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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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이 언어로서 존재하는 한, 한 문장 한 문장 열심히 갈고닦으면 반드시 그만큼의 자기 변신 역시도 자신의 문장 변화와 더불어 그 순간 그 순간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글쓰기로써 남이 나를 알아줄 만큼 변하기까지는 무척 오랜 분투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 틀림없지만,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신이 변하는 것은 매 순간순간에 그 즉시로 가능하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7-8쪽

우리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무지할지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그것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뻔할 정도로 명백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 되는 일인지를 알지 못하는 존재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 소원이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끔찍한 노릇인가.-19쪽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19쪽

타르코프스키가 <잠입자>의 '금지구역' 및 '비밀의 방'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을 결국, 세계원리와 인간본성 모두가 심연이자 미로라는 사실이다. 고슴도치 자신은 동생의 완치를 소원했지만 그의 보다 강렬한 소원은 자신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었듯이, 우리 인간이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는 이렇듯 언제나 크고 작고 견고한 간극이 놓여 있다. <잠입자>의 '고슴도치 일화'는 우리에게 '내가 의식적으로 꾸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20쪽

이렇게 의식적 꿈과 무의식적 욕망이 불일치한다면, 이것은 마치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같다. 쉽게 그 목표가 성취될 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수시로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표방하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기만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21쪽

물론 현실적인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이 발목을 잡는다. 최소한의 사회활동, 집안 형편과 경제적 현실, 체력적 한계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정들로 인해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고 포기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현실의 어쩔 수 없는 여러 사정이 발목을 잡으면 포기할', 그야말로 더는 '어쩔 수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은 말 그대로 꿈이라도 꾸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 형편이 하락하지 않을 경우, 하다못해 꿈속에서라도 그 무엇인가를 하는 꿈을 꾸게 된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이어서 현실 조건에 얽매여 멈추지 않는 법이다. 멈추는 법을 모른다. 오늘 그려 보는 내일의 자기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이 바라는 미래상이겠지만, 그러나 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의 내가 실제로 바란 그 모습이다. -41-42쪽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내면세계 전체로 변화를 꿈꾸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43쪽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이 되자.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전념'을 실천하자. 전념을 실천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란 없다. 하다못해 식당 서빙을 하거나 김밥집을 시작해도 10년 내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모든 천재들이란 자기 일에 '전념'한 사람들일 뿐이다. 천재란, 자기 일이 좋아서 하루 열 시간씩 십 년쯤 일한 사람에 다름 아니다.-43쪽

마찬가지로 '씨앗 도서' 혹은 '씨앗 문장'을 만나게 되면 그 씨앗을 내 몸과 마음에 잘 심어 두는 일이, 독서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읽은 권수가 문제가 아니라 씨앗을 내 몸과 마음에 심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가 독서의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다. 그런데 대개의 아마추어 독서가들은 이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 그 바람에 씨앗을 발견하고도 장차 열매는 맺지 못한다.-96쪽

첫째, 일상 수다 수준의 문장을 구사하면 애매하거나 과장되게 느껴지고 독자들은 화자에 대한 신뢰감을 잃는다.
둘째,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즐겨 사용하는 간투사, 관용구, 관습어, 상투적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의미의 명료성과 진실성이 떨어지면서 효율적 의미 전달도 불가능해지며 독자들은 긴장감을 잃는다.
셋째, 아무렇게나 대충 넘어가 버리면 그만큼 의미가 불충분해지고 독자들 역시 초점 흐린 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듯이 읽게 된다.
넷째,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문장은 그만큼 거칠어지거나 꼬이거나 불필요하게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다.
다섯째,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언어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면, 언어 문장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답례로서 보다 명확하고 풍요로운 형상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여섯째,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경험과 기억을 재편집하고 허구화해야만 리얼리티가 더 강렬해진다.-168-169쪽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상적 도식적 윤리적 일상적 상투적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바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에 저항하고, 기성질서와 언어를 전복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이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의 언어다.-238쪽

문제는 천천히 운전하는 것과 여유있게 운전하는 것, 신속하게 운전하는 것과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 열심히 읽는 것과 초조하게 읽는 것, 깐깐하게 공부하는 것과 소심하게 공부하는 것, 치열하게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 쓰는 것,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고지식하게 고민하는 것,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과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 게으르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과 여유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을 나누어 분별하기가 좀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가 갈린다고 했다. 숨 한 번 돌리자 사랑이 욕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욕심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숨 한 번 돌리는 사이에 무욕이 게으름으로 변하는가 하면 순정이 맹목으로 변하기도 한다. 딴엔 의식적으로 치열하게 열심히 읽고 썼지만, 그것이 다만 조급한 욕심에 불과한 것일 수가 있어서, 마치 <잠칩자>의 '고슴도치'처럼, 스스로 속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365쪽

글쓰기 공부는 언제나 몸 전체로 걸어가야 하는 환유동물의 걸음만큼이나 느리고 더딘 과정으로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읽고 쓰고 생각하며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도 절박한, (제도의 문제 이전에) 자기 내면의 자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때문이다. 또한 다시금 읽고 쓰고 공부하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곧바로 얻을 수 있는 혜택 역시도 바로 이러한 지점일 것이다. 돈, 경제력, 학벌, 외모, 직급, 아파트 평수나 자동차 배기량 등과 같은 특정 가치에만 고착되는, 고착되어 쉼없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혹은 고착되어 있지 않은 척하느라 자기 기만에 시달리고 있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다시금 새소리를 새소리로 즐기고 구름을 구름으로 바라보는 한편으로 자기 안의 실질적인 욕망을 발견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는 긴요하다.-377쪽

무엇보다 한순간 한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해서 그 다음 순간이 되면 축적적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어서 노력한 과정이 노력한 결과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일한 연속선이 아니라 단속적 순간순간으로 세상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아니 그렇다면 더욱더 우리는 우리 노력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노력하는 사람', 혹은 '시인과 같은 감성', 혹은 '자기 에너지를 치열하게 만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러한 상태에 놓인 사람으로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다.-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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