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
안젤로 E. 볼란데스 지음, 박재영.고주미 옮김 / 청년의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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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제정된 ‘연명의료 결정법’의 첫 단계로 8월 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확대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호스피스가 시작된 건 1965년, 영국의 시슬리 손더스가 현대적 호스피스의 출발로 꼽히는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설립한 것이 1967년이니 퍽 이른 시작이다. 한데 이후 영국 등 여러 나라들이 호스피스를 의료체계에 도입해 완화의료를 발전시켜온 것과 달리, 한국은 생명연장과 첨단 의료기술에 중점을 둔 의료가 주를 이루었고 환자의 고통과 권리는 간과되어왔다.

다행히 이제라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환자를 중심에 둔 완화의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의 대상을 넓히고 병동과 인력을 늘리는 양적 조치로는 부족하며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환자보다 질병에 초점을 맞춘 의료, 의사 중심의 권위주의적 시스템이 변해야 하고, 노화와 질병과 죽음을 실패로 여기는 우리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첫 걸음은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편안히 죽기를 바라지만 왜 수많은 이웃들이 병원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는지에 대해선 알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다르기를 바라고 다를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안젤로 볼란데스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인지 알게 된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며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 전문의)인 필자는, 지금처럼 삶의 마지막까지 공격적인 치료를 계속하고 그 부작용에 대해 침묵하는 한 평온한 죽음은 불가능하다고 확언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처방은 ‘대화’다. 그는 정말 중요한 의료행위는 값비싼 첨단 장비나 기술이 아니라 대화라면서, 환자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지 터놓고 대화해야 하며 이런 대화 없이 이루어지는 과도한 연명의료는 의료사고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면 한국의 의료현장에선 의료사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셈이다. 의사는 물론 환자 가족들도 환자와 죽음에 대해 대화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의료적 처치에 비해 특별한 장비나 비용이 들지 않는데도 환자와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실 중병을 앓는 환자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힘들다. 볼란데스는 대화는 “가장 어려운 시술”이므로 의과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강화하고, 의사가 된 뒤에도 수술 실습을 하듯이 대화술을 계속 연습해야 하며, 환자도 미리 사전의료지시서를 쓰고 주위 사람들과 죽음을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지식의 불균형으로 인해 대화가 힘든 점에 대해선, 연명의료와 완화의료의 실제 과정을 보여주고 환자와 대화하는 동영상 해법을 제시한다.(그가 참여하는 단체에서 만든 http://theconversationproject.org에는 한국어 버전도 있다.)

책을 읽고 나니 호스피스 완화의료 발전을 위해 시설 확충보다 먼저 이런 책부터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이 끝나기 전에 우리가 서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음을 깨닫고 나누기만 해도 마음은 가볍고 후회는 적을 테니, 더 늦기 전에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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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50인의 용기 - 30년간 암환자를 밀착 취재한 집념의 기록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 김성연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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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내 아들이 꿈구는 세상>을 읽은 뒤부터 야나기다 구니오의 책을 기다려왔다.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좋았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생겼고. 다만 교정 상태 등에서 편집자의 정성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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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 너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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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선조대 역사를 복원해 동서분당과 이이 등 사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제목의 답은 이렇게 길게 서술된 역사에서가 아니라 저자의 짧은 논평에서만 찾을 수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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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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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시 강의를 들은 수강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추운 겨울밤 일이 끝나자마자 저녁도 거르고 달려오던 친구가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강좌 도중 이직을 한데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짬을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늙고 아픈 부모를 지켜보는 그에게 힘이 되어줄 말을 찾다가 늦은 답을 보냈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어봤나요. 어쩌면 위로가 될 거예요.

내 답이 그에게도 답이 되었을까? 알 수 없다. 그저 뒤엉킨 근심의 타래를 풀 실마리를 내가 이 책에서 찾았듯 그도 그러기를 바랄 뿐.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리베카 솔닛처럼 자기 앞에 놓인 숙제를 해결하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하길 바랄 뿐이다.

 

왜 하필 이야기인가? 살기 위해서는, 나를 정당화하고 고통을 견디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쓰도록 요구하고 종종 뜻밖의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리베카 솔닛 앞에 불쑥 나타난 살구처럼. 어느 날 갑자기 집안 가득 쌓인 살구,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딴 살구, 병든 어머니처럼 막무가내로 그녀의 손길을 요구하는 살구. 그것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며 말해야 할 이야기. 솔닛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 미지의 땅 아이슬란드로 떠난다. 제대로 보려면 거리가 필요하고, 이야기를 쓰려면 내면으로의 침잠만큼 밖으로 나아가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세상에 자신을 비춰봐야 하므로.

