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책 + DVD) - 김우현 다큐북 김우현의 팔복 시리즈 2
김우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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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김우현 다큐멘터리 감독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이하 ‘애통’이라 표현함)라는 다큐북을 읽었는데, 그 감동이 커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선전하였으나 선뜻 구매를 하지 못하였다가 목사님을 통하여 소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김우현 감독이 기획하고 있는 “팔복”시리즈 중 두 번째 책으로, 몇 명의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DVD 영상물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세 번째 책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근간 예정)


저번에 “팔복”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인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이하 ‘가난’이라 표현함)도 읽었는데, 우리에겐 너무 유명한 맨발천사 최춘선 할아버지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책이 나온 이후의 후일담은 ‘애통’에도 나와 있습니다.


위 책들을 읽다보면, 김우현 감독에 대해서 친근감이 생기는데, 그 원인은 김우현 감독이 좋아하였던 작가들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였기때문이였고, 김 감독이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아주 잘 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상물 보다는 책의 내용이 더 좋았습니다.


김 감독이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예수님의 “팔복” 이야기를 매개로 하여 “팔복”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가난’에 잘 나오는데, 그 계기가 폴란드 영화감독인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우리말로 번역하면 ‘십계명’이라는 뜻임)시리즈를 본따서 기획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위 “데칼로그”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서평을 작성한 것이 있는데, 이 감독은 각 계명으로 한편씩의 영화(총 10편)로 만들었습니다.


‘애통’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이 땅에서 ‘애통’을 가지고 살거나 살았던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나옵니다.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배기철씨로서 이태리계 백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고, 자신의 부인(애니)도 흑인 혼혈인인데, 특이하게도 위 사람이 전도하는 대상이 무속인들과 혼혈인들입니다. 이 땅의 사마리아인들이지요. 김 감독이 배기철씨를 알게 된 것은 KBS 인간극장을 통해서인데, 그렇게 해서 “애니의 사랑”이라는 내용이 방송도 되었다고 합니다. 영상물에 보면 무속인의 문앞에서 손을 대고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고, 스크랩북에는 ‘내가 사랑할 곳, 사마리아.’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성경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것은 ‘혼혈’ 때문입니다. 배기철씨는 한국땅에서 ‘혼혈인’으로 멸시를 받으면서도 또다른 사마리아인들인 한국땅의 혼혈인과 무속인을 선교의 대상으로 정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마리아인들을 만나고,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이지요. 그 내용이 요한복음 4장에 나옵니다.(그 감격적인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면상 생략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집사 빌립도 사마리아에서 전도하게 되고, 성령이 역사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사도행전 8장에 나옵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서 무속인, 마술사 시몬이 변화됩니다. 이렇듯 예수님과 제자들이 품었던 사마리아인들을, 자신도 사마리아인으로서 그 사랑 받았으니, 이 땅의 사마리아인들에게 전도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담으로 현재 사마리아인들이 704명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에 있다는 내용의 인터넷뉴스를 최근에 접하게 되었는데, 위 사실을 기독인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배기철씨는 어떻게 무속인들에게 전도할 생각을 하였을까요?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김 감독은 배기철씨를 ‘애통’의 주인공으로 정하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중에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조신원이라는 사람으로서 최춘선 할아버지의 제자라는 것이지요. 조신원씨의 증언으로 최춘선 할아버지의 제자들이 천명이나 된다는 것이나 다른 여러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해서 그 내용을 촬영하여 ‘애통’에서 최춘선 할아버지의 후일담(맨발로 서다)으로 제작하게 됩니다.


김 감독은 최춘선 할아버지에 대해서 여러 교회나 기독교단체에서 간증을 하러다니다가 조은령이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알게 됩니다. 뉴욕대 영화과 출신으로 단편영화 ‘스케이트’로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던 촉망받던 감독이였는데, 하나님의 풍경을 담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재일 조선인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던 2003년경에 집에서 실족사하는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속해서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선일씨에 대해서도 알게 되지요. 부산신대, 한국외대 아랍어과를 나와서 모슬렘 선교를 위해서 무역회사 직원으로 이라크에 갔다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서 납치되어 순교하였던 그 김선일씨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도 그 사건 때문에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선일씨가 알자지라 방송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 노무현 정권이 그 김선일씨를 버렸다는 사실에 많이 분개하였지요. 조국이, 국가가 우리 국민의 목숨을 지켜준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였습니다.


