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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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포 미드나잇>에서 이제 사십대에 다다른 셀린(줄리 데피)은 제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이번에도 기차에서 뛰어내릴 건가요?" 십칠 년 전에 비엔나에서 만난 사람과 같이 살고 있지 않은 나는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녀를 만나리라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부다페스트행 기차에 다시 오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행동은 스물여덟 살에게나 어울린다. 그럼 사십대의 남자에게는 무엇이 어울리나?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들. 극장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영화 보기, 달콤쌉싸름한 회고담 늘어놓기, 그러다 혼자 괜히 쓸쓸한 기분에 젖어 맥주 마시기, 그리고 글쓰기.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 - 67, 68쪽

아이는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쓴다고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게 확실한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기를 마뜩지 않아하는 부모의 마음에 드는 게 생존에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혹은 그녀)가 자기를 버리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바로 그것 때문에 아이에 대해 힘을 갖게 된다. 나쁜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는 끝없이 노력하고 부모는 `너는 영원히 내 사랑을 가질 수 없다`고 암시하고, 아이는 또 노력하고 부모는 또 암시하고...... - 76쪽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 90, 91쪽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청미래, 2012) - 98쪽

"인간에게 연극적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연극적 자아가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렸을 때 소꿉놀이를 생각해보세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 의사와 간호사를 연기합니다.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납니다. 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에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연극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이 오래된 욕망, 억압된 연극적 본성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연기하면 신이 나는 거에요."
그의 말은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서 죄수들이 왜 <줄리어스 시저>의 배역은 태연하게 소화하면서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일에는 서툴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를 준다.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 122, 123쪽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설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 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 154쪽

이항대립은 문제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한 장치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이항대립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현대의 가족들은 전선이 분명하게 그어진 정규전이 아니라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시가전을 치르고 있다. -167쪽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 185쪽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 208,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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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네 집 - 작지만 넉넉한 한옥에서 살림하는 이야기
조수정 지음 / 앨리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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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들어 부쩍 이 담백한 집에서 어떤 것을 먹는 게 좋을지 고민한다. 마치 이 집이 우리에게 숙제라도 내준 것처럼.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하다 보니, 어떤 것을 사야할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또 어디서 사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또한 생산자와 거래과정에까지 관심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환경운동가도, 지구의 환경문제에 남다른 사명의식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여기에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사용하는 우리를 둘러싼 사소한 것 하나라도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서 없어지는지 지켜보게 되었다. 재미 있는 건, 가옥형태가 바뀌면 가구가 제일 먼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먹는 방식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었다. -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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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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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에, 번역된 그의 소설을 몇 권 더 구매했다. 이 책은 그 중 첫 번째로 읽은 소설이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라는 제목이 주는 긴박성, 필연성 혹은 불가피성과 같은 느낌을 기대만큼 즐길 수 있었던 소설은 아니었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전개, 복선, 치열한 논리적 흐름, 반전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추리소설류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이와 같이 판타지(초자연적 소재)가 가미된 장르이다. 예지력이라던가 시간여행, 빙의 같은 기법들은 오히려 추리소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반감시킨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이 소설과 유사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아직도 꾸준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생각/취향이 어쩌면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

"네. 숙모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지요. 긴 삶에서 겨우 그것을 알았다고." - 224쪽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행복.
눈썹을 모으고 생각하는 미호에게 관장이 이어서 말했다.
"보통 사람으로 사는 일을 말하는 거겠죠. `평범`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좋다고 생각해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평범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서." - 224쪽

지금은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때이다. 시간의 흐름이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보내 줄 것을 믿고 있다. -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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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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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소설의 마지막까지 가야 하는 여정은 꽤 불안하고 답답하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어쩌면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근거에 의존하면서도 맹목적인 확신을 품으며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억이라는 건 제각각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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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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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대학생들에게 `왜`라는 화두를 던져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인재가 되기 위하여`로 풀어갈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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