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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이인화의 작품 '영원한 제국'은 꽤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그때 가졌던 강렬한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책이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풀어낸 '영원한 제국'과 작게는 하나의 세상, 크게는 온 우주를 아우르는 '지옥설계도'는 그 느낌이 다름에도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세상을 모두 보았다고 여겨질만큼 그 느낌이 흡사했다. 강화인간,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단돈 1조 달러의 가치, 세계 연방, 세계 문화, 완전 고용, 양성 평등, 지구 부활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가. 하찮은 인간인 나는 단 1%의 내용도 이해할 수 없지만 SF 장르의 소설 같은 '지옥설계도'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한 남자가 살해된 사건으로 시작하는 '지옥설계도'는 이유진의 죽음만이 유일하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나 그의 약혼녀인 고은아가 들려주는 이유진의 삶은 그리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하게 한다. 김호 그가 이유진의 죽음을 파헤칠 수 있을까. 이유진을 죽인 용의자로 체포된 자오얼의 세상을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논리에 분노만 표출하지 않았던가. 그 어떤 것에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자오얼, 무기질의 존재를 대하듯 김호를 바라봤던 그의 눈빛에서 김호는 무엇을 보았던가. 쉰이 다 된 그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가 단 하나 남은 직무상의 자존심마저 짓밟혔지만 자오얼에게서 이유진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이 사건을 풀어갈 유일한 열쇠일 것이다.
이유진의 죽음을 알게 된 새라 워튼의 움직임, 살인조차 아무런 감정 없이 저지를 수 있는 그녀가 들려주는 최면 상태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되는 강화인간들에 대한 설명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세상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들의 세력과 강화인간들의 싸움은 평범한 나에게는 지구 밖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인양 낯설기만 하다. "지옥설계도가 무엇인가"란 단순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벽과 마주하고 있는 듯 답답하다. 그나마 이유진의 죽음이 중심에 있고 그 주변으로 새라 워튼과 강화인간들의 이야기, 준경이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 역시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게임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듯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김호가 이유진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은 미스터리 장르이고 강화인간들이 등장하는 것은 SF 장르, 지옥설계도의 실체를 보여주는 인페르노 나인은 게임의 세상을 보여주는 이 책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하며 많은 것들을 풀어내고 보여주고 싶었으나 이 책을 읽은 나의 존재가 너무나 평범했다고 해야할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미래의 그 어떤 날에도 이런 세상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 그냥 허구속에서만이라도 즐길 수는 없었을까. 역시 무지한 나의 잘못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