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평점 :
야부키 산 캠프장을 찾은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의 에가미, 아리스, 모치즈키, 오다는 이곳을 찾은 다른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고립된다. 야부키 산의 화산 활동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이들이 과연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야부키 산의 화산 활동과 맞물려 연쇄살인사건까지 발생해 이곳을 찾은 학생들의 공포심은 배가 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사방에 화산재가 날아다니는 이곳에서 범인의 칼에 의해 한 명씩 죽어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공포심은 한계를 넘어서고 두려움은 분노로 분출된다. "도대체 누구냐. 누가 이런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냐, 스스로 자백하라"고 소리칠 정도로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징조는 언제부터였을까. 화산 활동 중인 야부키 산에 캠핑을 온 순간부터? 여러 그룹에서 같은 날 이곳으로 캠핑을 온 것? 화산 활동으로 고립된 것? 혹여 달빛때문인가. 캠핑으로 인해 생긴 살인사건이라 이것들 모두 계기가 되기는 했겠지만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징조를 느낀 것은 아마도 살인 게임이었을 것이다. 즐거움을 위해 한 놀이였지만 나는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긴장되기 시작했다.
샐리가 아무 말 없이 하산한 후부터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살인범의 손에서 벗어났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샐리가 이 산을 무사히 내려갔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샐리를 좋아하는 다케시는 겨우 버틴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성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샐리가 묻혀 있을지 모를 곳을 삽으로 파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샐리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지만 어쩌면 샐리를 죽여 놓고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다.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범인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에가미, 모치즈키, 오다, 아리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최소한 이들의 동선은 아리스로 인해 파악이 되고 있는 상태였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신뢰가 간다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살해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특징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은 희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고 범인은 이 안에서 정체를 숨기기가 더 좋을 것이다. 거기다 화산 폭발이라는 상황때문에 사람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여유가 없는만큼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인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살인을 멈춘다. 범인의 살해동기는 무엇이었을까. 해묵은 감정에 의한 계획된 복수일까. 캠핑장에서 생긴 일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경찰도 개입하지 못하는 고립된 상황에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 스스로 범인을 밝혀낼 수 밖에 없는 상황, 그 과정에서 또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무섭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화산 폭발로 다수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어, 그 누구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아주 아주 절망적인 상황때문인지 추리소설연구회 소속이긴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을 평범한 대학생인 에가미와 아리스가 해결해 나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에가미와 아리스라고 지칭하기는 했지만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에가미 혼자 뿐이다. 아리스는 리요에게 빠져서 전체적인 사건의 윤곽조차 그려나가지 못하는데 반해 에가미는 말 없이 홀로 사건을 재구성해 나가며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리요의 마음, 리요의 행동 그 무엇 하나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리요가 범인일 경우 숨겨줄 생각까지 하고 있는 아리스의 마음은 더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아리스는 에가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에가미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될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자신이 겪은 사건을 해결해 나갈 수도 있겠고 탐정이 되어 전문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지금의 풋풋함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어도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모습은 각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순수하게 다가오는데 그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도 경찰의 역할을 하기 보다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에가미가 계속 연쇄살인사건을 겪게 된다면 "이건 좀 심한데 전혀 현실적이지 않잖아?"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그냥 이대로 즐겨볼까 한다. 에가미가 해결하는 사건을 골치 아프게 나에게 보내는 두뇌 게임의 도전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소설속에서만 존재하는 사건으로 여기며 이 시간을 최대한 즐겨볼까 한다. 에가미와 아리스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함께 하니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