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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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로 그를 알게 된지 다음달이면 2년이다. 매달 그가 읽어주던 시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어찌나 더디던지 두 번 세 번을 읽고 베껴 쓰기를 하고 난 후에도 한 달은 다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첫 번째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놀랐다. 반가움보다도 700쪽이 넘는 분량 때문이었다. ‘김현의 현현’이라는 항간의 상찬을 나는 <시 읽어주는 남자>를 읽으면서 그것이 한국비평의 황제라는 김현의 명망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비평이 가진 문학에 대한 애정에 더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비평은 고작 취향에 개입하는 권력일 뿐’이라고 했다. 욕먹어도 싸다 싶을만큼 비평이 문학권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비평은 권력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는 또 하나의 언어였고, 모르고 지나쳤던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안내자였다. 누렇게 변색되어버린 김현의 책들이 그랬고, 달랑 한 권뿐인 도정일의 책이 그랬다. 이제 나는 이 벽돌만큼이나 두껍고 무거운 신형철의 첫 평론집을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의 글에서 나는 시에 대한 촉촉한 애정과 새로운 감각과 언어에 대한 진단을 보았다. 그리고 일찌기 그가 고은이나 신경림 등 문단의 어른들에게 휘두른 공손한 회초리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옹호하려 한 것은 난해한 시가 아니라 다른 언어, 다른 세계, 다른 삶을 말하는 시였고, 내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쉬운 시가 아니라 관습적이고 태만하고 타협적인 시였다” 라거나 “나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절박하다. 나는 부조리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사람이다. 많은 상처를 주었고 적은 상처를 받았다.”라는 말은 그가 쓰고자하는 글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가 문학에 대해 가진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해보게 해준다. 문학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문학을 사랑한다는 그의 땡깡 같은 열정을 나는 오래 지켜 볼 것 같다.  

 

평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내가 이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런 탓에 나는 관심 가는 작가에 대한 글과 시에 대한 글들을 먼저 읽었다. 새로 읽게 되는 작품들은 그것을 읽을 때마다 신형철의 글을 꺼내 읽으면 될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김수영의 사랑에 대해 관심가진 적 있었다. 그의 사랑에 대한 잔인한 정직성 때문이었다.  단 한편의 시만을 대상으로 삼아 내게 아쉬움을 주었지만 신형철의 '김수영의 사랑에 대한 단상'은  여미지 못한 나의 미련을  다독다독  여며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적지 않은 시인들에 대한 그의 작품론은 해당 시의 해설이나 해독이라기보다 오히려 또 하나의 시처럼 아름다웠다. 그의 글에도 문학이론들이나 철학이 등장하지만 이러한 등장이 시나 소설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그가 문학을 사랑하는 것 맞다. 신형철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은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를 읽었을 때 느껴본 적 있다. 





마지막에 할애된 김소진에 대한 글은 아프다. 그에 대해 ‘쓰지 않고 버티면서 그를 잊지 않겠다’는, 그리하여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는 나를 되비추는 우물이거나 내 발목을 잡아 찢는 덫이 될 것이’라는 그의 각오에 공감하고 싶지 않다. 이유가 어찌하던  눈물마른 허수아비의 눈으로 그의 ‘울음 없이 젖은 눈’을 지켜보는 것은 못할 짓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파헤치면서 사랑하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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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0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의 현현'이라는 말에 눈이 확 뜨이네요~~

반딧불이 2009-02-11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하세요. http://h21.hani.co.kr/arti/COLUMN/68/?ing=y

비로그인 2009-02-11 22: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