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학으로 육아한다
이용범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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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학으로 육아한다

 

  이 책은 아이가 유아기 과정을 심리학신경과학관점에서 풀어본 것이다. 그 시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많은 궁금증이 생겨 책을 펼쳐보았다. 물론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불변의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심리 실험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성향을 얼추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성향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유의미한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뇌과학을 심리학과 접목하여 우리의 마음을 뇌와 연계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마음과 행동을 분석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생긴다.

 

  목차만 살펴봐도 흥미로웠다. <아이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 <왼손잡이는 유전일까?>, <아이의 지능, 엄마에게 달려 있다> 와 같은 제목은 눈길을 끌었다.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다양한 연구 이론과 실험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신뢰성을 더했다. 이를테면 1978년 데이비드 프리맥과 가이 우드러프에 의해 이루어진 마음 이론은 타인의 마음이나 의도를 예측하는 것인데 과연 아이가 그것을 알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생후 18개월쯤 되면 아이들은 타인이 자신과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걸 틀린 믿음 과제라고 부르는데 동화를 읽을 때도 주인공과 독자의 믿음을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은 애를 태우며 동화를 읽곤 하는 것이다. 이렇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이 주제도 꽤 궁금했다. 물론 지금은 양손잡이라고 하는게 정확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좌우로 나눠져있기 때문에 한쪽 손의 우세가 나타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뇌가 아니라 척수가 우세 손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전 외에도 다양한 요인에 의해 왼손잡이가 발현될 수 있는데, 자궁에 있을 때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될수록 그 확률이 높다고도 한다. 왼손잡이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긴 하지만 고정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경험과 학습이기 때문에 이 습관은 쉽게 고쳐지기 어렵다고 한다. 성인이 된 나도 아직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한다. 글씨는 겨우 고쳤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비교적 난 어린 나이의 기억이 잘 나는데, 내 동생은 초등학생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아동기의 뇌가 급격히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는 것도 떠올릴수록 자신의 관점과 경험을 계속 추가하기 때문에 왜곡되거나 변형된다고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기억도 결국 원형이 아닌 셈이 된다.

 

  또한 아이의 지능은 아빠의 유전자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엄마의 X염색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부담이 되기도 한다. 지능은 엄마에게 물려받는 것이라니. 엄마의 지능, 그리고 직업도 보육의 질과 관련 있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기에 중요한 영향을 준단다. 고정되지 않은 유동 지능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이 보인다. 지능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지능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뇌는 학습을 통해 더 많은 지적 능력을 활용하게끔 만들어져 있으니까.

 

  책은 부모들이 미처 몰랐던 복잡한 아이들의 심리를 다양한 전문가들의 심리 실험 결과를 제시하며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육아를 하기에 많은 지적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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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 쉽게 얻은 사람은 모르는 일의 기쁨에 관하여
김경호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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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나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원하는 게 된 적이라면 1지망으로 쓴 고등학교에 가게 된 것. 그건 뺑뺑이 추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순전히 운이었다. 취준생을 거쳐 직장인이 되고 엄마가 되기까지 모든 것이 한 번에 원하는 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김경호 앵커의 에세이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을 더욱 공감하며 읽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끝이 안 보이고 기약이 없어 더욱 불안했던 시절. 인내를 배울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난 단단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도 말했다. 쉽게 얻은 사람은 모르는,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진짜 행복이 있다고.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기다림이 길었기에 기다림이 끝난 이후 갖게 되는 감사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스스로를 믿는 시간을 통해 탄탄한 내공과 깊어진 공감 능력을 얻게 된다. 모든 것은 속도로만 재단할 수 없다!

 

  느리지만 우직하게 갈 길을 가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사회생활,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저자의 조언이 많이 담겨있어 도움이 되었다. 특히 싫은 소리 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법과 남을 비판해야만 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속시원한 방법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타인에게 안 좋은 말을 잘 못하다 보니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저자가 조언한 대로 지혜로운 인간관계를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친구에 대한 생각도 인상적이었다. 친구란 오래되고 깊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가 와닿았다. 깊지는 않더라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지켜주고 그 안에서 과하지 않은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 나도 그 관계가 더 긍정적인 친구 관계라고 동의한다. 요즘 SNS 활동을 하며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댓글을 달아주는 이들이 오래된 친구보다 어쩌면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공감 능력은 요즘 시대에 정말 필요한 힘인데 그동안 그것은 여성적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여아들이 하는 소꿉놀이나 인형놀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지사지의 정신을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온전히 그 순간엔 그 역할에 몰입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남아는 경쟁이 중심인 놀이가 대부분이다. 총싸움, 칼싸움, 딱지치기 등 승자와 패자가 정확히 갈라지는 놀이. 여기엔 공감보다 승부와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 우선시된다. 저자는 그동안 여성들이 갈고 닦아 키워온 소통과 공감이란 무기를 남성도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도 우리 아이를 힘 있는 사람보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한 번에 되지 않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역설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 느려도 괜찮다. 우린 기다리며 더 많은 것을 인생에서 쌓을 수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책을 추천하는 문구 및 이유

