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이는 밤 - 달빛 사이로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
강가희 지음 / 책밥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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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냐는 질문에 언제나 ‘위로’ 라고 답한다는 저자처럼 타인과 나 자신에게마저 치일 때 날 위로해준 것은 책이었다. 공감을 통한 위무. 이것이 달빛 사이로 다가와 안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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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는 밤 - 달빛 사이로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
강가희 지음 / 책밥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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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는 밤

 

  고단한 하루에 지쳐있는 내 손을 지그시 잡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작가의 말마따나 삶의 은유를 찾아가는 일이다. 이 과정이 메타포가 되어 시시한 삶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작가가 소개한 명작을 다시금 곱씹어보며 찾아읽기도 했다. 내가 놓치거나 느끼지 못했던 위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된 적이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볼수록 느낌이 새로웠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인 이것은 낙관적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신분 차이로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완성하고자 5년 만에 신흥 부자가 되어 나타난 개츠비. 하지만 졸부였던 그는 태생적 부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부자와 함께 상속되는 품위가 없었다. 게다가 의외로 순진했던 이 남자는 오로지 돈의 벽만이 그의 첫사랑이었던 데이지와 갈라놓았었다고 착각했다. 그의 순정보다 처음 본 아름다운 셔츠에 반한, 돈에 충만한 데이지와 재회하곤 그가 매일 그려왔던 꿈속의 여인이 아니었음을 느꼈으리라. 얄팍한 사랑에 모든 걸 건 개츠비는 바보같았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강 건너 빛나는 초록 불빛은 존재하되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또한 나만의 초록 불빛을 가지고 싶은 밑도 끝도 없는 낙관적 희망을 쉽게 버릴 수 없다. 그것만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등불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말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대로 서울이란 미친 집값의 도시에선 나만의 빛을 갖게 되는 게 취업보다 더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알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든 투기든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겐 개츠비같은 속성이 있을 터. 허망하더라도 삶의 욕망은 멈출 수 없기에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 란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 작품인데 이 책을 통해 대략 내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중문학부 동창생들이 모인 쑨웨이의 집에서 위로가 값싼 동정이 될까 봐 내색하지 못하고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숨긴 채 건배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얼마 전 대학동기오빠에게 연락을 받았다. 동문회원명부 책자가 왔길래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말이다. 이거 받으니 후원금 내라고 계속 연락이 온다며 난감하다고 투정하는 그에게 내가 궁금했던 동문 몇 명의 연락처를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엔 이름과 함께 졸업 연도, 주소와 이메일, 현재 직업까지 적혀있었다. 물론 현재 직업이 적힌 동문들은 학교와 원활한(?) 연락과 접촉이 잘되는, 잘나가는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교사가 되기도 했고, 변호사도 있었다. 전공답게 법무팀 과장, 공무원도 꽤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동문은 졸업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던 언니다. 막 입성했을 때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녀도 나도 책자엔 이름뿐이었다. 왠지 서글퍼졌다. 연락처가 있었는데 번호를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인생 참 얄궂다.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마음이 아리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꿈꿔온 이상대로 살 줄 알았는데 우리의 대부분은 아주 평범하고 시시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는 건 행복이 아니라 좀 더 고통스럽거나 좀 덜 고통스럽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는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내게 다가온 명작이 절실히 위로해준다.

 

  책을 왜 읽냐는 질문에 언제나 위로라고 답한다는 저자처럼 타인과 나 자신에게마저 치일 때 날 위로해준 것은 책이었다. 공감을 통한 위무. 이것이 달빛 사이로 다가와 안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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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았니? - 2022년 칼데콧 영예도서상 수상작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73
숀 해리스 지음,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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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았니?

