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이정우 지음 / 산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강단 밖의 철학자가 쓴 철학 에세이다. 그는 대학교수라는 안정이 보장된 직업을 박차고 나와 <철학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몇몇 철학자들과 다양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철학아카데미>에서 그의 강의목록을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쉽다-. 그가 강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문제들은 그의 다른 책『삶․죽음․운명』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도 직접적인 발언을 한다. “우리의 철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50대 이상의 기성학자들에게서는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고루할 뿐만 아니라 교활하기까지 하다”고.

그가 ‘살아있는 사유’를 위해 선택한 길은 허름하고 거칠었다. 그러나 ‘권력’보다 ‘매력’을 선택한 그에게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독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것이 번역본이든 그의 저작이든 무조건 사는, 하지만 읽지는 않는 아니 읽지 못하는 사이비 독자를 즐거이 나는 사칭하고 있다. 이쯤에서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책을 한번쯤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삶․죽음․운명』, 『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인간의 얼굴』, 『시물라크르의 시대』, 『주체』, 『들뢰즈와 가타리』, 『사건의 철학』, 『의미의 논리』,『탐독』. 새삼스럽게 책꽂이를 훑다보니 나는 참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식한 사람에게 ‘용감’이라는 단어는 필수적으로 따라붙지 않던가? 나는 거기다 나오는 대로 족족 사들이는 부지런함에다 무조건 산다는 소신까지 보태었다. 이건 ‘폐인’도 아니고 ‘매니아’도 아니다. 이런 맹목적인  집착 혹은 읽겠다는 의지만 앞서는 이 중증의 증세를 뭐라고 불러야하나? 혹시라도 이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나에게 독창적인 이름 하나 지어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나의 이정우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집착에는 나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우선 그의 언어들이 너무나 정밀하다는 것이다. 특히 철학적 개념어에 대한 엄밀함은 사전보다도 낫다. 그의 철학적 사유가 부유하는 사유가 아니라 현실에 확고하게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내게는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밑에  보따리 싸들고 들어가 빨래도 해주고 공부도 하고  어깨라도 주물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밀한 언어를 통한 그의 메시지는 내게는 상당히 무겁다. 그런데도 그의 강의를 듣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많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은 충만함으로 나는 뿌듯하다. 그러나 그런 충만함은 잠시일 뿐 희한하게도 책을 덮고 나면 그에 대한 막연한 존경과 동경만이 달무리처럼 책 주변을 감싸고 있다. 아마도 철학자인 그가 무반성적인 나의 의식에 놓은 침에 취한 탓일 게다.  침을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침에 취해 침 몸살을 앓고 나면 몸이 거뜬하고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 그는 나의 의식에 몇 개의 침을 놓아 주었다. 과학기술과 자본, 미디어가 만드는 욕망의 삼각관계에 대한 침, 억눌리고 배제당하는 타자를 위해 비판이 견지해야 하는 침. 특히 과학과 시에 대한 큰 침을. 과학/기술은 환원, 격자화, 예측, 석화 등으로, 시는 탈주, 가로지르기, 탈은폐, 액화 등으로 범주화시킨 그의 큰 침은 커다란 통증을 몰고 왔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크게 침 몸살을 앓는 일이다. 그리고 의식의 건강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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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이 책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09-02-0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의 '과학기술과 시' 부분은 혼란스러울 때마다 지금도 한번씩 들여다본답니다. 독서경험을 공유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비로그인 2009-02-04 03:26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갑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정우 저자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이 생겨, 민음사에서 출간된 미셀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단번에 구입한 적도 있습니다(번역자가 이정우 씨라는 것 하나만으로!).그런데 미셀 푸코는 아직 저한텐 히말라야 산맥 처럼 오르기 힘든 산과도 같은 존재라는걸 통렬히 깨닫고는, 도중에 읽기를 포기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태이지요;;

반딧불이 2009-02-04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태"도 공유하게 되는군요. 더욱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