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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은 20년 동안 산 속에 묻혀 있었다. 그동안 세상은 계속 변해 갔으며 소년에 대한 기억은 잊혀져 갔다. 그 세월동안 가족들 외에 소년을 기억하는 이는 없어 보였다. 20년만에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테지만 이 사건은 그대로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해리 보슈가 이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이 사건은 꼭 해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중에 누군가는 상처 받고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며 그 무엇보다 이 사건을 담당한 해리 보슈에게 아픔이 될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이기에.
해리 보슈가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료인 에드거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왔지만 '유골의 도시'에서만큼 에드거의 활약이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그동안 해리 보슈가 사건의 중심에서 활약할 때 에드거는 늘 존재감이 약했고 사건에서 드러나는 진실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20년 전 살해된 소년이 살아 생전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이가 있는 에드거는 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냉혹한 모습을 보이고 감정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혐의가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그러는 것은 부당해 보이긴 하지만 에드거가 처음으로 해리 보슈의 곁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는 결심을 한다. 물론 이번 사건도 모든 퍼즐은 해리 보슈 혼자서 다 맞추긴 하지만 콤비라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서로가 마음을 맞춰 사건의 진실 가까이 다가간다.
해리 보슈 시리즈마다 늘 한 가지쯤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않고 끝을 맺어 왔는데 그때마다 해리 보슈에 의해 추측이라도 해 볼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해리 보슈가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춰 버려 의문을 풀 길이 없다. 소년을 죽인 범인에게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상황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한 소년의 죽음이 그대로 묻혀 버리면 안되는데, 범인이 밝혀졌다는 것만으로 잊어야 하는 걸까. 살아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채 학대 받은 한 소년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소년도 한 번쯤은 행복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했다고 하니 이걸 탈 때는 행복했겠지? 모든 것이 부질 없는 물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소년의 기억에서 놓여날 수 없을 것 같다. 길을 가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불쑥 나의 기억 속을 헤집어 나타날 것만 같아서, 살아 있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소년을 죽인 범인보다 이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에게 더 큰 죄가 있다고 생각해 그들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소년의 유골이 땅에 묻혀 있던 20년간 속죄의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형벌은 없을 것이기에 위안을 삼는다. 또한 그들은 지금과 같이 계속 삶을 살아내야 한다.
소년의 유골이 발견되고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사건은 계속 제자리에 맴돌고 늘 처음으로 돌아가는 듯 했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면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해리 보슈는 이 사건으로 자신의 삶을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동안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버려 왔던 많은 것들을 다시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해리 보슈를 만날 때마다 그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유골의 도시'에서 만난 그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며 고통받고, 상처받으면서도 인간의 대한 본질을 잊지 않으려 하는 그에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주어지게 될지 알 순 없지만 '앤젤스 플라이트'와 '유골의 도시' 같은 사건은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