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자들 -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주승현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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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을 선의로 돕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도하든 하지 않든,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삶을 비교하며 열등함을 자백받으려는 태도는 지금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실상 탈북민은 이등 국민도 아닌 불가촉천민에 가깝다. -p. 58, 60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한반도에 봄이 왔다. 봄다운 봄을 맞은 것이 몇 해만인지. 얼마 전까지도 전쟁 임박설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는데 남북 대화가 시작되면서 편안해졌다. 남북 교류가 이어지고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까지 잘 이루어져 계속 지금처럼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 걱정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분란의 시작이기 쉽다. 무지는 오해를 낳고 오해는 갈등으로 이어지는 법이니 먼저 온 통일이라 불리던 3만 탈북민의 현실이 바로 그 증거다.

 

2002년 북측 심리전단 요원으로 복무하다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주승현은 자신을 조난자라 칭한다. 그는 1만 볼트의 고압전류와 지뢰, 4중 철조망을 뚫고 온 용감한 귀순용사고 십년을 고학해 탈북민 최초의 통일학 박사가 된 교수다. 경력만 보면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 성공한 탈북민이다. 그러나 그는 자전 에세이 <조난자들>에서 아무리 그럴듯한 명함을 가져도 탈북민이라는 신분이 존재하는 한 동등하게 존중받기 어려운 경계가 있으며 자신은 지금도 그 사선을 넘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의 말이 아니어도 남한 사회에 탈북민에 대한 배타적·차별적 시선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나 역시 탈북민이라고 하면 남다르게 보았으니 노골적인 배제는 아니어도 은근한 경계가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경계를 삶과 죽음이 갈리는 사선(死線)으로까지 느끼는 줄은 책을 읽기 전엔 몰랐다. 남쪽에 살면서 북쪽 사정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철책 너머만이 아니라 바로 옆에 사는 탈북민의 실상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음을 몰랐다. 그 무지가 이들에게 상처가 되고 폭력이 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들을 사선에 선 조난자로 만든다는 것을 몰랐다.

 

주승현은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해이 사회가 얼마나 모르는지 가만히 일깨운다. 그는 사선을 넘어와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친구들에 대해, 남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먼 이국을 떠도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내장 속까지 온 세상에 까발려진 탈북 병사의 치욕과 그가 앞으로 마주칠 온갖 혐오와 편견에 대해 말한다.

 

그 어조는 낮고 조심스러우며 언어는 답답할 만큼 절제되어 있다. 탈북 병사의 인격과 존엄이 정부, 언론, 의료진 각자의 시각과 목적에 의해 무시되었다고 지적할 때조차 그는 분노로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비통하게 신음한다. 탈북민에게 허용된 목소리는 남한을 찬양하는 한 가지뿐이며 탈북자는 전쟁포로에 불과함을 알기 때문이다.

 

<조난자들>을 읽는 것은 이 현실에 좌절한 이의 낮은 목소리 뒤에 숨은 절망과 망설임, 갈등과 고뇌를 읽는 것이며, 검은 글줄 사이에 감춰진 열망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괴롭지만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결국 이것은 내 이야기, 분단국에 사는 한() 조난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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