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결혼 6년째 전업주부이지만 게을러서 직장을 구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나태한 생활로 아파트라는 탑 안에 가둬버린 시오미는 잠자는 라푼첼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물론 나도 그녀의 모습과 닮아있어 얼마나 놀라면서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마녀가 라푼첼을 탑 안에 가둬버리고 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라푼첼에게 머리카락을 내려달라 요구하는데 왜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스스로 탑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아마 새로운 세상에 한발짝 발걸음을 떼는 것이 두려웠겠지, 탑 안이 그녀에게는 세상 모두였을테니까. 아니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알지만 스스로를 가둬버린 시오미는 남편과 연애하던 그 시절을 뒤로 하고 그간 죽어있는 삶을 살아왔다. 라푼첼에게 왕자님이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했다면 루피오는 아파트라는 사각의 틀을 열어주어 시오미의 닫힌 세상과의 소통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겐 '사랑'이었으니 열 다섯살이나 어린 중학생인 로미를 사랑하는 것은 그나마 그녀가 가진 그 작은 세계마저 무너뜨릴 수 있어 한발 한발 다가서는 그녀를 보는 것이 조마조마해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다.  

책에서만 일어나는 허상의 세계라고만 단정지을수가 없다. 로미의 아버지와도 관계를 가지는 그녀가 그의 아들인 로미와도 관계를 가지는 모습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으나 사람이 있는 곳 어디서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기에 그녀의 가슴아픈 사랑에 도저히 손가락질은 할 수가 없다. 단지 위태위태하던 그녀의 세계를 깨 버리고 밝은 빛속으로 나오게 한 존재가 로미이기에 오히려 고마운 존재라고 할까. 그녀안에 잠자던 열정과 사랑을 일으켰으니까. 파친코에 드나들던 그녀가 로미와 로미의 아버지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른 삶을 생각하게 된다.  

로미에게 시오미는 어떤 존재일까. 로미의 아버지에겐 시오미는 또 어떤 존재일까. 엇갈린 사랑의 작대기를 보는것도 아니고 그저 의존하고 싶어하는 약한 모습의 사람들. 갑자기 들이닥친 남편, 로미와 로미의 아버지가 그녀의 공간에 함께 있는 모습은 정말 어색하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남편이 더 이상하게 생각되니 이들 부부의 관계는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나. 옷이나 챙겨주고 받는 그런 존재? 참 복잡하다.  

남편이 맡긴 고양이로 인해 그녀의 생활이 점점 꼬이기만 하고 로미의 여동생 주리의 존재로 인해 탑 안이 서서히 무너진다. 고양이를 보고 싶어하는 주리를 집안에 들이지 못해 그냥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오빠인 로미의 운동화를 본 것, 자신을 거부한 것을 참지 못한 주리가 한 행동은 끔찍하다. 금붕어 죽인 것을 택배로 보내고 문 앞에 "고양이를 키우지마"라는 글을 쓰는 등 도저히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삐뚤린 아이들의 모습,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안에서의 사랑을 찾지 못하고 맴도는 아이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는 것은 시오미에겐 무리였기에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 로미만을 위하는 사랑은 그렇게 끝을 향해 치닫게 된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누구나 시오미처럼 살지는 않는다. 남편이 달마다 주는 돈을 파친코로 날려버리고 한가득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 둬 버리는 것이 더 많은 그녀, 이런 외양적인 모습만 봐도 참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밖에 살지 않는 그녀가 안쓰럽기만 하다. 남편이 가둬버린 탑이지만 스스로 나오지 않고 웅크리고 살아온 그녀가 그 탑을 깨고 나오는 모습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험난하겠지만 어딘가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내고 그전에 똑같은 향수를 해외에 나갈때마다 사오는 남편에게 멋지게 한방을 날기는 시오미 정말 잘했다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어진다. 그래 탑안에서 스스로 나온 그녀가 너무 대견하니까. 아직도 자신이 만든 탑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탑안에 갇힌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번쯤 창문을 열고 바깥 세상을 쳐다 보는 것은 어떨까. 한발짝 내밀었을때 오히려 탑안으로 다시 돌아오기 싫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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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섬세한 리뷰 :)
잘 읽고 추천합니다 ^^

학진사랑 2007-08-2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잘 쓰지 못한 제 글을 추천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