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 개정판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 르네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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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도서관’, ‘사상의 디자이너’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 사서로 첫발을 대딛고 책에 파묻혀 지냈으며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유전적인 요인과 지나친 책읽기로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강연과 저술 활동을 계속하다가 198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는 1967~68년 보르헤스가 시력을 상실하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원고 없이 진행한 여섯 차례의 특강을 묶은 것이다.  The Norton Lectures라고 불리는 이 강연은 30년이 지난 후에야 책으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8년 10월 번역 출판되었다. 보르헤스는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고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배웠다고 한다. 그의 독서는 영어로 시작되었고 이 강연 역시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그는 현대영어뿐만 아니라 고대영어 스페인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 같다. <시라는 수수께끼>, <은유>, <이야기하기>, <시 번역>, <사고와 시>, <한 시인의 신조>등 강연제목이 보여주듯이『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는 문학 일반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보르헤스의 시론에 더 가깝다. 

 <시라는 수수께끼>는 인생을 통째로 문학에 바쳐온 보르헤스가 여전히 시란 무엇인가를 묻는 시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는 교묘하게 함께 짜여진 언어를 매개삼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애써 정의를 내리지만 이러한 정의는 사전이나 교과서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보르헤스 자신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우리의 삶 자체가 시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9세기에 일어났던 일상의 일을 기록했을 뿐이라는 아래의 구절들이 바로 시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은 북쪽에서 날아오고,
서리는 들판을 묶으며,
가장 차디찬 낟알,
싸락눈은 땅에 떨어진다.

보르헤스는 이미 시는 삶 자체라고 했지만 <시라는 수수께끼>의 제목을 가진 강연을 끝내기 위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시란 무엇입니까? 만약 사람들이 ‘시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안다. 만약 사람들이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

<은유>에서 보르헤스는 ‘암시된 것이 단호히 주장된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은유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어떤 설득이나 주장보다도 막강하다. “나는 밤이고 싶어라, 그래서 당신이 잠자는 것을 천 개의 눈으로 지켜볼 수 있게(I wish I were the night, so that I might watch your sleep with a thousand eyes).” 눈(眼)과 별의 은유는 꽃과 여자, 잠과 죽음, 시간과 강 등과 더불어 흔해빠진 은유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싶어 하는 연인의 마음을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범람하는 감동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들은 무한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10여개의 유형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보르헤스는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유가 고갈된 것은 아니다. 주류의 새로운 변형을 시도해 보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 유형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은유를 만들어내는 일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다. 
 

<이야기하기>는 서사시에 관한 강연이다. 보르헤스가 서사시로 언급하는 것은 『트로이 이야기』, 『오딧세이아』그리고 4대 『복음서』이다. 그는 서사시와 소설의 차이는 운문이냐 산문이냐 혹은 읊조리는 것이냐 진술하는 것이냐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서사시의 주인공이 모든 인간의 본보기인 영웅인 반면, 소설의 핵심은 인간의 파멸과 캐릭터의 타락을 다룬다는 것이다. 서사시의 주인공들은 패배의 쓰라림을 느낌과 동시에 행복과 승리를 진지하게 믿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행복과 성공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시대의 빈곤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일을 지겨워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이유로 시의 기품이 더해진 서사시를 쓰는 시인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 번역>은 현대 영어와 고대영어, 스페인어와 영어 등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서 오는 간극 때문인지 의미가 명료하게 와 닿지 않는다. 매슈 아놀드와 뉴먼 사이에 오간 의역과 직역에 대한 논의들, 직역의 기원을 성경의 번역에 두는 보르헤스의 의견 등은 참고할 만하다. 

<사고와 시>에서 보르헤스는 단어는 도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들판, 강, 바다, 강, 밤, 새벽으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문체라기보다는 그 시가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 이며 문체의 화려함 보다는 평범한 단어들을 이용하여 비범함을 드러내는 시가 더 지속적인 감동을 준다고 한다.

<한 시인의 각오>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독서과정과 글쓰기의 과정을 되돌아본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화려한 문체를 추구했고, 현대적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화려한 문체에 대한 노력은 허영심의 징후였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미 충분히 현대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글을 쓸 때 독자를 의식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한다는 것. 또 사건이나 상황보다 꿈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는 것, 지성은 작품과 큰 관련이 없으며 현대문학은 지나치게 자의식적이라는 것, 작품을 쓰고 나서는 가능한 한 적게 고치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보르헤스의 강연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고 따뜻하다. 쉽게 읽었지만 소화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턱없이 높아진 눈높이 때문에 절망의 나락은 깊기만 하다. 움직이는 도서관에 다름 아닌 보르헤스가 하는 말들은 그가 평생을 통한 독서와 체험으로 얻은 것이다. 그런 만큼 그것이 주는 부피와 무게가 만만찮다. 책 한권을 통째로 기억 속에 넣어두고 혼자만 보고 싶은 책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폭포를 마셔도 가시지 않을 갈증으로 보르헤스 말의 피가 돌기를 갈망한다.



*2003년 12월 30일 초판 1쇄가 나왔었다. 2008년 10월 20일 본은 개정판 1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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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3-1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르헤스... 밀린 책 때문에 보르헤스 갈증이 더 심해지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목타게 고대하다가 만나면 저도 반딧불이님처럼 말의 피가 돌까요...
리뷰가 너무 멋져부러서 댓글 다는 일조차 번거롭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반딧불이 2009-03-2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의 자극 받은거여요. 감사드려요. 저는 여우님의 글에는 이미 피가 돌고 있는걸로 아는데요. 이 대지가 초록을 수혈받아 새살이 오르듯이 여우님 아픈 몸도 곧 건강해지셔야죠. 시간의 응급실, 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