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살림지식총서 179
김현우 지음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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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이탈리아 남부의 큰 섬 사르디니아에서 태어나고 북부의 신흥공업도시 토리노의 대학에서 수학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해이자 토리노에서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봉기가 일어난 1917년, 당시 26세였던 그람시는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던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예외적인 상황을 묘사한 「‘자본’에 반한 혁명」이라는 글을 이탈리아 사회당 일간지 『전진』에 발표했다. 이로써 공식적인 사회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 그람시는 그가 무솔리니의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제2차 세계대전과 파시스트체제, 자본주의 국가의 복잡성과 견고성에 대한 간파 등을 담은 그의 이론의 정수인 『옥중수고』를 남겼다.

그람시가 태어난 사르디니아는 가난에 찌든 소작농 사회였으나 그람시는 비교적 여유 있는 알바니아인 후손 집안의 7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금발의 잘생긴 아기였지만 네 살 때 하녀가 실수로 떨어뜨려 평생을 키 152센티미터를 넘지 못하는 곱사등이로 살아야했다. 그의 이런 신체적인 조건과 아버지의 투옥 등은 그람시를 독서와 지적인 추구에 몰입하게 하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형 젠나로 그람시와 이탈리아 국가형성기 말미의 사르디니아의 지리적 위치 등은 그람시가 정치적 자각을 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그람시가 언어학자를 꿈꾸며 대학생활을 보낸 토리노는 북부의 신흥공업도시로서 피아트 자동차 공장과 테일러 방식의 근대적인 생산 공정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토리노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가두시위, 파업투쟁 등을 지켜본 그람시는 그 모습 속에서 북부 산업자본가들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과 남부의 농민대중을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적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람시는 이론적인 탐구와 저술활동에 열정적으로 몰두했고 1917년 <자본에 반한 혁명>이라는 흥미로운 글을 발표하게 된다.

<자본에 반한 혁명>의 ‘자본’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발전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발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진 농업국가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졌으니 이것은 『자본』의 주장에 거스르는 혁명이라는 것인데, 그람시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틀린 것도 아니고 러시아 혁명이 잘못된 사회주의 혁명도 아니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사고에서는 역사 속의 개인들과 인간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그람시의 의견인데 이는 마르크스 이론을 당대의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그람시에게 고도의 조직되고 규율 잡힌 혁명정당이 필요하다는 것과 러시아 소비에트에 조응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기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람시의 이러한 관심은 이후에 그가 몇몇 사람들과 창간한 ‘사회주의 문화비평’주간지 『신질서』에 잘 드러나고 있다. 그람시의 실제적인 관심은 언제나 노동계급을 교육하고 문화적인 기반을 건설하는데 있었지만, 정치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실천 덕에 그는 언제나 사회당 토리노지부의 지도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전국적인 좌파정치인이었으며 지도부중의 한명이었던 아마데오 보르디가와 그람시는 당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입장차이로 서로 대립하게 된다. 보르디가는 당이 올바른 정책을 견지한다면 노동계급은 당의 지도를 따르게 되리라는 것이었고 그람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외에도 두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대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파시즘의 위협에 관한 것이었다. 보르디가는 파시즘의 위협에 대해 크게 평가하지 않았으나 그람시는 파시즘이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상황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와 노동계급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반동의 시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알고 경계했다. 이러한 예측과 경계에도 불구하고 좌파의 선전선동 기법과 내용을 우파의 것으로 능란하게 재가공하여 등장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그람시를 체포하고 “우리는 이 자 두뇌의 작동을 20년간 중지시켜야 한다.”는 논고와 함께 20년 4개월 5일 형을 선고했다. 두뇌의 작동을 중지시켜야할 만큼 파시스트 정권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그람시는 그러나 10년의 수형생활 동안 『옥중수고』를 써서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혁명 전략가로 새로 태어났다.

『옥중수고』는 감옥에서 손으로 쓴 원고라는 뜻으로 그람시가 무솔리니의 감옥에 갇혀있을 당시 쓴 대학노트 32권 분량의 글이다. 이 글은 이탈리아의 역사, 정치, 교육, 문화, 철학, 여성, 종교 문제 등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마르크스 이론의 개발이라는 그람시의 일관된 주제로 집약된다. 이 원고는 그람시의 옛 동료 톨리아티에 의해 최초로 출간된 이후 크게 ‘정치편’과 ‘철학․역사․문화편’으로 나뉘어 출간된 판본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저작의 재구성과 번역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옥중수고』에 실려 있는 그람시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개념들을 반드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실천철학, 그람시에 있어서의 정치의 개념, 유기적 지식인, 진지전 등이 그것이다.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그람시는 검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은유적 표현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마르크스주의는 ‘현대의 이론’ 또는 ‘실천의 철학’으로 기술되었다. ‘실천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람시의 가장 독창적이고 중요한 이해를 보여주는 부분으로 사적이고 맹목적인 실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식적, 집단적 실천을 의미한다. 그람시에게 있어 ‘실천의 철학’은 ‘정치’와 동의어였으며, 변화시키려는 입장에서 상황 속의 여러 세력들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였다. 그람시에게 있어 ‘정치’는 단순히 정치제도 혹은 사회변혁의 리더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 또는 인간의식 행동의 변화 등 행동일반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 의미의 정치보다 훨씬 넓은 범주로 확장된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즉 ‘정치’를 위해서는 지식인을 겨냥한 투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제시하여 이를 보완하려하였다. 유기적 지식인은 계급적 자각성을 가지고 실천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식인을 일컫는다. 투쟁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전복, 해체, 폭동, 혁명 등 파괴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를 강조하는 그람시에게는 유기적 지식인의 항상적인 설득이 요구된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있어서의 혁명은 ‘짓쳐 들어가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일회적 전술로서의 ‘기동전’보다 다양한 투쟁전선을 가로질러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하는 ‘진지전(war of position)으로 수행되어야하는데 유기적 지식인은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곱사등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가진 혁명가였고, 이탈리아 공산당의 아버지였으며, 마르크스주의에 자양분을 공급한 이론가였다. 그의 이론과 개념은 에릭 홉스봄, 루이 알튀세르, 스튜어트 홀, 에드워드 사이드 등 다양한 학문영역의 전 세계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수용과 변용, 오용되면서 현재적 의미로 재창출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현대세계에서 마주치는 복잡한 사회현상들을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형성하게 해주는 것으로 그의 저작은 미래를 보는 망원경으로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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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1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번으로 출간되었던(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그 번호목록을 차지한),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은적이 있는데 무척 어려워서 거의 의무감에 완독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람시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서 다시 읽으면 한결 도움이 될거 같군요.ㅎ 아직 '옥중수고'는 엄두를 못내고 있는 실정인데;

반딧불이 2009-02-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살림지식총서'를 참 좋아하는데 강유원의 '책과세계' 와 이 책 때문에 작은책이라고해서 만만히 볼게 아니라는걸 절감했죠.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없었다면 책 집어던져버렸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