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로즈
세르다르 오즈칸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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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여전히 십대"라며 우겨보지만 어렸을 적의 순수한 모습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아니 어렸을때조차 순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탐나는 것을 가지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고 화가나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미워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것으로 순수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태어나고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순수했던적이 없었던 것 같다.

 

"미싱로즈"는 어린시절의 나의 감성을 떠올리게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는데는 실패한 것 같다. 이젠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돌려서 충고를 해 주면 알아들으면서도 기분이 나빠 못들은척하기 일쑤라 이렇게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잃어버렸던 장미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정말 어려워서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무슨 내용인가 알아맞추기 위해 머리가 조금 아팠다면 너무 과장한 것 아니냐고 몰아세울지도 모르지만 내게 이 책은 분명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다이애나에겐 엄마가 죽은 것도 큰 충격일텐데 죽었다고 이야기 하던 아버지가 살아있으며 거기다 쌍둥이 자매인 메리까지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질 것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위기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자주 듣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처럼 엄마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 "다이애나가 소중하냐? 메리가 소중하냐?"라고 따지고 들게 될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려줄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해답을 찾을 사람은 오직 자신뿐, 메리가 보내온 네 통의 편지를 가지고 메리를 찾아야 한다. 장미와 대화를 하고 꿈 이야기를 하는 메리의 편지를 보면서 나도 "이 무슨 말인가. 어쩌면 정신병원에서 메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다이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역시 메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걸인, 마티아스는 다이애나가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여겨진다. 메리를 찾으라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긴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만난처럼 느껴진다. 제이넵 하님을 만나 장미의 언어를 듣는 능력을 배우는 수업, 다이애나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손아귀에 움켜쥐게 하기까지 그 여정이 너무 어렵고 지루하다. 아마도 나는 이미 장미가 하는 말들을 들을 수 없는 불성실한 인간이 되어 버렸기에 제이넵 하님의 말들을 모두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다른 방법으로 다이애나를 설득할 순 없었을까.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다이애나는 변호사 일을 시작했어도 언젠가 자신의 꿈을 찾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속물인지는 몰라도 다이애나가 찾아 떠나는 그 소중한 무엇이 내게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서 읽는동안 내내 가슴이 답답했었다. 어린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장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듣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이 책을 읽었을때 다른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기에 그저 모든 것이 생소할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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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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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는 지금이나 아주 아주 오랜 옛날이나 사람의 마음을 참 가슴아프게도 만든다. 대대로 내려온 끊어내지 못한 인연의 시작은 "묘연의 아버지부터라고 해야하나." 묘연의 아버지 류호가 듣는다면 아마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함께 생활하는 종을 사유재산으로 생각하고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행태야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니 딱히 종에게서 낳은 아이를 자식으로 생각이나 했던가. 류호가 묘연의 어머니와 동기간이나 다름없이 지내던 몸종 선이에게서 '하연'을 낳았던 것이 모든 인연의 고리가 엮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면 이것으로 인해 모두의 가슴에 아픈 상처만 남게되었으니, 기현이 세상을 벗어나 출가를 했어도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가슴앓이가 끝나지 않고 이로인해 계속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 나는 "달을 먹다"를 현대장르라 생각했을까. 시대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시작하진 않지만 짐작으로 조선시대 어디쯤 될 것이다 충분히 알수가 있었다. 어려운 옛말을 쓰고 있진 않지만 주석이 달리지 않은 옛말들은 역시 대충 예상해서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나가는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읽는것이 그리 버겁진 않았다. "사랑"으로 인한 가슴앓이들을 어쩜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해 놓았을까, 놀라면서 읽었다.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구절도 많았다. 하지만 역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야기는 내 가슴도 아프게 만든다.

 

기현이 차라리 출가할 용기로 '하연'과 도망이라도 쳤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연이 도망치듯 최약국에게 시집가서 불행하게 살지 않았다면 마음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으련만, 하연이 낳은 '난이'로 인해 동기간처럼 자란 묘연의 아들 희우가 또 얼마나 사랑때문에 힘들어했던가. '난이'는 자신이 누구인가 번민한다. 분명 희우와 외가쪽 피를 나눠 가졌건만 나는 '누구'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엇'이라고 말하랴. 아니 '무엇'이라도 되어야 했건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기현과 하연을 보며 함께 자란 묘연은 아들 희우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분명 "난이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기회를 주고자 한다. 그러나 "사랑"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선택하는 희우를 보면서 나는 울분을 느꼈다. 가족이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래도 "왜 난이를 데려왔느냐?" 원망하기 보다는 마음이라도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이조차 현실에서 도피하여 자신의 생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나. 이런 저런 상황들로 내 마음도 쓸쓸해진다.