김 감독은 조은령씨와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해서 촬영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 왜 어이없이 죽게 된 것일까? 여기서 김 감독의 깨달음 이야기를 직접 인용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을 보면 옛사람들은 십계명을 따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그렇게 가르쳤지만 주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이미 살인이고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실제적인 간음이다. 무언가 죄를 행해야만 죄악의 실재(實在)가 아니라 행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욕망, 소욕조차 곧 실재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계수법(計數法)입니다.”(애통 P.77)


“조은령 감독이나 김선일 형제가 바라고 열매 맺기 원했던 것을 다 이루지 못하고 어이없이 갔지만... 마음에 품은 소욕, 곧 미움이 살인이고, 음욕이 간음이라면... 그 반대로 우리가 품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소망과 꿈들도 다 실재라는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결실을 안 보여도 그들이 하나님나라를 향해 품고 갔던 그 모든 것, 천국을 향한 소망과 기도와 헌신의 모든 과정들이 실재요 이미 열매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평가해주시는 것입니다.”(애통 P.78)


마음에 품은 것이 곧 실재라는 것이지요. 김 감독이 이런 깨달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르네 지라르’라는 프랑스 인류사회학자의 책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이하 ‘사탄’이라 표현함)를 통해서라고 합니다. 지라르는 이 책에서 십계명의 폭력들-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증거-을 분석하면서 마지막 계명인 “네 이웃의 집을 탐(貪)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은 어떤 ‘행위’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을 금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탐내지 말라’는 어원적 말이 ‘욕망하다’라는 말이고, 그 말은 금지된 과일에 대한 하와의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김 감독은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욕망,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이미 간파하였다는 것이지요. 김 감독의 통찰력과 인문학적 소견이 남달라 보입니다. 김 감독은 이(탐심)를 통해 ‘천국의 소욕’도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욕을 품은 자체가 기도요 선교요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은령씨나 김선일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재라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열매라는 것이고, 이를 통해 실재로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르네 지라르’의 책들에 관심이 많고, 김 감독이 언급한 ‘사탄’에 대해서도 서평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앞에서 김 감독에게 친근감이 간다는 이유도 키에슬로프스키 영화감독이나 르네 지라르, 그리고 ‘로이드 존스’ 목사에 대해서 김 감독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로이드 존스 목사는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데서 제가 어떤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거던요.


2006년에 나온 김 감독의 “부흥의 여정”이라는 책도 보면-아직 안 읽었지만- 20세기 부흥의 진원지인 영국 웨일즈 지방을 촬영하면서부터 시작이 된다고 하는데, 이 웨일즈의 부흥은 로이드 존스 목사가 부흥에 대해서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책은 흔히 부흥회에서 말하는 부흥이 아니고 선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차후 읽어야 하겠지요.


아무튼 김 감독은 이런 통찰을 얻고 계속 조은령 감독을 촬영하다가 이 조은령 감독도 자신과 똑같이 “가난한 사람들” “애통하는 자”란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하나님의 풍경’을 영상에 담겠다는 생각도 같았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이 총감독이라는 생각도 비슷하구요.


김 감독은 또다른 인연으로 한재성 선교사를 알게 되는데, 2004년경에 카자흐스탄에서 선교사역을 하던 한재성 선교사와 김진희 선교사 부부의 집에 강도가 들어 김진희 선교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처절한 애통 속에 있는 한재성 선교사의 모습이 영상물에 담겨있는데, 그 모습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촬영 당시 딸 2명과 아파트에서 살면서 강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김진희 선교사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한재성 선교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였습니다. 그 선교지역에서는 김진희 선교사의 순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고, 한재성 선교사는 다시 아내를 죽인 땅, 카자흐스탄에서 아내의 피값을 열매로 받기 위해 준비중에 있다고 합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배기철, 조은령, 김선일, 한재성 선교사들을 알아가면서 ‘애통’의 의미에 대해서 통찰을 얻게 됩니다. 구약의 이사야, 예례미야, 느혜미야 선지자들이 애통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寃)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花冠)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사61:2,3)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6:10,11)