 

  280*242의 커다란 판형 그림책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게다가 표지를 덮고 있는 덧싸개까지 있으니 더욱 정성스러워보인다. 화분을 들여다보는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니 함께 궁금해진다. 과연 이 화분에 무슨 꽃이 피어날지. 형광의 색감이 가득한 이 그림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대중음악가인 숀 해리스의 작품이다. 이 그림책의 작업 과정을 유튜브로 보았는데 마치 색연필의 마술사같았다. 내용도 무척 철학적이었지만 일러스트에 눈을 뗄 수 없어 행복했다. 덧싸개와 같은 표지 그림일 거라 생각했는데 표지를 열어보니 생명력 가득한 꽃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꽃밭 속에 파묻힌 소녀의 호기심 어린 모습이 사랑스럽다.

 

  첫 페이지는 무채색의 인공도시가 나왔다. 목탄으로 그려진 듯하다. 페이지 전체 검은 실루엣으로 덮인 도시 아래 한쪽 구석에 어린아이만 색을 입힌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아이는 어딜 달려가고 있었을까? 작가는 질문했다. “꽃을 보았니?” 도시를 벗어나 대비된 화려한 자연의 빛깔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바람에 나부끼며 신나게 달려가는 아이는 꽃이 핀 넓은 풀밭에 엎드려 꽃과 얼굴을 맞대고 눈을 감고 꽃의 향기를 맡는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나온다.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꿀?’, ‘호박벌들의 다리?’, ‘꽃의 요정?’, ‘벌꿀 축제에서 춤추는 아기?’ 깊이 숨을 들이쉬면 이것들이 보이냐고 물어본다. 금빛 수술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아주 작은 여왕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곧이어 작가는 생명에 대한 사색을 예찬한다. ‘네 손등의 핏줄을 만져 보듯 꽃잎의 줄기를 더듬어 보았니?’ 라고. 아이의 배꼽이 꽃의 뿌리가 되어 마치 한 모금 물을 마시면 그 물이 몸속에서 천천히 흘러 뿌리로 퍼지고 해님을 향해 뻗어가는 몸을 느껴 드디어 활짝 꽃을 피워보라고 이야기한다. 여운이 남는다. 꽃과 같이 아이는 찬란한 생명 그 자체였다.

 

  파스텔 톤의 다채로운 색깔과 노랫말 같은 간결한 글밥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이었다. 일러스트와 글 모두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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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언어 - 삶과 죽음, 예측불허의 몸과 마음을 함께하다
크리스티 왓슨 지음, 김혜림 옮김 / 니케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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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언어

 

  엄마가 간호사였기 때문에 오늘 읽은 책이 더 와 닿았다. 영국의 간호사이자 작가인 크리스티 왓슨은 20년간 간호의 현장에서 경험한 희로애락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단지 생물학이나 약학, 해부학만이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신규 간호사 시절을 거쳐 철학과 심리학, 윤리와 정치가 간호학의 실체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그 여정을 함께 들여다보자.

 

  그녀는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그곳은 참 두려운 공간이었다. 생명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앞일을 알 수 없고 미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곳만의 매력이라면 모든 갈등을 잊게 하는 일체감,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 시간, 하루를 강렬하게 체험하고 숙고하며 진정한 삶을 산다는 느낌일 것이다. 위급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아과 신생아실에서 근무할 때 만난 아기들, 특히 특수간호영아실의 아기들은 거의 예외 없이 사랑스럽고, 상태가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간다고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업무의 일부라는 사실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부모들은 인내와 차분함으로 자신의 아기가 삶의 벼랑 끝에서 안전지대로 옮겨올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간호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 유모는 오늘까지 건재하며 그 정신은 아직도 간호의 중심이라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 바로 간호다. 간호의 기능을 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한 저자는 간이 감염을 통제하고 조직재생에 관여하는 효소를 만들 듯 몸 안의 독소를 직접 제거해줄 수는 없지만 희망과 위로, 친절을 통해 나쁜 것을 변화시키려고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소아중환자실에선 평생 간직할 인생관을 배우기도 했단다. 자신의 실수를 등에 짊어지고 이전에 취했던 행동을 돌이키며 영원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환자들은 그렇게 그들 안에 머무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극한을 경험하고자 선택한 곳이 소아중환자실이었는데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때로는 끔찍한 괴로움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수백 번 죽었을 아이 샬롯, 그 병의 위중함이 의사와 간호사의 능력을 넘어섰음에도 샬롯은 질병보다 강한 생존의 의지로 살아남았다. 샬롯의 의지가 간호사로서 치러야 하는 비용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소회가 감명깊었다.

