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제3판 개역본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이라는 헌정사로 시작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론적 안내서이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군주론』을 내용면으로 살펴보면 군주국의 종류와 그 획득 방법, 획득된 군주국을 유지하는 방법, 이탈리아를 통일할 강력한 지도자를 염원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국가나 모든 통치체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이라는 전제하에 군주국의 종류와 군주국을 획득하는 방법론을 설명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제는 ‘1인 통치자에 의한 지배체제’를 의미하며 군주국의 성립 성격에 따라 세습군주국과 신생군주국으로 나눈다. 세습군주군은 선조의 기존질서를 바꾸지 않으면서 불의의 사태에 대응하는 것만으로 신생군주국보다 훨씬 용이하게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신생군주국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군주국을 얻게 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군주가 자신이 통치해야할 영토를 확립하는 방법에는 타인의 무력을 이용하는 경우, 자신의 무력을 이용하는 경우, 운명에 의한 경우, 역량에 의한 경우 등이 있다. 군주국의 획득 방법이 다양한 만큼 다스리고 유지하는 방법 또한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각각의 경우들을 역사 속의 인물이나 사건 등의 예시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흔히 『군주론』은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를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의 행적에서 신생군주의 모델이 될만한 많은 점을 발견하였지만(p58), 부친 사망 이후 그의 정적이었던 율리우스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은 커다란 실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의 다양한 인물들을 예로 들어 그들의 행위에서 장단점을 모두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모세, 키로스, 로물로스, 테세우스 등 많은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들의 출현은 필연에 의한 것이었으며 설사 그들에게 기회가 운 좋게 다가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 기회를 포착, 활용하게 한 것은 그들이 가진 비범한 능력(역량)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군주가 되고자하는 이는 운(fortuna)과 역량(virtu)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마카아벨리의 주장인데 이렇게 해서 군주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획득한 영토와 시민을 다스리는 등 권력을 유지하는 일은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군대(무력)인데 당시의 여러 세력들은 용병에 의지하고 있었다. 용병은 계약 조건이 좋으면 아군이나 적군을 가리지 않고 곧바로 새로운 계약을 맺곤 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자국민의 군대를 키워서 군사적으로 자립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군사력을 확보한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황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군주를 위해 마키아벨리는 모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가해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킵니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따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쉽습니다.”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악덕 없이 권력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때는 그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주는 또한 자신이 재능이 있는 자를 아끼고 어떤 기예 분야에서 뛰어난 자를 우대한다는 점을 보여 재능의 예우자임을 과시해야 합니다.” “일년 중 적절한 시기에 축제나 구경거리를 주선하여 인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합니다.” 등등.  심리학자만큼이나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꿰뚫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를 위한 조언들은 단호하고 전방위적이다.  ‘통치자를 위한 실용 안내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군주론』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는 게 전부’라고 왜곡되면서 선정적이고 악마적인 공격의 대상으로도 이름 높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사악함을 서술하였다 해서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음은 킨제이가 섹스를 발명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사실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왜 이런 『군주론』을 썼을까? 이탈리아는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영광이 서린 곳이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사라지고 11세기 이탈리아는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피렌체 등의 거대한 상업도시로 성장하였고 이탈리아 반도 전체는 여러 세력들의 각축장이었다. 마키아벨리가 한창 그의 열정과 지적 능력을 발휘하며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을 당시 이탈리아 지역은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교황령 등으로 분열되어 교황권과 황제권의 권력 싸움이 횡횡하였고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등 외세의 침략으로 어지러웠다. 피렌체 공화정에서 외교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마키아벨리는 이런 전쟁의 상황에 늘 노출되어 있었고 스페인의 공격으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자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메디치 가문에 의해 마키아벨리는 투옥되어 고문을 받기도 했고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그의 헌정사에 나타나 있듯이 그는 일차적으로 당시의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공직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고 다음으로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이탈리아의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군주론』을 썼다. 이런 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메디치 가문은 그를 공직으로 부르지 않았고 이 책은 그가 사망하고 5년이 지난 후(1532)에야 출간되었으며 이탈리아가 통일이 되기까지는 3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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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12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예전에 일본어를 중역한 판본으로 '군주론'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 버전으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반딧불이 2009-02-14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가 아주 아주 공들인 것이란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기꺼이 추천드려요.

비로그인 2009-02-14 23:1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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