-기다림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성숙하며 단단해진다. p.21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아 낙담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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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 인터뷰집
마티포포 지음, 정유미 외 엮음 / 포포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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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큰아이가 4살이고 둘째가 지금 배 속에 있다. 곧 아이 둘 엄마가 되면 난 양 다리에 모래 주머니가 묶여있는느낌이 들겠지? 한 직장에서 20년간 존버한 인터뷰이 이혜선님의 이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나도 지금 워킹맘이고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있는 중이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 이 책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10명의 엄마들의 인터뷰집이다. 엄마들의 서사를 담아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프리랜서 엄마, 육아로 인한 경력 공백을 겪은 뒤 다시 일을 시작한 엄마, 싱글맘, 수많은 이직을 거친 엄마 등등. 그들의 절실하고도 현실적인 조언과 답변들이 내 마음을 긁어주는 듯했다.

 

  퇴근하고도 집에 들어가면 다시 2차 출근하는 기분이 드는듯한 요즘, 더욱 지쳐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월급의 대부분을 아이를 봐주시는 시부모님께 드리는데도 항상 죄송하고 아이에겐 죄책감이 있었는데, 최유진님은 아이들이 극단적으로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며 당사자인 엄마는 너무 힘들지만 딱 그 시기를 넘기면 분명히 편해지는 시기가 온다고 버티라고 응원했다. 지금 그 시기를 겪고 있는 나라서 더 마음이 꿈틀거렸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일을 겪어본 이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물어보니 그녀는 경력이 중단되기 전엔 보이는 것들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연봉이나 직급보다 퀄리티 있는 교류의 장. 역시 사람은 관계의 동물인 것 같다.

 

  7세 자녀 한 명을 둔 밀키베이비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우영님의 일과 육아 밸런스가 무너졌던 지옥을 지나온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다. 아이가 2~3살 무렵 카카오를 퇴사했었다. 먼 통근 거리에 몸도 힘들고 아이도 어려서 자괴감도 너무 컸다고. 육아도, 일도 100% 할 수 없다는 그 자괴감 때문에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던 듯하다. 그러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가 가능한 회사에 재취업했고 지금도 물론 일과 가정의 양립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전처럼 지옥은 아니라 하니 다행이다.

 

  엄마라는 타이틀엔 사회의 편견이 많은 것 같다. 이미 충분하게 열심히 치열하게 하고 있는데 그 편견에 맞서 더 열심히 해야 하니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결혼과 출산으로 여성의 삶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바뀌는 것 같다. 10명의 인터뷰이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 엄마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꼭 개선되어야 할 점이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을 읽어보는 것도 쏠쏠한 의미가 있다. 요즘같이 맞벌이가 일상이 된 작금의 시대엔 엄마의 일이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기를 모두가 바라고 응원해야 마땅할 것이다. 10명의 인터뷰이 엄마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온 점을 존경하며 이 평범한 서사가 나와 같은 이에게 얼마나 위로와 응원이 되는지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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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일홍 지음 / FIKA(피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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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네이버의 그라폴리오라는 창작자들의 놀이터가 있다. 거기서 작가 일홍님의 일러스트를 본 기억이 난다. 종종 컴퓨터 배경화면으로도 저장해놓을 만큼 따스하고 좋았다. 흘러가는 일련의 감정들을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 일홍이라고 소개해놓은 글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라는 에세이는 일홍님이 그리고 쓴 책으로 막연히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했던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 자신이 표현하고 그려낸 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힐링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혔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꼭 내 이야기 같았고 내 삶에 들어왔던 이들이 떠올라 미소짓게 되었다. 때론 눈물도 났지만. 난 꽤 남들을 잘 배려하고 돌봐준다는 이미지를 가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나를 돌보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던 건 잊고 살았었다.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들에 휩쓸려 스스로 부정적인 시선에 갇혀 나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나에겐 내가 제일 소중한데 나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나여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내 차례가 올 거란 응원도 가슴을 뛰게 했다. 그땐 준비하라고 했다. 선물을 꺼낼 준비. 난 나를 위해 무슨 선물을 준비할까? 행복한 상상이다. 저자는 원체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인다는 건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족. 내 꿈을 가장 간절히 응원하는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난 행복한 사람이다.

