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의 시대 - 조선의 유교화와 사림운동
계승범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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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역사에서 배우기는 쉽지 않다. 역사의 실상을 알기는 어려우며 무엇보다 역사는 때로 자기부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치의 자식들>이란 책에는, 대량학살을 주도한 나치 한스 프랑크의 아들이 “아버지가 처형당한 날이면 나는 그의 사진 위에서 수음을 한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때문에 그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나치의 2인자였던 아버지를 옹호한 괴링과 헤쓰의 자식들보다 더. 그러나 아버지의 죄에 눈감음으로써 아버지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들과, 아버지의 죄를 직시하고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을 인정하며 괴로워하는 이들 중에 정말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흔히들 독일을 예로 들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지만,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이처럼 아버지를 부정하는 -우리 사회가 가장 금기시하는 패륜과 그에 따른 자기부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버지가 처형된 날 수음을 한다는 고백은 따라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정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토로한 비명과도 같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건 이런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며 그래서 어렵다. 역사에서 배우느니 차라리 역사를 왜곡할 만큼. 식민사학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한국사의 경우, 민족주의란 이름 아래 당쟁은 철학논쟁으로, 사대는 민족 이익을 도모한 최선의 외교로 평가되곤 했다. 또한 주희의 해석을 절대 권위로 확립한 조광조-이황-송시열이 선비의 표상이 되고 최강국 청나라와 싸우겠다는 몽상이 애국으로 신성시되면서, 백성들에게 전란과 패배의 고통을 겪게 한 이들의 책임은 잊혀졌다.

 

역사학자 계승범은 오래 잊혔던 그 역사를 파헤친다.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에서 광해군을 몰아낸 조선 사대주의의 민낯을 폭로한 그는,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에서 이상적 인간상으로 숭상되어온 선비의 실상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정지된 시간>에 이은 근작 <중종의 시대>에서, 뿌리 없는 권력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대국의 권위를 이용하고 그에 의탁해 사대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공고히 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그가 대장금의 왕으로나 기억되던 중종에 주목한 까닭은, ‘중종의 시대’가 사대와 유교가 하나로 합체된 시기이며 중종이 사대를 주도함으로써 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때문이다.

 

신하들의 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은 허약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명황제의 권위를 빌린다. 시도 때도 없이 사신을 보내며 정성을 다한 덕에 그는 허수아비 왕에서 최장수 왕으로 보신에 성공한다.

백성들은 빈번한 사신 행차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와 그의 치하에서 세력을 키운 사림에게 의(義)란 중화에 대한 의리일 뿐, 자신들의 땅을 갈며 예와 의를 다한 민초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왕조사회이니 당연하다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광해군이 권력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실리외교를 실천한 것이나, 중국으로부터 직접 군사적 위협을 받은 베트남왕조가 틈만 나면 황제를 칭하며 주체성을 내세운 것을 보면 그리 말할 수만은 없다.

 

사대주의는 조선인의 속성이 아니라 제 땅과 백성을 외면한 지배층의 전략이며 그들의 속성이었으니, 계승범이 보여주었듯 이 역사를 직시하고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고 대국의 사절들 앞에서 부채춤을 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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