 

묘연, 묘연의 남편 태겸, 희우, 난이, 향이를 사랑하는 여문, 기현 등이 화자가 되어 당시의 상황을 이어받으며 이야기 하는 "달을 먹다"는 솔직히 서로 연결된 관계들이 어떻게 되나 헷갈려서 내용을 놓칠때가 많다. 한 집안의 가계도는 물론, 따로 맺어진 인연들로 인해 이어진 이야기들도 있어 가지를 뻗어나가다 보면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신분에 억눌려 살아온 조선시대 사람들도 지금의 나처럼 감정적으로는 얼마나 평범하고 인간다운지, 삭히며 살아야했던 그 시대의 상황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잘 나타내 준 것 같아 "헤어져서 가슴 아파다"고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애절함을 느껴 표지에 나와있는 '달'을 보며 손을 대면 차가움이 느껴질까 겁이나 감히 가까이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람의 인생이란 죽어서도 기억속에 남아 끝나지 않으니 이들이 그 뒤로 어떤 인생들을 엮어갔을까 궁금해지지만 누구하나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란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기현으로부터 이어진 가슴아픈 사랑의 고리들이 이제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파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렇다고 '사랑'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진 않을 것이다. '사랑'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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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벤자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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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연주의 부탁으로 동창인 안수철이 사채업자 김길준을 감금했을때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나고 '왜 연주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김길준을 감금해달라 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길준을 벌주고자 한 의도는 자신때문에 자살한 선배 유광호를 닮은 조용희에게 협박을 했기 때문일까? 단지 그 이유뿐?" 아마도 유광호에 대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풀어보려고 했던게 아닐까. 그러나 조용희의 부인인 김선숙에게 연주가 "너 미행당하고 있다"라는 말을 들은 뒤 생각나지 않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방어를 한 이유라는 것을 알았을땐 이연주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구나" 싶어 내 마음까지 아파왔다.

 

정신과 약을 먹지 않고 벤자민 화분에다 부어버리는 연주, 자신은 과거를 하나씩 찾아가지만 약을 먹은 벤자민은 죽어가기에 연주는 벤자민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나는 연주를 만나면 묻고 싶은 질문이 많다. "왜 김길준의 집을 찾아갔어요? 왜 김길준의 동생과 결혼하려고 했어요? 아무리 가족이 된다고 해도 형의 일을 집안에서 안다면 가족이라고 해서 받아주겠는가" 한마디쯤 해 주고 싶어진다. 김길준이 실종되고 그의 아내가 받은 대우를 보면 알수 있지 않은가. 김길준의 자식까지 있지만 집안에서는 붙박혀 있는 물건쯤으로 생각해 전혀 존재감이 없었으니까.

 

결혼식을 앞두고 안수철에 의해 납치된 연주, 자신의 부탁으로 감금된 김길준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서 내심 화가났다. 한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권한을 누가 주었는가, 김길준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미안한 마음에 하는 행동이라고 변명한다고 해도 얼마만큼의 강심장이면 그럴 수 있을까. 결혼식을 하지 못하게 된 연주를 조금은 동정하게 되지만 이정도의 상황은 그녀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하지 않던 김길준의 동생 김세준이 연주와 결혼하기 위해 직업을 가졌다고 그녀로 인해 변화된 것이 있지 않냐고 주장을 한다고 해도 분열된 가족의 모습을 보면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연관된 사람들이 직접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인과관계들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연주는 뿌옇게 안개가 끼어있던 과거의 기억을 안수철에 의해 찾게 되고 자신의 행동의 이유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안수철도 목적이 있어 연주의 부탁을 들어 주었지만 이제 연주가 설 땅은 없어진 셈이다. 가족들에게도 갈 수 없는 그녀는 이제 어디로 가서 정착을 해야할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면 자신의 과거를 덮고 새롭게 살 수 있을까.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을 보니 마음이 쓸쓸해진다. 살아가다 보면 툭툭 끊어서 말하는 연주의 대답이 그리워질 것 같다. 나도 때론 세세한 말보다 간단하게 던지듯이 대답을 하고 싶어질때가 많으니까. 사람들이 내 말 한마디에 모두 이해를 해 줬으면 좋겠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에 모두 설명을 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느낄땐 가슴이 갑갑하기도 하니 점점 마음이 닫혀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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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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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지만 "자살가게"라니, 자살을 권하는 가게를 보면서 조금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게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나이 드신분들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생의 고비를 힘들게 넘겨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 나이때에 해야할 고민들을 안고가면서 때론 "자살"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때? 아마 그럴때였던 것 같다. 늘 똑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를 못견디게 했으리라. 그러나 죽을 용기도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나서 불구로 살아가거나 병원에 입원해서 고통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해. 그러나 여기 "자살가게"를 통해서라면 "인생은 실패했지만 죽음은 성공하게 해 드리겠다"는 자신감있는 판매전략에 따라 고통없이 단번에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관심이 가게 된다.

