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 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두렵다. 가슴이 두근대고 숨이 가빠진다. 그렇다고 평생 숨어 살고 싶지만은 않다. 비록 깨지고 상처 받을지라도, 당당해져야지. 더는 나를 미워하거나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나를 사랑해야지.
소장님은 내가 스스로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소중하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더는 미룰 수 없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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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 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계속 버티고 글을 쓰는지는 희미하게 감이 잡힌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동반하는 작업이다. 애초에 이상적인 결과물을 상상하지 않고서는 글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특히 그렇다. 모든 영화 글쓰기는 자신이 본 영화를 닮고 싶어한다. 자신을 감동시킨 영화에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 글쓰기도 근본적으로 영화와 일치할 순 없다. - P7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마음은 찰나에 겹치고 이내 제 갈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끝내 멀어지는 이야기. 새벽녘 마법 같은 그 시간이 아름다운 건 그 완벽한 순간이 찰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 P9

예정된 소멸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웨스 앤더슨(혹은 아서)의 조언은 단호하다. "울지 말 것." 사라져가는 것을 연민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를 발간하며부고 기사를 쓰러 간 기자들처럼.  - P23

언젠가 삶은 정지하고, 나의 세계도 끝이 난다. 누구도 시간을 피해갈 수 없다. 영화는 시간에 저항한다. 그렇다고 죽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건 아니다. 과거를 기록하는 도구와도 다르다.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매혹은 끊임없이 ‘지금‘을 생산하는 데 있다. 무수히 많은 ‘지금‘들의 연결은 끝내 시간의 흐름마저 지워버린다. 모든 것이 바뀌는 중이다.  - P25

내러티브 영화에서 시간이란 고개를 젖혀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재구성하는 일종의 인과 작업이다. 현실에서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이야기는 인과의 완결된 세계 안에 갇혀있다. 영화는 그렇게 완성된 세계 안에 시간을 가둬왔다. 그러나 일상의 어느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현실감각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과관계란 뒤돌아보는 시점으로부터 결정되는 얇고 가는 실에 불과하다.  - P32

서사에 길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 과거, 혹은 미래의 시점에서 지금 이 순간을 해석하곤 한다. 때론 너무 많이 아는 게 문제다. 이야기라는 평행 세계의 감각을 거꾸로 현실 영역까지 가져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점찍은 사건 사이로 수많은 가능성이 빠져나간다.  - P34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전부를 알지 못한다는 걸. 우리가 볼 수 있는 건겨우 손전등 하나, 한 사람의 시선 분량의 시대다. 그거면 충분하다. 애초에 인간이 신의 시점으로 역사를 조망할 필요는 없다. 그건 신의 몫으로 남겨두라. 한 사람이 겪는 하잘것없어 보이는 일도, 아니 그거야말로 영화가 사랑해 온 대안의 역사다. 그 사건이, 그들이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는 카메라들의 힘으로 영화는 세상의 일부가 된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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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위선이 싫다고 위선조차 떨지 않는 자에게 권력을 주었다. 그 선택을 되돌리고 싶은 유권자가 있었기 때문에 조국혁신당은 약진했고 민주당이 압승했다. 윤석열이 권력을 무도하게 휘두를수록 조국혁신당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윤석열이 모든 것을 잃고 오욕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져야 조국의 전쟁은 끝이 난다. - P220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누가 옳은지 가릴 방법은 없다. 그런데 정부는 하나뿐이다. 이념의 다양성은 정부의 단일성과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그 충돌을 해소하고 완화하는 방법과 절차이다. 무슨 이념이든 다 표현할수 있게 하고,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당을 만들게 하고, 다수의 신임을 받은 정당이 법이 정한 기간 동안 국가를 운영하게 하고, 다음 선거에서 이긴 다른 정당이 국가권력을 넘겨받게 한다. 이러한 ‘무한반복 게임으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이다. - P244

민주주의는 ‘극단적 이념‘도 배척하지 않는다. 극단적 이념을 왜 극단적이라고 하는가? 극소수만 이해하고 찬성하니까 극단적이라고 한다. 그런 이념은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다.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 다수의 이해와 지지를 얻으면 사회의 통념이 된다. 노예해방, 인민주권, 페미니즘도 처음에는 극소수만 옳다고 여긴 ‘극단적 이념‘이었다. 민주주의가 배격하는 것은 극단적 이념이 아니라 다른 이념을 폭력으로 공격하고 말살하려는 독선과 불관용이다. 다수파든 소수파든 상관없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폭력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 P244

아모스와 고블린의 권력 상실 과정과 상실 이후의 삶을 결정한 것은 인간의 윤리 도덕이 아니라 알파 메일에게 보안관 행동을 기대하는 침팬지 무리의 생물학적 본능이었다. 권력과 관련하여 인간이 형성한 윤리 도덕은 호모 사피엔스와 침팬지가 공유한 본능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 본능의 유전자는 두 종의 조상이 갈라진 6백만 년 전에 이미 자연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은 윤리 도덕을 무(無)에서 창조하지 않았다. 자연이 준 능력이 있었기에 문명의 규범을 세울 수 있었다. 본능은 끈질기고 힘이 세다. 역사의 시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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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가 미국의 반지성주의(AT-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17) 제1장「우리 시대의 반지성주의」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감정과 태도의 복합체다. 어떤 말로 정의하든 반지성주의가 반드시 포함하는 요소가 있다. 고귀한 가치나 이상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심하고 경멸하고 혐오하는 감정, 비판적 지식인을 배척하는 태도다. 반지성주의가 국가권력과 결합하면 독재와 전체주의로 나아간다.  - P162

널리 인정하는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물질의 증거와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논리의 규칙에 따라 생각하고 추론함으로써 대상의 실체에 다가서는 태도가 과학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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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김어준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공정하다. 사실을 토대로 논리의 규칙에 따라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한다. 저널리즘 규범을 모두 거부한 것은 아니다. 어떤것은 언론보다 더 철저하게 준수한다. 김어준은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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