 

  요즘 인간관계에서 좀 힘들다는 느낌이 적지 않게 들고 있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사사로운 갈등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그런데 상대는 내 기준을 업신여기는 기분이 들 때 관계는 흔들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좋은 관계의 시작은 그것부터니까.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저자도 조금씩 자주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빌었다. 나의 무표정에도 미소를 그려줄 나의 아이와 사랑하는 내 편이 있으니 행운을 좇기보단 놓치고 있는 행복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지금 여전히 짝을 찾고 있는 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적혀있었다. ‘걱정하지 마. 너는 분명 좋은 사람 만나게 될 거야.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한편으론 미련이란 제목의 글에서 내가 모두 동날 때까지라는 문장이 날 울렸다. 날 소진시킬 때까지 잊혀지지 않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난 성장했다.

 

  어젯밤엔 아이와 함께 마주 보고 누워있는데 엄마 눈 속에 내가 있네?” 라는 깜찍한 말을 들었다. 감격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소소하지만 완벽한 행복이 바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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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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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내가 10살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시키는데 답을 말하지 못하면 옷을 벗기겠다고 했다. 그리곤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반 아이들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했다. 난 꼼짝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몇 분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그냥 앉으라고 했는데 난 그날의 치욕과 수치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선생님은 쓰레기였다.

 

  오늘 읽은 서평도서를 보면서 수치의 그날이 떠올랐다. 수치와 부끄러움은 우리에게 낯붉힘을 일으키는 감정인데 주로 전자는 부정적 맥락에서 쓰이는 치욕, 굴욕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수치를 전방위적으로 연구해 이 책을 펴냈다.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가진 감정, 수치의 스펙트럼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치는 두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하나는 우리의 내면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유독한 감정임을 통찰하는 것, 또 하나는 자신과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수치(부끄러움) 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과학과 언어학의 도움을 빌어 수치를 살펴보는 것부터 에덴 신화를 분석하여 수치라는 타락 감정의 원형을 알아보는 것, 수치의 병리와 동양의 유교사상에서 다루는 수치, 마지막으로 우리문화에 미치는 수치의 대안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까 언급한 대로 나의 초등학생 시절 에피소드의 감정은 정말 쪽팔리다로 표현할 수 있었다. 물론 선생님이 잘못한 것이지만 아이들 앞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존심이 짓밟히는 수모를 당한 느낌은 이 비속어로도 모자란 것 같다. 열받고 몸은 얼어붙었던 그 기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책엔 우리 말과 글에 나타난 부끄러움의 구체적 언어 표현을 살펴보는 묘미도 있었다. 이를테면 최명희의 <혼불>에서 강모는 뒷목이 뜨끈해졌다. 그리고 온몸의 털이 거슬러서는 심한 수치감을 느꼈다.’ 와 같은 문장을 들 수 있다.

 

  에덴동산의 비유를 들자면 옷의 메타포는 은총, 옷이 벗겨져 알몸이 된 것은 타락이었다. , 알몸이란 상태는 수치라는 죄의 감정을 내포한다. 악의 극점이 수치다. 내면화된 수치와 이것을 은닉하려는 사회적 얼굴 사이의 갈등이 인간 심리의 중요한 문제임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열등감이 수치의 우두머리라고 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트, 나르시시즘, 리비도, 자존심과 같은 심리적 용어를 들어 준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병든 수치심의 다양한 모습들 중 다섯가지 성격장애 증후군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중에 공격적 행위로 수치심이 내면화된 사람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폭력의 희생자가 역설적으로 가해자가 되는 빈번한 경우를 예로 들며 학습된 무기력자가 되어가는 것이 말이다.

 

  이 밖에도 사이코패스가 인간과 세상을 보는 방식이랄지 윤동주와 같이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대비되면서 수치의 감정을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흡족했다. 아주 많은 주석이 달려있어 인문학 도서로 대학교양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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