 

이 가게가 호황을 누리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하는게 아닐까. 그러나 텔레비전으로 자살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사회이고 보니 "자살"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내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지구가 처한 상황에 우울해서 못견디겠다고 자살용품들을 사러 오는 사람들, 장례식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하면서 권총으로 죽는 사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말야. 자살을 하고자 준비를 해 놓는다고 해도 이것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보고자 결심하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해보고 안되면 까짓 죽으면 되지"라고 생각해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안되는게 없을테니까.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가족들은 우울해 하고,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생활이 된 것 같다. 미시마, 튀크레스, 뱅상, 마릴린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를 수 있게 각종 아이디어를 내며 온몸에서 우울이 뚝뚝 떨어지지만 최악의 경우에라도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는 막내아들 '알랑'으로 인해 이 자살가게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 독이 든 사과를 골라내고 먹어도 죽지 않는 사과로 바꾸고, 누나가 자신의 몸에 독을 심기 위해 놓는 주사액도 포도당으로 바꾸는 알랑을 통해 마릴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약속할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음식을 잘 먹지 않던 뱅상도 이젠 잘 먹고 사람들을 웃게 하기 위한 물품을 만드는 일에 전력을 다하니 아버지 미시마가 보기엔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오히려 매출은 늘어나니 다행이다. 사실 정말 진짜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들어줄, 하소연 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를 봐 달라는 절규, 맞아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잘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닌 잘 살수 있게 도와주는 가게, "자살은 노후에"라는 말을 하며 호황을 누리는 이 가게를 보면서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통렬하게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는지도 모르지만 자살을 하기 위해 끈이나 칼, 권총을 사러오는 사람들을 보며 풍자소설이기에 유쾌한 시간을 보냈지만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보는게 참 좋다. 비록 마지막 알랑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말이다. 이제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졌는데 왜 아픔을 주고자 했을까. 진정한 "자살가게"의 주인은 알랑이었단 말인가. 잠시 행복했던 가족들은 다시 슬픔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알랑의 뜻을 이어받아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은가?" 그러면 직장에서 사표를 늘 품안에 넣어 가지고 다니듯 내 맘속에 자살충동을 깊숙히 숨겨두고 아주 힘들때 최후의 수단이 있음을 기억해 보자. 그러면 또 힘이 불끈 솟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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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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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만을 평생 연구해온 사학자 플루크 켈소는 죽은 스탈린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있는 켈소의 심장을 움켜쥐고 놔주지 않는 스탈린, 우연히 스탈린의 임종 때 베리아에 의해 빼돌려진 "스탈린의 비밀노트"의 존재를 아는 늙은 라파바에게 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때 켈소는 사학자로서 이런 엄청난 사건을 자신의 손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는 것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아직 죽지 않은 스탈린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금고를 열어 이 노트를 땅에 묻어버린 것일까. 스탈린은 마지막 임종시 눈앞에 베리아를 떠올렸을 것이다. 원망? 아니면 믿음? 어떤 마음으로 그를 생각했을까. 스탈린의 사후 정권을 쥔 베리아를 보면 스탈린은 죽어가면서 베리아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것 같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한 스탈린에 의해 잠시 베리아가 정권을 잡았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스탈린이 기록한 노트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도 지니지만 아직도 스탈린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트의 존재가 밝혀지면 현 정권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켈소는 라파바를 만난 후 들은 이야기를 마만토프에게 한 뒤로 도청당하고 미행당하는 신세가 된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체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에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위협이 되는 것일까. 라파바가 노트의 가치를 따져 사랑하는 딸 지나이다에게 큰 돈을 마련 해 주기 위해 이 노트를 넘기고자 쪽지를 남겼지만 그는 이 노트로 인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아주 잔인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간다.  

 

마만토프를 감시하던 수보린 소령은 이제 켈소와 기자인 오브라이언, 지나이다까지 쫓게 되는데 수보린은 켈소에게 적일까, 아군일까. 책을 계속 읽다보면 마만토프로부터 켈소와 지나이다를 보호하려는 모습이 보여 아군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가지고 아크엔젤로 향하는 켈소를 쫓는 수보린의 모습은 본인은 명령을 받는 수동적인 위치이긴 하지만 분명 켈소와 오브라이언을 죽이려고 찾아가는 듯 해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가 없다. 그 곳에 도착하여 죽이지 않고 보호한다는 구실로 켈소와 오브라이언을 찾아갔다고 해도 이들에겐 충분히 생명에 위협이 되었을테니까.

 

스탈린의 비밀노트라고 하지만 스탈린이 쓴 것도 아니고 '안나 미하일로프나 사파노바'가 쓴 노트이지만 이 일은 그냥 넘기기엔 큰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스탈린에게 제물로 바쳐진 콤소몰 소녀인 안나, 스탈린은 자신이 죽고 난 뒤의 상황까지 모두 생각해 둔 것이리라. 그렇지만 한 여인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처사가 아닌가. 정치가 무엇인지, 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정적들을 죽여야 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아직 스탈린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그 영광을 계속 누리고자 계책을 세우고 많은 이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을까 겁이 나기도 한다. 책에 흠뻑 빠져들었는지 실제 이 노트가 있었는지, 이후에 상황은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궁금해진다. 스탈린 사후 45년, 그의 광기의 이데올로기가 다시 부활되었을까, 저지 되었을까 참으로 궁금해지지 않는가. 비록 책속의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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