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의 재발견 -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
장 뤽 엔니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최근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면서 정치학자인 하비 맨스필드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 The manly man's man(남자다운 남자의 남자라고 해야하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어찌어찌 연이 닿았을 뿐이다. 다만 스쳐지나칠 뿐이었던 그가 나를 향해 정확하게 쏘아준 언어의 화살이 있었다. 그것은 "품격"이라는 단어였다. 그것은 만주벌판에 섰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던 "광활"이라는 단어가 주던 충격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단지 그의 얼굴만을 보았을 뿐인데, 그것도 일이분 정도였을 짧은 시간을 스치듯 보았을 뿐인데  내게 전달되던 그에 대한 첫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저런 '품격'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타고난 성품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풍성한 사랑과 균형잡힌 교육,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자신을 꾸준히 가꾸어 온 자의 세월이 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또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단어로 명명되는가? 돌이켜보면 어떤 이는 내게서 고슴도치의 가시를 보고가고, 어떤 이는 배추 속잎을 보고 가고, 또 어떤 이는 잠자리 날개를 보고 가고, 또 어떤 이는 목련 꽃을 또 어떤 이는 포카리 스웨트를 보고갔다. 그것들은 다 내게 있었던 듯하지만 여전히 내것인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인상을 구성하는 면면들은 대부분 얼굴을 포함한 신체의 앞면에 포진해 있는 탓에, 엉덩이는 이런 구성의 면면들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엉덩이도 예쁘다면 금상첨화일 뿐 인상을 결정짓는 데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관여하지 못한 채 부차적인 보조물로 머물 뿐이다. 더구나 엉덩이는 우리몸의 일부이지만 그것을 볼 때에도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듯 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해 보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엉덩이는 뒤틀리고 마는 탓에 우리는 우리의 엉덩이를 보기위해서는 거울속의 엉덩이를 볼 수 있는 또하나의 거울이 필요하다. 이러한 탓에 누군가 나의 엉덩이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엉덩이는 오직 그만의 것이고 그는 그만이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다. 이렇게 보이는 곳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더욱 있는듯 마는듯한 엉덩이에 주목한 사람은 장 뤽 엔니그라는 남자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엉덩이를 본 남자가 아닐까 싶다. 

 그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많은 일간지와 저널에 기고하고 있고 여러권의 책도 썼다고 한다. 작가의 서문이 없어 그가 어떤 의도로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회화와 문학작품과 조각과 영화와 동성애와 형벌까지 연구했는가 낱낱이 살펴 볼 수 있다. 목욕, 성교, 블라종, 매음굴 등 불어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엉덩이와의 관련성을 세밀하고도 농밀하게 짚은 이 책은 넉넉하게 실려있는 화보들과 저자의 문체가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외에도 우리가 익이 알고 있는 모나리자의 불가해한 미소 속에 소년의 엉덩이가 감추어져 있다거나, 엉덩이에 가해지던 형벌 같은 이야기들은 흥미는 있지만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중국에는 쥐를 이용한 엉덩이 형벌이 있었던 모양이다. 죄수의 엉덩이에 항아리를 묶어놓고 밑바닥에 뚫린 구멍속으로 이틀 굶긴 쥐를 집어넣어 시뻘겋게 달군 쇠막대기로 쥐를 지지는 모양인데 이때 쥐는 찢고 할퀴고 물어뜯고 하면서 도망을 다니다가 끝내는 엉덩이에 나 있는 항문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다음 장면은 차마 적을 수 없어 상상에 맡겨야겠다. 인간의 잔혹행위의 한계는 대체 어디인가. 

미처 몰랐던 많은 정보와 문체가 주는 즐거움이 만만찮음에도 그러나 숨막히게 언급되는 모든 그림을 다 실을 수 없는 것, 또 그것이 책의 앞부분을 제외하면 도판이 작고 흑백이어서 그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것, 또 번역의 고충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말로 표기되지 않고 그대로 실려있는 소제목들  (예를 들면, 아파란시스, 블라종, 핀업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엉덩이 심미가들에게 언급되었던 세상의 모든 엉덩이를 따라가며 이제 내 엉덩이를 새로 볼 수 있는 마음의 호사를 누릴 것이다. 이 책은 숭고한 포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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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12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쥐를 이용한 엉덩이 형벌"...;; 정말 섬뜩합니다. 상상만해도 무섭네요.

반딧불이 2009-02-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가 감옥에 갇혀있을때 '스트라파도'라는 형벌을 받았다고해요. 팔을 뒤로 묶고 높은곳에서 떨어뜨리는 형벌인모양인데 각 나라 형벌이 그나라 국민의 성정을 잘 보여주는 듯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09-02-14 23:16   좋아요 0 | URL
한국은 (더 멀리 갈것도 없이)1970~80년대 '안기부'가 기세등등하게 국민을 옥죄었을때 저질렀던 각종 고문과 형벌들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