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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 A Life -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ㅣ 미다스 휴먼북스 3
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이것저것 책을 읽다가 평전을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맘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썩 좋은 리뷰를 읽었던 기억으로 '헬렌 켈러'를 선택했다. 놀라운 위인으로만 알아온 헬렌 켈러에게 또다른 이야기가 있는 걸까 라는 궁금증으로.
도로시 허먼의 헬렌 켈러는 섬세하고 성실하고 엄정하다. 섣부른 판단, 주관적 잣대에 의한 재단은 이 책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로시 허먼은 이 점에서 탁월한 전범을 보인다. 저자는 헬렌 켈러의 따뜻함과 냉담함을, 애니 설리번의 헌신과 이기를 함께 얘기한다. 이들뿐 아니라 헬렌과 애니를 둘러싼 사람들 -애니의 남편 존, 그들의 지지자인 알렉산더 벨과 마크 트웨인, 말년을 지킨 폴리와 넬라 모두 결코 일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도로시 허먼은 인간이 가진 다면성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드러내며, 성급한 판단 대신 그 연원과 파급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전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지만 가질 수 없는 미덕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반복되는 느낌을 준다. 헬렌과 애니의 다층적 성격을 잘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설명의 과잉으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책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두 여자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것인데, 수십 년 간에 걸친 둘의 관계가 시간순으로 서술되다 보니 극적 긴장과 집중이 사라져 막상 그 관계의 독특함을 잊게 된다. 평전은 결국 선택을 필요로 하는데 -어떤 사건, 어떤 관계, 관계의 어떤 측면을 택할 것이냐- 이 점에서 도로시 허먼은 지나치게 신중했던 것 같다. 지금 페이지에서 100페이지쯤 덜어낼 각오를 하고 집중성을 발휘했다면 더 매력적인 헬렌 켈러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