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동정 없는 세상』에서의 동정이 同情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두 페이지를 넘기면 동정이 童貞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오로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의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童貞 없는 세상을 꿈꾸며 사는 주인공 준호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평생이라고 하는 시간이 썩 긴 것도 아니다. 그는 이제 겨우 수능 시험을 치렀고, 소설은 대학 입학 원서 접수하기까지의 불과 이삼 개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없는 결손가정이긴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해심 많은 삼촌과 엄마가 만들어주는 안정의 울타리 안에서 그는 섹스 이외에는 아무런 고민이 없다. 독자는 이런 준호를 同情해야할까, 준호의 童貞을 同情해야할까? 그러나 그는 同情하기에는 너무나 경쾌하고 행복한 캐릭터다.

이 소설은 제6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했다. 1967년생 수상작가 박현욱에 대한 인터뷰의 한 부분이 책날개에 실려 있다.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동정 없는 세상』은 경쾌하고 재미있다. 세계를 재고 자르는 기준이 여자 친구 서영과 ‘한번 하기’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일관되는 ‘경박한’ 십대 준호의 관점에서 성인들 세계를 요모조모 살피게 하고, 요리조리 재고 자르는데, 너무 뻔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이내 큭큭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구성과 시점의 의도된 경박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되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동정 없는 세상』이란 소설 자체는 결코 경박하지 않은 소설이 된다. 고작 등장인물 여섯에 한 얼뜨기 십대의 ‘총각떼기’작전을 소재로 한 소설로부터 얻어내고 있는 만만찮은 주제의 규모를 고려하면 분명 신인답지 않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소설을 재미있고 가볍게 쓰되 그 안에 진지함과 무거움을 담을 줄 안다.

이 인터뷰의 내용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일부분에는 도무지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머리가 나쁜 탓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만찮은 주제의 규모’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재미있고 가볍게 쓰’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지함과 무거움’은 또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책을 읽을 때는 나도 큭큭거리며 읽었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동정이 그 동정이 아니었단 말이지? 하는 반문과 함께 童貞과 同情이 함께 어우러졌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평면적으로 일관하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사건다운 사건하나 없는 소설의 그 어디에서도 넘쳐나는 童貞의 가벼움만을 보았을 뿐 同情의 진지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으며 내 아쉬움을 달랬다.

 
야하면서도 건전하고 불순하면서도 순수한 젊은 호흡이 느껴지는 건 좋은데 지나치게 가볍다는 건 이 작가가 버릇 들이면 안 될 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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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01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현욱의 동정, 그런것이군요.
리뷰 잘 읽었어요.^^

반딧불이 2009-09-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발견하고는 그자리에서 다 읽었는데 남는건 아무것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