으시던걸요. 번역본에 따라 좀 차이가 있는듯 하니 그것만 참고하시면 좋으실듯 해요. 따문따문 읽으시고 느낌을 교환할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