 

  1950년대 간호사들에게서 처음 발견된 연민피로는 남을 돌봐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쉬운데, 끊임없는 정서적 공감이 오히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 등 정서적 고갈을 가져와 결국 환자에게 필요한 돌봄과 친절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것이다. 간호의 진정한 모습인 노인 돌봄의 경우 나이팅게일은 환자가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있거나 정신이 희미하거나 체하거나 욕창이 생긴다면, 이는 병의 문제가 아니라 간호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가장 연약한 존재를 다루는 이곳에서 다시 친절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책의 제목대로 돌봄의 언어는 말뿐 아니라 간호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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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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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벽지가 나를 쳐다본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 무례한 눈빛에 나는 몹시 화가 난다

저 벽지 안에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도 모르고 오직 나만이 알아본 무언가가

그건 마치, 허리를 굽히고 무늬 뒤를 기어 다니는 여인같아 보여 정말 보기 싫다

 

  이런 문장을 접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난 당장 내가 있는 장소의 벽지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기괴한 벽지 대신 아주 단순한 무채색의 무늬 없는 벽지가 보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그런 아내가 걱정된 의사 남편은 아내를 외딴 시골의 별장으로 데리고 와 3개월간 휴식을 취하도록 돕는다. 여기서의 휴식 치료법은 몇 주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며 외부 자극을 삼가고 지적 활동, 창의적 활동은 절대 금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마사지 요법이나 전기 충격 요법을 병행하기도 했고 강장제라 부르는 신경 안정제를 주사하기도 했는데, 상당수 그것은 환자를 나른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약 성분을 함유하고 있었다!

 

  저자는 샬롯 퍼킨스 길먼이다. 이 소설은 정신 이상의 발단 과정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포착한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안정 요법을 통해 오히려 정신적으로 파멸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던 그녀는 광증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완전한 휴식을 위해 온 커다란 방에 갇혀 흉물스러운 벽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매우 안타까웠다. 아내를 무척 사랑했지만, 자신의 아내가 나약하고 불안증세를 보이며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생각한 남편은 상상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없다고 경고한다. 글쓰기 또한 아내를 병들게 한다고 믿고 있어 글을 쓰는 행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점점 더 머릿속에 벽지 생각으로 가득찬 그녀는 고문 수준의 벽지 무늬가 빛에 따라 바뀐다는 느낌을 받고는 특히 달빛에 비췬 벽지의 겉무늬가 쇠창살이 되어 그 뒤에 여자가 또렷하게 나타나는 환영을 본다. 그 여자는 언제나 벽지 무늬를 뚫고 나오려고 애쓰지만 무늬가 목을 조르기에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달빛이 들이치자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이고 기어 다니며 무늬를 흔들기 시작하는 그 여자를, 그녀 또한 달려가 도와주었다. 벽지를 있는 힘껏 떼어내니 해방된 기분이 든 그녀. 갇혔던 벽지에서 이토록 넓은 방으로 나와 그 여자처럼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하며 벽이 둘러 난 얼룩이 자신의 어깨와 꼭 맞아 만족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남편은 기절하여 쓰러지고 그녀는 그의 몸을 기어 넘어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기괴하지만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통해 여성이 억압받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 이후 휴식 치료법은 중지되었다. 하나의 문학이 여성의 수많은 억압장치 중 하나를 무너트렸다. <월간 내로라>의 취지처럼 단숨에 읽고 잔상은 깊어졌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누런 벽지> 와 같이 단순에 읽을 수 있는 고전 단편을 번역할 다음 달의 소설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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