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서재 - 진화하는 지식의 최전선에 서다 다윈 삼부작 1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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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 만일 아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자’, ‘자본주의자’,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등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준다고 해보세요. 다들 말이 안 된다고 느낄 거에요. 정치학적 사고나 경제학적 이론들을 이해할 리 없는 아이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만일 그것이 강요에 의한 꼬리표라면 학대라고도 할 수 있죠. - 25쪽

데닛 : 문화를 생물학적 조건과 무관하다거나 자율적으로 굴러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도 결국 각 개인의 두뇌 작용들 아닙니까? 두뇌는 유전자로 만들어질 테고요. 문화의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윈도 이미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문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해 논의했었고요. 심지어 그런 감정들을 개나 오랑우탄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었지요. - 34쪽

윌슨 : 하지만 저는 다윈의 그런 책들 속에서 보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외계인의 시선’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안드로메다에서 지구의 생명체를 탐구하기 위해 생물학자를 파견했다고 해봐요. 그의 미션은 지구 생물들의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해 본국에 보고하는 일이에요. 그는 틀림없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새의 노래, 침팬지의 팬트 후트, 벌의 댄스, 심지어 개미의 페로몬 작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할 겁니다. 왜냐면 그 모든 행위는 의사소통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해 특화된 해결책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만 문법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양 특별하게 취급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연속성은 보지 못합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외계인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 34쪽

구달 : 집요한 관찰은 예리한 통찰로 이어집니다. - 52쪽

구달 : 그래서 저는 동물에 대한 연구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따로 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더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인간과 비슷한 면을 많이 보게 되거든요. 이제 전 세계 조직을 갖고 있을 정도로 확산된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이라는 운동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젠 동물 보호 수준을 넘어 생태, 교육, 평화의 문제로까지 이 운동을 발전시켜야 하는 시점입니다. - 53쪽

쿤 : 연습문제의 특징이 뭡니까? 이미 답도, 그 답에 이르는 길도 있다는 거죠. 아이들의 그림 퍼즐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원판 그림(정답)이 있고 그 그림 조각들을 맞추는 방법도 정해져 있지요. 이게 바로 패러다임의 특성이에요. 즉 과학자는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패러다임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탐구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든 그것을 통해 보려하지요. 실제 경험과 이론 틀이 삐걱거리더라도 과학자는 자신의 무능을 탓할 뿐 틀 자체를 의심하진 않습니다. - 58, 59쪽

쿤 : 한 패러다임에 대한 반례들이 쌓여도 혁명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 패러다임을 부여잡고 있는 과학자들은 반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곧 해결될 거라 믿는 거죠. 그런데 반례들이 점점 쌓이고 대가들도 해결을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다 보면 그때서야 심리적 위기감이 몰려옵니다. 그러다 주로 변방에서 신예들이 나타나 그 반례들을 풀어내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패러다임에 목을 매던 사람들이 새로운 진영으로 급격히 이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혁명입니다. 수성의 근일점 변경을 설명하지 못했던 뉴턴 역학이 그 점을 정확히 예측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게 왕좌를 물려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지요. 생명의 다양성과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 창조론이 다윈의 진화론에 자리를 내준 경우도 다 그런 예들입니다. - 61, 62쪽

굴드 : 저는 거기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했죠. 생명이 어떤 트렌드나 방향을 가지고 진화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요, 그것은 진화적 변화의 특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 77쪽

도킨스 : 제 책은 한 마디로 ‘유전자는 이기적인데 어떻게 이타적인 인간이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거든요. 즉 유전자는 결국 더 많은 자기 복사본을 남기기 위해 인간을 이타적이게 만들었다는 얘기니까요. - 87쪽

슈뢰딩거 : 사실 한 사람의 과학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 이상의 지식에 정통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일적이고 포괄적인 지식을 향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죠. 이런 딜레마에 대해 서문에서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딜레마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과감하게 오류를 범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실과 이론들을 종합하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뿐이다." - 103쪽

