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의 삶은 권력을 배제한 삶이기에 그 끝이 초라한 것일까. 아니 도화서의 화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이 조선 팔도 어느 곳에쯤 머물고 있을지 사라진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 혼과 마음이 담긴 그녀의 그림세계를 엿보고 싶다. 단원 김홍도가 들려주는 그와 신윤복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실일 것인가. 어느정도의 허구일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 앞에 나는 이미 책속에 빠져들고 있었음을 잊고 있었으니 이미 내 기억의 한자락은 그들이 있는 곳 가까이에 머물고 있었다. 

천재를 알아본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만큼의 고뇌를 안고 있을 것인가. 겨루어 이기고 싶다가도 나보다 못하길 바라다가도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늘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해야하나 보다. 신윤복 그녀가 바라본 기생 정향에게조차 질투심을 느끼는 단원 김홍도의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화원 신한평의 아들 신윤복은 아버지의 후광과 형 영복의 지지속에 화원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틀에 박힌 그림들을 모사하거나 모든 사물에 깃든 색을 쓰지 못하게 하는 조정안에서의 화원의 길은 그에게 맞지 않았으니 벗어던지고 싶어도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단청실로 간 형 영복과 가문을 중시하는 아버지로 인해 그 또한 쉽지 않다. 화원이 된 윤복과 같은 조건에서 겨루고 싶은 홍도의 생각과 함께 화원의 길을 뿌리치는 것이 왜이리 힘든 것인지. 자유롭게 영혼을 불사르고 싶은 윤복의 희망은 역시 접을 수 밖에 없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실력대결이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임금인 정조가 은밀히 김홍도를 부르면서 자신의 목줄이 위태로울지 모르는 줄타기를 하게 된다. "십년전에 도화서에서 일어났던 참변을 밝히라"는 어명이 떨어진 것이다. 수석화원 강수항과 그 수종화원 서징이 당한 영문모를 죽음 이들에게 대체 어떤일이 있었기에 십년이 지난 사건을 들추게 하는가. 십년전에 강수항이 죽고 죽음을 밝히고자 하는 서징과 홍도, 서징이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세월에 따라 권력에 대항하지 못한 홍도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굳이 잊으려고 애썼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다니는 홍도, 기록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목격한 사람의 말이 진실일 수 있기에 여기저기 탐문을 하고 다니지만 어느 순간 이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고 화원이 되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대결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갑자기 큰 흐름이 바뀐듯하여 어리둥절해진다. 어명에 의해 사건을 파헤치던 그가 그저 자신이 행하던 도화서에서의 생활에 몸을 맡기다니 어떤 큰 사건의 실마리가 밝혀지는가 하여 긴장하며 보던 나이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툭툭 끊긴다고 생각할 밖에. 정조에 의해 같은 주제를 놓고 다른 그림을 그려 대결을 펼치게 되는 홍도와 윤복,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의 생활상을 보고자 하는 임금의 마음이 천재화가들을 권력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로우니 누굴 지킬 수 있을까. 어진을 그릴 사람을 선택함에도 뇌물을 받아 천거한 사람을 뿌리치고 홍도와 윤복을 선택한 왕이기에 그 기백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냥 한가롭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십년 전의 사건에 얽매이지 않은이가 없으니 뒤주속에 갇혀 죽은 장헌세자의 어진을 그린 강수항의 죽음을 꼭 밝히고 싶은 정조와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자신의 인생을 바꾸면서까지 이 일에 뛰어든 윤복, 절친한 지기의 죽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자책감에 범인을 잡길 원하는 홍도. 이 모든 것이 점점 수면위에 떠 오르고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 뒷돈을 대 신분을 사고 자신의 죄도 무죄로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에 철저히 옭아맬 올가미를 던지는 윤복과 홍도. 이들의 활약이 정말 눈부시다. 가슴속이 뻥 뚫린듯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림만 그리고 싶은 이들의 소망이 권력과 맞물려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유독 여인을 그림속에 등장시키는 윤복, 서민의 삶을 그려내는 홍도. 솔직히 난 여인의 그림보다 서민의 삶을 그린 김홍도의 그림에 눈길이 더 머물지만 화려한 색을 이용하여 여인의 마음까지 표현한 신윤복의 그림에도 놀라움을 느낀다. 여인으로 태어났지만 신한평의 아들로 살아온 마음이 그림속에 녹아있지 않았을까. 여인은 도화서의 화원이 될 수 없기에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지금 책장을 넘기며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보니 가슴이 아파온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이 남아있으므로 그와 함께 단원 김홍도의 애잔한 마음까지 느껴져 가슴이 아픈 것이다. 함께 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뛰어난 천재 동생을 둔 영복이 윤복이가 원하는 색깔을 만들기 위해 손마디가 터져 나가는 모습은 시대의 천재는 오로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윤복의 인생에 가려 보이지 않는 영복의 존재 또한 아픔으로 전해지니 이젠 그림을 봐도 즐겁게 감상하지 못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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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명씨의 책이라 어떨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있던 책이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네요.ㅎㅎ 하지만 다른 분들의 글도 읽어봐야 확실히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학진사랑님 글만 보면 무조건 다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학진사랑 2007-08-24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서평을 잘 못쓰나 봅니다....괜찮지 않은 책은 괜찮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겨줘야 하는데 말이죠..ㅋㅋ 읽을때는 와 닿는게 없다가 책을 덮고 서평을 쓸때 가슴을 울리는 책도 있더라구요.....이 책은 그림대결을 할때 그림에 문외한이라 좀 더디게 읽혀지던데 다른건 괜찮았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