김 감독은 신원의 날이 위로하는 날이고, 모든 피 흘린 증인들이 가진 애통의 한을 풀어주려면 피흘리는 숫자가, 희생의 양이 더 차야한다는 것을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여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팔복 말씀도 구약적인 배경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들 구약 선지자들의 애통의 이유가 예루살렘의 회복, 하나님의 성전의 회복에 대한 애통이라는 것이랍니다. 김 감독의 성경에 대한 통찰력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계속하여 김 감독은 성전의 회복을 놓고 진정으로 ‘애통’하는 자들에게 주는 ‘위로’는 ‘부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내용은 뜻밖인데, 김 감독의 생각은 이사야는 슬픈 자를 위로하는 것을 ‘여호와의 날’ ‘신원의 날’로 표현하고, 하나님께서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가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원한을 풀어주는데, 위 회복과 위로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사61:1, 66:15)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위로하다’라는 말은 ‘보혜사(保惠師)’ 즉 위로의 영에서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정한 ‘위로의 영’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애통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임하는데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들의 본질적 소망인 ‘성전의 회복’을 이루어주시며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부흥”(애통 P.137)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의 본질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경의 애통하는 자들은 거의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시며 애통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애통은 하나님의 성전의 회복에 대한 애통이고, 그에 대한 위로는 부흥이라는 김 감독의 생각에 동의하세요? 저는 대체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김 감독은 몽골에서 사역하는 이용규 선교사(하버드대 역사학 전공)를 통해서 또다른 통찰을 얻는데,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서진(西進)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진운동은 예수님이 전파한 복음이 바울과 제자들을 통해 서유럽에 전해졌고, 청교도들의 이주로 아메리카, 미국 땅에서 열매 맺었으며,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일본, 중국으로 이동했으며, 이제 중앙아시아를 통해 이슬람권과 예루살렘에 전해질 것이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복음이 결국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서진운동은 서유럽이나 미국 교회의 안목에서 본 것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그 땅들은 복음의 씨앗이 파종되지 않은 개척지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뿌려진 곳이고,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다시 찾으시는 것이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을 개척하거나 개종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역사와 상황 속에서 순교와 희생으로 뿌려진 씨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다시 불러 모으신다.’ 꽤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들립니다.


사실 사도행전에 보면,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집트에는 마가와 마태가, 인도에는 도마가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지요. 그래서 중앙아시아나 이집트 등도 회복해야할 땅이라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서 여러 열매를 맺듯이 한 명의 순교자를 통해 여러 믿는 자들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고,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생겨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이 자진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김 감독은 이런 깨달음의 와중에 김상렬이라는 선교사를 알게 됩니다. 김상렬씨는 2001년경 태국 치앙라이 빠마이에서 산족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길을 닦다 스무 살의 나이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게 되는데, 그 죽음이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 감독이 김상렬씨의 아버지 김종준 교수를 만났을 때, 그 아버지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심장병으로 위험할 때, 우리 부부는 상렬이를 주님께 드리고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확실히 갖게 되었습니다. 상렬이가 치앙라이에서 주님 품에 안겼을 때, 히스기야는 기도해서 15년을 생명을 연장해주셨는데 우리 상렬이는 20년이나 연장해주셨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애통 P.178)


아들의 생명을 20년이나 연장해주셨다고 감사 고백하는 아버지. 이는 분명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오지 못하는 고백일 것입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배기철, 조은령, 김선일, 한재성, 김상렬 등 5명의 선교사들의 삶과 애통을 촬영하였고 다른 선교사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당신의 애통은 그 어디나 편재(遍在)하군요.” ‘애통’을 쓰면서 너무나 많은 이들이 희생과 고통으로 드려졌음을 보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려진 그 헌신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도도히 이어져왔음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김 감독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보았고, 제가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정죄하는 듯한 모습에서 주님의 사랑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은 아닌가 반성도 해보았습니다.(진리를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소유(자유)한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이루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의 이성과 사고를 초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날마다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정으로 ‘세상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위로가 있지 않을까요?


‘가난’ 영상물의 삽입곡이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이고 ‘애통’ 영상물의 삽입곡이 “좋은 나라”인데, 좋은 나라는 하덕규가 처음 작사작곡하여 불렀던 노래로서, 이를 2001년경에 ‘하진’이라는 가스펠가수가 다시 불렀다가, 영상물에서는 다시 김도현이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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