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 세인트존스 대학의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공부
조한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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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전공 없이 오로지 고전 수업만으로 학위를 받는 대학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듣고 호기심에 책을 선택했다. 점점 세분화되어 같은 영역이라도 세부 전공이 다르면 서로 잘 알 수도, 아는 체를 하지도 않는 것이 통례인 대학의 전공을 통합했다는 과감함도 놀라웠지만, 교과가 일반 대학생들은 4년 내 몇 권 접할까 말까한 고전, 그것도 100권이라는 점은 더욱 그러하였다.


저자가 그 대학의 졸업생이다보니 책의 구성은 세인트존스라는 대학의 소개와 공부법에 대하여 주로 다루고 있다. 강의과 교수, 전공과 시험이 없지만 어느 대학보다 더 적극적인 자기주도 학습과 치열한 토론을 해야만 하는 학교에 대한 소개에 이어, 세인트존스의 특징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세미나, 프리셉토리얼, 논문, 공개 구술시험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설명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세인트존스의 학사일정이나 수업방식에 관한 참관기 같은 아쉬움도 든다. 예를 들어, 중간중간에 제시된 '리딩리스트'들은 이 학교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정보이지만, 그래서 해당되는 책을 읽고 과연 어떤 토론이 오고 갔는지, 혼자만 읽은 것과 토론을 하고 난 후에 배운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저자가 말하는 세인트존스 공부법에 대하여 더욱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존스의 공부법은 주도적인 학습법을 익히고, 토론을 통한 발표와 경청의 기술을 익히며, 언어, 음악, 수학, 과학과 같은 기초적인 학문의 토대를 통하여 수준 높은 교양을 축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책을 읽으며 세인트존스의 존재 못지 않게 진급 및 학습에 관한 프로그램들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이러한 커리큘럼이나 학습방법을 '진짜 공부'라고 극찬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예습과 토론을 중심으로 한 생각의 교환과 수용을 '진짜'라고 한다면, 먼저 공부한 이에게 (일방적으로) 배우고, (필요하면) 질문하고, (토론을 거치지 않고) 이를 습득하는 대부분 대학에서의 학습방법은 '가짜'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 현재와 같이 복잡 다단한 시점에서도 대학의 본질이 폭넓고 근본적인 교양의 습득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100권의 고전을 통하여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대상과 방법을 4년 동안 마칠 수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효용이 될 지도 의문이다. 사회 진출을 위한 응용학문의 학습을 위해 이들은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을 또 들여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찬사를 하자면 '순수한 학문의 장'의 면모를 고수하고 있는 세인트존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마치 대학 차원의 대안학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대안학교라는 의미를 안 좋게 사용한 것은 아니다. 현 대학의 제도적 문제점들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교육의 다양성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의 목적을 전문적인 학습이 아니라 평생교육과 같은 수준높은 교양의 습득으로 보아야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선 인류의 ‘생각의 과정‘을 시대순으로 엿볼 수 있었다.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인류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엿본 것이다. 그리고 결국 시대만 다를 뿐 그들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민들을 해왔고 그에 따른 가치관을 하나하나 세워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인류는 정말 옛날부터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꾸준히 해왔으며 그 질문들이 철학으로, 수학으로, 과학으로, 문학으로, 형태만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더불어 매순간, 현재인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수십억 명의 인간 중 하나인 나도 그들처럼, 그동안 인류가 가지고 발전시켜 왔던 그 수많은 사상들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살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어졌다. - 126, 127쪽

내 인생이라는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는데 세상에 배울 것들, 읽어야 할 좋은 책들, 생각해야 할 거리들은 너무나 많다. 꾸준한 스스로 학습을 통해 여러 사물과 현상에 대해 나만의 가치관을 바르게 세워나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을 들여 이 책들을 다시 읽으며 평생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그래서 매일매일, 오늘의 무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깨어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이게 내가 세인트존스에서 4년간 고전 100권을 읽고 난 솔직한 소감이다. - 127쪽

아니, 그럼 난 도대체 뭘 배운 거지? 4년간 뭘 한 거지? 이번에 책을 쓰면서 세인트존스에서의 시간들을 되짚어봤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세인트존수에서 지혜를 얻고 진리를 찾아내기는커녕 나는 4년 내내 엄청나게 깨지고 망가지고 뒹굴고 넘어지면서 정말 지지라도 능력 없고 하찮은 내 모습과 마주했다는 것이었다. - 240쪽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무언가를 배웠다‘거나 ‘드디어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그냥 포기해버린 것이다. 욕심과 비교를 내려놓고, 초라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것. 그게 내가 한 포기였다. 내 한계를 받아들였다. "그래. 이게 그냥 나구나."
근데 더 놀라웠던 건 그다음부터다. 내가 내 한계를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지고 오히려 배움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그렇게나 배워보려고 발악하고 노력했는데, 내려놓고 보니 배움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따. 이건 정말 단순한 사실이었다. - 241쪽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와 정정당당히 마주하게 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게 하는 학교. 그 후 한계에 도전하고, 실패 혹은 성공하기도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학교. 그래서 결국에는 학생 각자가 자기만의 배움을 찾도록 하는 학교. 그게 내가 경험한 세인트존스다. 그리고 이것이 세인트존스가 원하는 교육 목표, 스스로 학습(배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 242,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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