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지한 반성‘이라는 항목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도 계속 포함되었다. 반성이 진지한지 여부는 충실한 양형 심리를 기초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피고인이 진지하게반성하는지 판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많은 경우, 피고인의반성이란 형식적 반성문으로 대체되는데, 구치소 내에 대가를 받고반성문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반성문만으로진지한 반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되어 갑질당한 직원을 제대로보호하지 못한 사무장과 변호사의 마음도 가렵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원은 사건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신과 같은존재이므로 법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변호사와 사무장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들은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 마치 해결사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멋진 직업군으로 비치지만, 사실은 부당한 현실에도 항의하지 못하고 눈감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이 대한민국 변호사의 자화상이다.

"도대체 왜 불량 판결문을 생산했습니까? 직전에 두 건이나 유사 사건에서 명품 판결문을 생산하시지 않았습니까? 전관 변호사가피고인의 변호인이라 그런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준비했지만 그 불량 관경문을 내놓은 법관에게 파지 묻지도 못하는 소송 과정을 통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명품 판결문이 선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원 관결에 대한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재한이 아니라 개관이다. ‘판사를 AI로 바꾸자‘는 댓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속상한 마음에 남긴 댓글이겠지만, 현재 법관에 대한 국민들의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까지 이런 댓글만 달고 있어야 할까? 법원의 핵심 구성원인법관의 선발과 평가, 그리고 해임 등 전 과정에 국민의 의견이 더욱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를 다 함께 높였으면 좋겠다.

매년 전국 법원에서 생산되는 관련 분야 관결문을 확인하고, 관결문의 불량성과 명품성을 꼼꼼히 따져 선정하는 이 방대한 작업은여러 활동가와 변호사가 힘을 합친 집단 지성의 힘으로 진행된다. 수심, 수백 개의 판결문을 읽고 또 읽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지만 어제의 걸림돌 판길이 내일의 디딤돌 판결문으로 탄생하는 순간 큰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사법부에 주어진 막강한 힘도, 그 어떤 경우는 침법되어서는 안 될 사법부 독립도 관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판사들이지금처럼 국민을 위해 그 힘을 쓰지 못하고 악용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맡긴 사법 권력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국민들이 든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처럼 대한민국 판사를 단행해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이 부당한 현실을 당장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건 우리만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까지 무력감을 학습받아왔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껏살아라, 튀지마라. 뒤로 빠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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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곧 인생의 끝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몇 시간은 살수 있지요. 이 시간은 오롯이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을 기억하는 데만 전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강한 남자로서 죽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평온함을 느끼니 저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마십시오.
저는 제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니까요. 이슬픈 세상을 떠나는 데 있어 두 분에 대한 걱정 말고 다른 미련은없습니다. 저는 모두를 용서합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도 그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두 분이 이 끔찍한 불행 때문에 하느님을 향한의무를 소홀히 하시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저는 저세상에서 이곳과는 아주 다른 삶을 찾을 것입니다.

나는 신자가 아니니 저세상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거 알지? 죽게되어 유감인 건 맞지만 한편으론 죽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아. 그래,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그렇게 따지면 나는 영웅인 건가? 정말로 전혀 두렵지 않거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니, 당신이 나를이해해 줄 거라는 단순한 사실 그것 하나 때문인 것 같아.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에, 죽음이 별일 아니게 느껴지고 마음이 평온한 것 같아. 남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짧은 생애 동안 타인을 돕는 일에만 열중하며 선을 베풀었으니, 나는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어. 또한 나는 억압받는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위대하고 거룩한 대의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 모든 노력을바쳐 가면서, 겸허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투쟁해 왔어.
몇 시간 후에도 내 마음이 지금과 같을 거라고는 장담하기 힘들지만, 이틀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와 같이, 그리고 지금과 같이, 총살대 앞에서도 평온하고 차분할 거라는 확신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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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청구권은 헌법상 보장하는 권리이므로 우리가 충분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소송을 제기할지 말지, 그리고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화해를 할지 말지, 판결에 대해 항소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여러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을 우습게 여기고 왈가왈부하는 판사를 만날 때면 정말 화가 난다.

