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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안아줄게
양진채 지음 / 강 / 2025년 11월
평점 :
1970년대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당시 인천 동일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부당한 대우, 그리고 노동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중심의 노조와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노조 결성, 시위, 파업 등 적극적으로 저항했으며, 1976년 반나체 시위, 1978년 똥물 투척 사건 등은 이들의 인권 투쟁을 상징한다. 노조 활동에 참여한 여공들은 해고되고, 전국 사업장에 블랙리스트가 공유되어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겪었다.
동일방직 여공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노동권 인식 개선과 제도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은 당시 동일방직에서 근무했던 세 명의 주인공과 주변인들을 바탕으로, 불과 40년전에 얼마나 인권이 유린되고 있었는지 담담하게 그려낸다.
저자인 양진채 작가님은 당시 인천에서 근로자로 노동운동을 하셨으며, 후에 소설가가 되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이 작품을 저술했다고 밝힌다. 양진채 작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푸른 유리 심장』 『검은 설탕의 시간』, 장편소설로 『변사 기담』, 스마트소설집으로 『달로 간 자전거』, 산문집으로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 등이 있다."
작품의 시놉시스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1978년 2월, 노조 지부장 선거를 위해 투표하러 가던 방직공장 여공들의 머리 위로 똥물이 끼얹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자비한 구타. “너는 공포로 굳어 있었고 너를 보호해야 했지. 공포는 명숙의 감정이었지만 네게 고스란히 전해졌어. 불안하고 떨리던, 분노에 차 어쩔 줄을 모르던, 터져버릴 것 같던 그 생생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해.”
소설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미은과 명숙, 선자, 그리고 태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올라온 미은은 같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명숙, 선자와 한방을 쓰며 친자매와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세 사람은 휴일 없는 삼교대의 고된 노동 환경 속에서도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청춘을 꽃피운다.
명숙은 공장에서 개최하는 미스동일 선발대회에 나가고, 선자는 공장 일과 노조 대의원 활동을 병행하고, 미은은 성당 야학을 다니며 공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세 사람이 하숙하고 있는 주인집 아들 태오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의 종지기 일을 맡고 있다.
태오는 동갑내기인 미은과 점차 가까워지며, 또 가난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친구 경준과 함께하며 사제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이 정말로 있다면 어째서 사람들은 이렇게 가난한가. 어째서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가."
똥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 세 명의 동료들중 명숙은 그날 뱃속의 아이를 잃는다. 소설은 그 아이에 대한 진혼곡의 형식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계속 이어나간다. 잔잔한듯 하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읽다보면 살짝 울컥한 감정과 함께 이 땅의 근로자들 복지가 좀더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