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몸짓 - 동물은 어떻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가?
칼 사피나 지음, 김병화 옮김 / 돌베개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과학엔 젬병임에도 인문서보다 자연과학 책들에 자꾸 손이 간다. 몇 해 전 TV에서 본 영상 때문이다. 밀렵꾼에게서 자신들을 구해준 은인이 죽자 20여 마리의 코끼리가 집 앞에 모여 애도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걸 보자 인본주의에 의심이 생겼다. 내레이터는 그들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에서 찾아와 장례식 내내 그렇게 있었고, 이듬해 기일에도 다시 왔다고 했다. 죽은 건 어찌 알았으며 동물이 어떻게 문상을 할까? 게다가 제사까지? 묵념하듯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는 코끼리들을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봤는데도 시간이 흐르자 내 기억이 의심스러웠다.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니까.

 

다행히 생태학자 칼 사피나의 <소리와 몸짓> 덕분에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소통하는지 다룬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은 코끼리. 그들에 관한 긴 이야기 속에 내가 본 에피소드가 있었는데(171), 그쯤 읽었을 땐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능이 높고 사회적이고 조상을 존중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공감할 줄 알고심지어 슬퍼서 죽을 수도 있는코끼리에 관한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잊히지 않는 건 가족을 모두 잃은 육지의 코끼리를 바다의 흰긴수염고래가 위로하는 대목이었다. 믿을 수 있는가? 바다와 육지에 사는 전혀 다른 동물이 종()을 초월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하지만 가모장이 이끄는 복잡하고 끈끈한 공동체, 초음파를 이용한 놀라운 소통력, 큰 두뇌와 긴 수명 등 그들이 가진 여러 공통점을 생각하면 둘의 대화를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한지 모른다. 같은 인간보다 개나 고양이와의 소통에 열심인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걸 보면 더욱.

 

그러므로 정말 이상한 일은 동물도 생각하고 느끼고 함께 어울려 놀고 웃고 우는 존재란 것을 무수한 증거 -이 책은 750쪽이 넘는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특히 과학자들이 부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과학자들이 가짜 동물이나 거울 따위를 이용한 실험을 근거로, 동물에겐 마음이론도 자기 이해도 없으며 오직 인간만이 타자의 마음을 읽고 자아를 인식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자아 개념을 보여준다고 알려진 저 유명한 거울테스트를 비판하면서, 늑대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자기 다리를 뜯어먹을 것이니 거울은 자기 이해가 아니라 반영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영장류, 돌고래, 코끼리, 까마귀 등도 이를 이해하며, 인간성의 지표로 여겨지는 거울뉴런 역시 원숭이에게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음을 일깨운다. 한마디로 인간만의 고유성이나 특별함을 주장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동물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압도적인 힘을 갖고도 관대함과 솔선수범으로 무리를 통솔하는 늑대나, 평생 서로를 기억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생선 한 마리도 나눠먹는 고래를 보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필자는 누가 우월하다고 말하는 대신, 모든 동물은 나름의 특별함을 갖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네게도 내게도 그들에게도 삶은 무겁다. 그 무거움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바탕이며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넷페미史 - 우리에게도 빛과 그늘의 역사가 있다
권김현영 외 지음 / 나무연필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동안 페미니즘 책을 멀리했다. 그 책들을 읽는 바람에 오랜 우정을 잃었고 사랑이 위태로워졌기에. 페미니즘은 가장 친밀한 관계들에 균열을 일으켰고 차별에 분개하면서도 당연시하는 나 자신의 이중성을 일깨웠다. 독서는 괴로웠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분노만 쌓는 것이 싫어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고 책들이 쏟아져 나와도 선뜻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민국 넷페미사>는 달랐다. 제목이 이상해서(‘넷페미가 뭐지?’) 집어 들었다가 빵 터졌다. 책을 보다가 이렇게 웃은 게 얼마만인지. 이 책은 201610페미니즘 라운드 테이블이 기획한 강의와 토론을 정리한 것인데, 생생한 입말 덕에 여느 페미니즘 책보다 쉽고 즐겁게 읽힌다. 기막힌 현실을 한숨이 아니라 웃음으로 전하는 권김현영과 손희정의 입담은 감탄스럽거니와, 그 입담에 담긴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온라인 여성운동사는 더욱 감탄스럽다. 특히 이들의 강의에 이어진 박은하이민경의 3강은, 90년대 영 페미니스트들을 자신의 계보로 인정하면서도 그들과는 독립적으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해가는 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통해, 나 같은 비관주의자의 예단과 달리 여성주의의 역사는 도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내가 산 시대였으나 내가 아는 역사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역사에서 여성은 언제나 대사 없는 보조출연자거나 말 못하는 피해자였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하는 여성, 말로 싸우는 영혼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역사는 메갈리아의 언어만큼이나 낯설고 뜨겁다. 이상한 것은 언론에서 메갈리아의 언어를 처음 접했을 때 눈살을 찌푸렸던 내가 이 책에서 그걸 봤을 때는 웃음을 터뜨렸고 통쾌함마저 느꼈다는 점이다. 왜 똑같은 언어가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그것은 언어가 놓인 맥락이 달랐기 때문이리라. 권김현영은 과거 영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주장을 했을 때 이를 맥락적으로이해하고 그 가치를 지켜가려는 사회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란 과정과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고 지적한다.

 

그 지적은 오늘날의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워 소수자의 언어를 검열하고 예스컷을 외치는 사회, 양성평등의 이름으로 다수자가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회. 그 사회에서 아버지들은 버림받았다며 흐느끼고, 아들들은 자신은 이 가부장제의 수혜를 받은 적이 없다고 광광 울고있다. 현 사회의 시대정신과도 같은 이런 자기연민은, 자신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전가하는 미성숙함을 반영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넷페미들이 그만 징징대라고 일갈하는 것은 얼마나 올바른가.

