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보고 싶은 책과 봐야할 책은 넘쳐나는데 책에 관한 책까지 읽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책의 세계,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넓어져 가는 책의 세계를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모티머 J.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 읽는 방법』, 박민영의 『책 읽는 책』,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책의 제목은 모두 거기서 거기지만 저자들의 이력은 모두 각각이다.  모티머 J.애들러는 철학자이며 사상가이고, 히라노 게이치로는 일본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라는 평을 듣는 젊은 소설가이다. 진정한 독서가는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자신의 내부를 발견한다는 말로 나를 반성하게 했던 박민영은 책 만드는 일과 저술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헤세는 이미 우리의 청소년기부터 책꽂이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할배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저자의 이력이 다르듯이 그들이 쓴 책의 내용도 각각의 특징이 있다. 애들러의 책은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 체계가 분명해서 요약 정리하기가 쉽다. 독서에 관한 강의 자료를 준비해야한다면 이 한권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게이치로의 책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인지 ‘책읽는 방법’이라는 제목보다 ‘소설 읽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만큼 소설 읽는 방법서에 더 가깝다. 박민영의 책은 그가 대상으로 한 독자가 있으므로 미리 독자유형을 살펴보고 읽는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민영의 책은 다른 독서에 관한 책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내용이 알차서 부담스럽지 않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들 세권의 책은 독서에 관해 저자가 맘먹고 쓴 책이지만 헤세의 책은 이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헤르만 헤세는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든다. 이 책은 헤세가 쓴 수많은 에세이 중에서 책과 독서에 관한 것만을 골라 편집했다고 한다. 독일 주르캄프 출판사의 편집장을 역임한 폴커 미켈스가  편집을 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집자의 의도와 편집능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자의 편집능력 때문인지 헤세의 글을 단숨에 떠내려간 독서에 관한 책처럼 보인다.  책에 관한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지만 결론은 책에 머물지 않고 인간으로 향한다.   

 

이십여 년 만에 헤세의 글을 다시 대하는 것 같다. 이십여 년 전의 나는 그의 글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당시의 내게 독서는 그저 해치워버려야 하는 일, 책은 읽어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니 어느 작가의 글맛은 알고 읽었으랴마는 헤세의 글에서 나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사람들이 강권하다시피해서 읽었던 장 그르니에의 『섬』도 내게는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했다.  나중에 그의 『일상적인 삶』을 읽고 생각을 고쳐먹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에게 깊이 빠져보지 못했다. 그르니에보다 더 심한 헤세는 20여년을 방치해두었던 셈이다. 아니 내가 그를 방치해둔 것이 아니라 헤세가 나를 방치해 두었다는 말이 더 옳다. 그는 폭넓은 감동의 올가미로 나를 포획했지만 옥죄지 않고 열어둔다.

헤세의 글을 읽으면 전혀 반대의 이미지인 레고블록이 떠오른다. 레고블록이 0.2마이크론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것처럼 헤세의 글은 치밀하고 힘이 있다. 또 레고블록이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책이라는 물질세계와 독서라는 정신적 행위로까지 폭넓게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헤세의 글은 부드럽지만 뜻이 깊다. 불순한 맛이 끼어들어있지 않은 이 맑은 글은 햇차를 맛보는 느낌이다. 그는 책을 아끼고 쓰다듬으며 사랑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어버려야 할 대상, 해치워버려야 할 일로 여기는 나의 생각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는 저자의 입장에서만 글을 쓰지 않는다. 자신 또한 한 사람의 독자의 입장에서, 또 많은 책을 정리해서 이사를 해야 하는 책의 주인으로써,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문단의 선배로써, 문학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자신의 입장을 맑고 깨끗하게 밝혀 두었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아끼고 쓰다듬으며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오래 그가 책속에 만들어둔 세계문학 도서관을 곁눈질 하며 내 책꽂이를 더듬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6-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독서의기술도 있군요.
담아갑니다.^^

반딧불이 2009-06-0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유용하게 쓰여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