밀러 : 하지만 이 책의 요지가 단지 그들의 삶이 유사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두 천재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싶었지요. 창조의 순간에는 학문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었습니다. 대신 미학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피카소의 걸작들 뒤에는 수학적 사고와 과학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미술을 위해 기하학적 형태로의 환원을 모색했고, 사진 실험을 계속하며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 문제에 천착했어요. 한편 아인슈타인은 당시 전자기 이론의 비일관성, 빛의 성질에 관한 이질적 견해 등을 견딜 수 없어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비일관성과 비대칭성은 그가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거였거든요. 그는 자연세계의 진짜 법칙은 단순할 거라 믿었어요. 미니멀리즘의 신봉자였죠. - 161쪽

몸을 유지하는 데 드는 최소 에너지를 ‘날 음식’만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여분의 에너지는 생기기 힘듭니다. 소화를 하는 데만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령 날 음식만 먹는 침팬지는 하루 여섯 시간 동안이나 무언가를 씹고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어떤 무리가 ‘화식’을 발명하여 구운 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운명이 갈라진 것이죠. 날 것을 소화하기 위해 사용했어야 할 에너지와 시간의 일부를 뇌로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랭엄은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뇌가 큰 것은 바로 이런 먹을 거리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턱과 입, 뭉뚝한 이빨, 그리고 짧은 소화관을 진화시킨 이유도 바로 화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225, 226쪽

저자(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에 의하면 자연선택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는 주장은 오해일 뿐입니다. 그 과정은 오히려 무작위적인 변이 생성을 추려주는 누적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따라서 자자의 논리대로라면 자연계에 만연해 있는 놀라운 적응 형질들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자연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진화가 가능하게 되죠. - 251쪽

하지만 인간 여성들은 자기 자신마저도 배란일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모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더더욱 없죠.
저자(제러드 다이아몬드 <섹스의 진화>)는 이런 독특한 현상을 두 가지 가설, 즉 ‘아빠를 집에’와 ‘여러 아빠’ 가설로 설명합니다. ‘아빠를 집에’ 가설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남성들로 하여금 가정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반면 ‘여러 아빠’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여성으로 하여금 더 많은 남자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도록 하고 그 결과 남성들이 여성이 낳은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유에서 배란 은폐가 진화했다는 두 가설을 비교 분석하면서, 그는 인간 암컷만이 가진 특성인 배란 은폐의 수수께끼를 한 꺼풀씩 벗겨주고 있습니다. - 265, 266쪽

하지만 저자(제러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바로 디테일에 있습니다. 예컨대 거대한 석상 문화로 유명한 이스터 섬의 문명이 몰락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는 무자비한 삼림 파괴에서 시작되어 그로 인한 전쟁, 지배계급의 전복,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인과의 궤적을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파괴야말로 문명 붕괴 요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공통적인 부분이라고 역설합니다. 즉 문명 붕괴 뒤에는 늘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와 무시가 있었다는 주장이죠. - 313쪽

르윈틴이 볼 때 현대 생물학이 기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유전자 환원주의(genetic reductionism)’입니다. 유전자 환원주의는 개인의 모든 특성들을 유전자의 차이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말하는데요. 현대 생물학 중에서 특히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이 주로 이 이데올로기의 근원지입니다.
그는 지능지수의 유전성 문제를 비롯하여 인간의 여러 특성들에 대한 유전학적 접근이 근본부터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련된 통계 기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속해 있을 수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없는 이상 유전성 논의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차 의 80퍼센트가 유전자에서 기인하며 나머지 20퍼센트가 환경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환경의 전범위에 걸쳐서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차는 환경의 변화로 인해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 368쪽

르윈틴은 언젠가 "본질은 맥락과 상호작용이다"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그가 <DNA 독트린>에서 논의한 상호작용은 유전자와 환경, 개체와 환경, 그리고 원인과 결과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이런 상호작용들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그는 유전자와 환경의 효과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 표현형의 범위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 유전자가 여러 원인들 중에 특권적인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환경이 개체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 등을 부각시켰습니다. - 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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