재판이 시작되면 판사 이외 공무원 2명이 참여하는데, 굳이 이인력이 재판을 보조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재판은 판사가 하고, 참여하는 법원 공무원 중 1명은 변론조서를 정리하고, 1명은 사긴 진행 시 기록을 올리거나 변호인 또는 소송대리인이제출하는 문서를 수령해 판사에게 전달하는 극히 제한적인 역할만맡는데 말이다. 법정에서 나온 말을 모두 녹음하는 제도를 실시한다.
면 2명 중 1명만 참여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리고 판사가 직접법대를 오르내리며 관련 사건 기록을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다.

법원에 대한 비판은 자칫 사법부의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권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법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우리가 존중해야 할 건 사법부가 선고하는 판결이지 불편부당한 서비스가 아닐 것이다. 법원에서 선고하는 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을 향한 법원의불편부당한 서비스는 비난받아야 한다. 높디높은 법원 문턱이 다 사라져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해본다.

청구 금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에 소액 사건이라는 딱지를붙인 건 1973년 소액사건심판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처음 법을 제정할 당시 2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사건으로 시작한 소액 사건의 범위는 1980년부터는 법률이 아닌 대법원 규칙으로 바뀌었고, 이후 대법원이 범위를 넓혀 2017년에는 3,000만 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소액 사건의 경우 판결 이유를 생략할 수 있는 제도는 1981년부터 시행되어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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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는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자기와 ‘동급이 못 되게‘
깎아내리는 행동을 disparage폄하하다라고 합니다. 집주인이 자기와
‘동등한 상대로 대하면서 가사를 도우며 살게 하는 외국 유학생을 aupair(‘오페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단독으로 쓰이는 par라면아무래도 골프 용어로 가장 유명할 것 같습니다. par파는 birdie 버디와bogey보기 사이의 점수이지요


terminator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암살이나 로봇 관련 정의는찾기 어려울 겁니다. 대개 천문학 용어 뜻이 가장 먼저 나올 텐데,
천문학에서 terminator라고 하면 행성의 표면에서 낮과 밤의 경계를이루는 선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반달의 가운데 직선이terminato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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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아로새긴 수많은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과거 속에 묻히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 더욱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사건이라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지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라고 해도, 결코
‘어서는 안 되는 순간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살벌한 느낌을 주지만, 이그럼 강렬한 진실도 없다. 우리 역사 또한 이 점을 액면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바로 1980년 5월 광주가 흘린 피를 듬뿍금음으로써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망각다면, 민주주의는 다시금 우리에게 피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980년 5월 광주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1961년 민주화 세력은 5·16군사쿠데타를 저지하지 못했다. 목숨을잃을까 두려워했고, 군부에 대한 환상도 상당 정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 18년은 그러한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는 학습의 과정이었는데,
그 점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바로 호남의 민중이었다.
극심한 차별을 경험하면서 호남의 민중은 5·16군사쿠데타를 목숨걸고 저지하지 못한 것을 땅을 치면서 후회하였다. 그러한 후회는 일정한 계기가 마련되면 폭발할 수 있는 깊은 원한이 되어 호남민중 잠재의식의 밑바닥에 자리잡아갔다. 마침내 그 원한이 폭발할 운명의 순간이오고 말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전두환 정권의 광범위한 인권유린은 민주화 세력의 기를 꺾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저항의지를 거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을 받고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접은 경우는 그리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탄압을 받으면서 더욱 강하게 단련되었고 민주화를 향해 더욱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뿐만이 아니었다. 선배 혹은동료들이 정권의 탄압에 의해 모진 고초를 겪는 것을 목격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지지하였고, 나아가 동참하였다. 정권의 탄압은 민주화의 불꽃을 수십 수백 배로 늘어나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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