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8
장귀연 지음 / 책세상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한편 케인스주의는 국가 경제 정책의 측면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고 내버려두라!"고 외쳤던 자유주의는 1920~1930년대 자본주의가 발전된 미국과 유럽을 휩쓴 대공황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내버려두었더니 대공황이란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자본주의의 경제 정책은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케인스주의는 이러한 국가 개입을 추구하는데, 수요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즉 경제가 성장하려면 상품 수요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이 많이 팔려야 기업이 투자를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품은 구가 구입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인구의 대다수는 노동자, 그것도 임금 노동자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잘 살아야 수요가 늘어난다. - 58쪽

이처럼 케인스주의를 따르면 임금 노동자의 고용과 복지에 신경을 쓰게 된다. 기업에게 고용 안정과 고임금을 종요하는 정책을 쓸 수도 있고, 국가 부문을 확대해 정부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일단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수입을 확보해야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업도 잘 되고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완전고용을 케인스주의 정책의 하나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결함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대기업이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량 생산을 한다. 노동자는 노동권을 보장받고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임금을 얻어낸다. 이들은 여러 상품을 소비할 경제적 여유가 있으므로 수요가 늘어난다. 상품이 잘 팔리므로 기업은 투자를 더 많이 한다. 고용은 더 늘어나고 경제는 성장한다. 국가의 경제 정책은 이러한 호순환이 잘 돌아가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 59쪽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노동조합이나 법 제정을 통해서 고용주에 대항하여 노동자가 보호받고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추구했다. 포드주의적 기업 전략이나 케인스주의적 경제 정책은 노동권이 인정받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케인스주의에 기운 정부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을 제정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고용주도 노동자가 잘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노동권을 받아들였다. - 60쪽

여기서 말하는 세계화란 경제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즉 상품 시장과 자본 시장이 세계적으로 통합되고 기업이 국경을 넘어서 세계적 차원에서 활동하는 현상 말이다. 사실 이것은 포드주의와 케인스주의의 성공에 뒤따른 결과였다. 포드주의적 방식으로 성공한 대기업은 더 많은 이윤과 자본을 축적하고,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하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의 성공은 국내 수요를 촉진시켰던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거대해진 자본에게 국가 경계는 이제 너무 작아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케인스주의의 성공이 케인스주의를 붕괴시킨 셈이다. - 61쪽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잘 살아야 기업도 잘 되고 국가 경제도 건실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 경쟁에 노출된 기업은 그런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문제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기업이 살아남아야 하고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한다. 사실 이것이 원래 자본의 속성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러한 자본의 속성을 제어했던 정부가 힘을 잃었다. 케인스주의 정책은 효과가 없어졌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떠나버리겠다는 협박 앞에서 자본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다. 경제 정책의 기조가 신자유주의로 변하고 기업의 이윤이 가장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되면서, 노동자의 삶은 뒷전에 내팽개쳐지고 노동권을 잠식하는 비정규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 62, 63쪽

구조 조정의 주요한 방법은 보통 다운사이징이나 슬림화라고 부르는 것으로, 고용 인원을 줄이고 수익성이 덜한 부분을 퇴출하고 조직 구조를 통폐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론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된다. 외환위기 직후 1998년 노동법이 개정되어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 해고가 가능해짐에 따라 해고를 통한 구조 조정은 더욱 쉬워졌다.
그렇다고 이것이 자본 자체의 위축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유리한 것은 대자본이다. 이들은 다운사이징으로 몸을 가볍게 해서 새 이윤을 향해 쉽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조직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려 한다. 상황에 따라 쉽게 몸을 움츠리거나 옮겨 갈 수 있고 한쪽을 축소하면서 다른 쪽을 확장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려는 것이다. - 70, 71쪽

공공 서비스에 관한 한 민영화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당화하는 것처럼 품질 향상과 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낮은 가격으로도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정부와 달리 기업이야말로 이윤을 내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라는 자유주의의 부활에 따라 민영화는 계속 추진된다. - 91쪽

사실 기업의 전체 업무를 조정하는 몇몇 핵심 관리자를 제외하면 모든 업무를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일정 기간 후 정규직화라는 방식을 비정규직 보호 해법이라고 내놓은 것은 정책입안자들이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계속 노동자를 사용할 거라면 그 기업에서 근속하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내부 노동 시장의 관념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러나 기술 및 정보의 발전과 고등 교육의 대중화 등으로 인해 채용에 드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기업 특수적 숙련도 의미가 없어지면서, 기업은 정규직 고용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내부 노동 시장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규제하는 것은 정규직화를 유도하기는커녕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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