 

물론 필자들이 인정하듯 넷페미나 여성이 늘 옳은 말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많아지는 게 진보지 그 목소리가 다 옳은 얘기여야 진보는 아니다.” 진보란 올바른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온갖 목소리들의 아우성이 올바름을 만든다고 믿는 낙관이다. 영웅의 웅변이 아니라 아우성의 낙관이 역사를 만든다. <대한민국 넷페미사>를 읽고 영화 <파란 나비효과>를 본 지금, 나는 비로소 역사를 믿게 되었다. 내가 역사임을 믿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에서 이런 논픽션이 나왔다는 데 그저 감사. 2011년 내가 읽은 최고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해의 마지막 날, 올해 읽은 책들을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둔다. 가끔 읽은 책을 다시 읽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1.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재미있으나 정밀하지는 못한 느낌 

2.강영숙, 리나 -새로움, 딱 거기까지 

3.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공부가 되었으나 2%부족 

4.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재밌다. 조금 줄였어도 좋았을 듯 

5.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쿳시 작품 중 가장 읽기 힘들었다 

6.---, 마이클 K 

7.---, 야만인을 기다리며 -쿳시의 매력에 한동안 빠져 지내다 

8.아리스티드, 가난한 휴머니즘 -얇지만 ㅂ무게 있는 

9.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10.불가노프, 거장과 마르가리따 -색다르고,  꼼꼼히 분석하고 싶은 

11.심양장계  

12.마리 로뱅, 몬산토 -말이 필요없는 

13.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14.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15.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 

16.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17.----, 감정교육 

18.제인 오스틴, 에마 

19.이영희, 대화 -너무 늦게 읽은

20.벤야멘타 하인학교 -독특하고 매혹적인 

21.볼라뇨, 전화  

22.----, 칠레의 밤 -매력적이지만 도취되지는 않는 

23.헤르타 뮐러, 숨그네 -숨이 막히다 

24.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25.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김원영이란 이름을 기억하다 

26.노근리 이야기 -내용과 형식이 조응한 만화 

27.안전지대 고라즈니 

28.최기숙, 처녀귀신  

29.정약용, 목민심서 -예전과는 다른 감동을 느끼다 

30.종교전쟁  

31.스픽스의 앵무새 

32.나쓰메 소세키, 마음 

33.-----, 그후 

34.앵무새 죽이기 

35.이언 와트, 소설의 발생 

36.이가원, 유교반도 허균 -허균평전보다 재밌다 

37.미요시 유키오, 일본문학의 근대와 반근대 -쓸만한 대목이 적다 

38.루쉰과 저우쭈어런 -루쉰의 몰랐던 면모를 본 건 재미있으나 깊이는... 

39.사라져가는 목소리들 

40.저항과 아만 -이언진의 발견! 

41.박희병, 나는 골목길 부처다 -박희병의 글쓰기가 조금만 유연해진다면! 

42.낯선 세계로의 여행 

43.한시미학산책 -정민의 감수성은 정말! 

44.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45.---,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46.----, 셜록 홈즈는 틀렸다 

47.나는 어떤 사람인가 

48.나를 더 사랑하는 법 

49.죽음과 함께 춤을 

50.카프카와의 대화 -카프카 평전보다 더 카프카를 느끼게 한다  

51.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 

52.계승범,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 -충격!

53.뮐러, 저지대  

54.감정노동 

55.국민을 그만두는 법 

56.조선인의 유토피아

뭔가 더 읽은 듯한데 생각이 안 난다. 고마운 책들 덕분에 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회에서 이른바 '고전'을 읽기로 했다. 필독이니 추천이니 해서 읽어야 할 듯한데 막상 읽지는 않은, 그래서 어쩐지 그 앞에서 주눅이 드는 책들을 읽자고 의기투합. 편하게 시작하기 위해 문학, 그 중에도 초기 현대문학으로 주제를 잡고 기간은 6개월로 정했다.  

제일 먼저 읽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들, <자기만의 방>과 <3기니>. 근 백 년이 지났지만 이렇듯 아름다우면서도 냉철한 에세이는 보기 드물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두번째 책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제목만 듣고 그냥 그러련 했는데 정말 놀라운 소설이다. 내친 김에 <감정교육>까지 읽다. 읽기 쉽지 않은 소설들이지만 그만큼 여운이 길고 깊다. 

세번째,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하도 까다로워서 열린책들, 민음사, 펭귄의 3가지 번역판을 다 읽었다. 그렇게 읽고 바흐친의 글들도 찾아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이 지리멸렬한 지하인에게 흠씬 빠지다. 놀라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꼭 읽어야 할 작품. 

세번의 토론은 진지하고 즐거웠다. 저마다 작품을 읽는 눈이 달랐고, 그 다름이 새로운 자극이 된다. 앞으로 카프카의 <소송>과 20세기초 한중일 삼국의 작가들을 읽을 예정. 다 읽고나면 한국 고전들을 읽고 싶은데 이 여자들이 좋아라 할까?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4월 20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10월 17일에 저장

3기니
버지니아 울프 지음, 태혜숙 옮김 / 이후 / 2007년 10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2010년 10월 17일에 저장
품절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4월 20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10월 17일에 저장

감정교육- 한 젊은이의 이야기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민희식.임채문 옮김 / 시와진실 / 2007년 9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10년 10월 17일에 저장
절판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