 

낮과 밤, 빛과 어둠의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그녀는 극지의 얼음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신을 거울 삼아 그 거울을 질투하고 비난했던 어머니 -그래서 가까이하기엔 너무도 멀었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되비추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른 듯 닮은 두 거울상에 드리운 완강한 세상의 이야기를 읽는다. 거기엔 아버지, 사회, 교회가 말하는 결점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붙들려 평생 상처 입고 상처 입혔던 어머니가 있다. 자신은 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려 싸우면서 세상의 이야기를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꿈꿨으나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음을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치매로 이야기를 잃은 어머니는 아잇적처럼 다시 행복해한다. 비록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고 어머니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지만, 솔닛은 자신과 어머니의 다름 대신 어머니의 못 다 쓴 이야기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거울은 냉담한 이야기가 켜켜이 얼어붙은 얼음이되, 얼음을 녹이는 것은 차가운 이야기 속에 얼어붙은 뜨거운 눈물이다. 그것은 사랑과 원망의 원환이며 입구가 곧 출구인 미로다. 이 미로를 벗어날 길이 있을까?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살구다. 어머니가 심고 가꾼 살구로 그녀는 잼과 시럽을 만들어 사랑하는 이들과 나눈다. 살구가 서로의 몸으로 들어가듯, 사랑이란 그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 그녀는,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슬픔과 이야기를 먹고 살며 그러다 때론 쓰디쓴 실패에서 달콤한 꿀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끝까지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하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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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구전서사의 부친살해
김영희 지음 / 월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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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자식은 독립하고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경제, 도덕, 건강 등을 이유로 부모를 떠나지 않고 자식을 놓지 않는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아래 깔린 심리는 똑같다. 분리되는 것, 불안전한 자신을 확인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자신의 존재 증명이며 또 다른 자기다. 그래서 자식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고 떠나려 할 때 부모는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고통을 느낀다. 한편, 아이에게 부모는 안전과 안락을 제공하는 울타리다. 자식은 그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보한다. 그러나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기에 그 존재는 위태로우며 그래서 자식은 독립을, 자신이 주인인 새 세계를 꿈꾼다.

 

세계의 수많은 신화와 동화에 부친살해’ ‘자식살해라는 패륜의 주제가 거듭해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친살해는 프로이트가 말했듯 문명의 원천이며, (가부장제에서) 사회적 주체로 서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다. ‘부친살해없이는 심리적 주체의 독립은 물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역사적 주체의 등장도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전통서사에 부친살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국문학자 김영희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구전서사의 부친살해>라는 보기 드문 저작에서 그는 부친살해보다 자식살해가 더 자주 발견되는 한국의 서사 전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천착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신화에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나 오이디푸스처럼 아버지를 부정한 아들이 없다. 나라를 세운 주몽, 불법(佛法)을 세운 아도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서 부친살해가 아니라 부친탐색에 나선다. 그들은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의 세계로 가서 정체성을 인정받고 권력을 위임받는다. 때문에 그들의 세계는 아버지의 후광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자식의 분리는 수동적인 미완의 것으로 남는다.

 

반면, 아버지의 분리는 자식살해라는 능동적인 모습을 띤다. 구전서사에는 부모를 위해 아이를 죽이는 수많은 효행담이 등장한다. 개중엔 실수로 손자를 삶아먹은 시부모를 감싸 효부상을 받은 며느리 이야기도 있다. ‘를 내세워 엽기적인 자식살해를 옹호하고 권장하기까지 하는 이 이야기들은 기존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저자는 부친살해서사가 공동체의 미래 주체를 만드는것과 달리 자식살해공동체의 과거에 고착된 주체를 생산한다고 지적한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아이를 부모와 공동체가 집단 살해하는 아기장수설화는, 이 수구적 주체들이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얼마나 가혹하게 억압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의 욕된 현실은 몰상식한 아버지의 딸이 낳은 파행이 아니라 부친살해를 통해 미래 주체를 만들지 못한 오랜 과거의 복수다. 만약 이번에도 아버지를 죽이는 철저한 부정과 반성을 이루지 못하고 또 다른 아버지의 이름에 기댄다면, 그가 아무리 자애롭고 훌륭하다 해도 새로운 주체는 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어버이는 루쉰이 그랬듯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올라가라고 자신을 내주어야 할 것이며, 자식 된 자는 그들을 사뿐히 즈려 밟고 나아가야 한다. 한국사 최초의 부친살해’, 그것이 지금 우리의 과제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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