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짙어졌다.


17년 만에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다시 봤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못한 불편한 장면들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 보고 나서 결국울어버렸다. 여름이 가진, 대책 없이 낙관적인 에너지가 화면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그때 조카랑 똑같이 아홉 살이던 주인공 마사오는 이제스물여섯이 됐겠구나. 툭하면 고개를 떨어뜨리며 풀 죽던, 뜨거운 태양아래서 잘도 달리던 그 아이 역시 이제껏 여름과 함께 자라왔겠지.
기쿠지로 아저씨와 함께한 날들을 추억하는 사이, 어느새 훌쩍 어른이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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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비트코인과 함께 블록체인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되어간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지는 최근 1~2년밖에 되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건 무척드문 일인데, 암호화폐 투자 열기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는 2017년 한 해 동안 그 열기가 뜨거웠던 반면, 2018년 상반기에는 긴 하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부침과는 상관없이 블록체인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적용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을 변화시킬 것이라기대한다.

블록체인의 핵심 요소분산화된 구조 - 단일 실패점(point of failure)이 존재하지 않음.
장부의 다자간 공유 - 소수의 인물/세력에 의한 조작 방지.
암호화된 연결 - 전 페이지(블록)와 암호로 연결

스마트 컨트랙트


· 스마트 컨트랙트의 개념은 닉 자보(Nick Szabo)가 1994년에 처음 제시했다. 암호학자이자 법학자였던 자보는 상업에서 사용되는 계약의 법칙을 전자 플랫폼으로 옮겨오면서 법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계약이 이행되고, 이에 따라 보안을갖추는 동시에 계약의 이행에서 제3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자보는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하면서 현실에 적응되는 예시를 들었는데, 바로 자판기다. 자판기는 특정 조건(특정 물품에 대한 금액 지불)이 성립되지 않으면 물건을주지 않지만, 반대로 그 조건이 성립되면 제3자의 개입 없이 해당 물건을 바로 제공한다. 아날로그 스마트 컨트랙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하면 계약을 집행하기 위해 추가 자원이나 인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져 중간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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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릭 부테린은 스마트 컨트랙트의 개념을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한 이더리움을 개발하여 암호화폐 분야에서 사토시 나카모토에 버금가는 영향력과 상징성을지니게 되었다.

암호화폐의 가격 유동성


암호화폐 가격이 워낙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투기성, 사행성이 짙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는 합리적인 의견이라 할 수 없다.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은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기술을 활용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이로 인해 발생한 부가가치가 시장 상황과 맞물려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폐와 주식 역시 가치가 오르고 내린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마르크화의 인플레이션, 경제대공황 당시 주식 폭락 등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발생했지만, 이러한 사건 때문에 화폐와 주식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점을 생각하자.


사이퍼펑크

· 사이퍼펑크는 암호화 또는 해독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을 의미하는 단어 사이퍼(ci-pher, 또는 cypher), 그리고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발생하는 인류의 괴리감을표현한 공상과학 장르인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들어졌다.
· 사이퍼펑크는 일사불란한 연합체가 아니라, 암호화 기술이 필요하다는 철학을가진 사람들끼리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수학, 암호학, 철학 등에 대한 토론 및논쟁을 진행하는 이메일 리스트였다. 1997년에는 총 2천여 명의 가입자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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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잘하지 못하던 내가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수학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 때문이었다. 또한 무시당하기 싫다는 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성적이 오를수록 내가 깨달은사실이 있었다. 공부를 잘하면 ‘자유‘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 ‘자기 할 일은 잘하는 아이‘라는 이미지를 어른들에게 심은 덕에 나는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었다. 공부는 내게 ‘놀수 있는 자유‘를 준 셈이다.

하루에 30분만 게임을 하겠다. TV 보는 시간을 두 달에 걸쳐 서서히 줄이겠다, 이번 주까지만 놀고 다음 주부터 공부하겠다이런 식의 적당한 타협책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 "오늘까지만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야" 라는 사람치고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 장담하건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타협책은 어떻게 해서든 기존의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뇌가 가진 관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습관과 타협하지 말고 단호히 끊어 내야 한다.

1~2주, 길어도 한 달만 안 하면 쫓아가기 귀찮아서 그만두게 될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분명한 점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 여러분이 죽고 못 사는 그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최신 게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때 가면 지금 여러분이 빠져 있는 그 게임을 하는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도않을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도 그 게임이 한물갔다고 -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 게임을 하지 못해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지금이 순간만 극복하면 훗날 최신 게임을 질릴 때까지 즐길 수 있다.
게임 경력 20년 소유자로서 드리는 간곡한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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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소재를 잡는 데서부터 그러했다. 내게 칼럼을쓴다는 것은 ‘기승전결‘을 갖춘 1,500자짜리 이야기만을 글감으로 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었다. 늘 끼고 있던 필터가 하루아침에 무화될 리 없다.
뭣보다 칼럼은 매 원고가 그 독자에게 가닿는 혹은 평가받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독자가 나의 지난글을 기억할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가령 ‘이전 글에 썼듯이와 같이.) 매 원고 새로운 독자를 상정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글 하나 허투루 메시지를담아서는 안 되었다. 각각의 글이 분명하고 독자적인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만 했다.

단편적이지만 유의미한 이야기, 명시적이지 않지만 새로운 정서적 경험을 제공하는 세련된 이야기들을, 나는 쓸 수 없었다. "뭐야, 고작 이런 걸로도 글을써?"보다는 "이건 너무 주제의식이 대놓고 교훈적인거 아니야?"가 안전하게 느껴졌다. 고작 이런 걸로도글을 쓰는 심지어는 잘만 쓰는 사람들의 산문집을 들춰 보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이르렀으니 분에 넘치는 기회였음은 자명하다. 그뿐만아니라 좋아하는 것들, 좋았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주인공으로 삼아 생각하고 문장화한 산물들을 들추어볼 때에는, 공적인 지면에 별나지 않은 생애를 전시해놓은 것 같아 송구하기는 하지만, 뿌듯하다.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다. 한 편 한 편, 한 장 한 장이 두고두고꺼내 보고 싶은 기념엽서 같다. 여행의 끝에서 이 얼마나 예쁘고 귀한 보물들일지를 생각하면 되려 고료를받은 것이 염치없기까지 하다.

이 책이 나오면 나는 아마 책 제목을 수식어로 내이름을 검색해 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혹평 필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다이어리를펼쳐 들고 울고 웃고 있을 훗날의 나에게, 그저 건투를빈다.

‘혼자 여행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 나의 세계는확장되었고, 혼자 소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그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언제든 동행에 구애받지 않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언제든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수 있으며 즉 생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언제든 발 디딘 자리에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임을 자신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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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경제의 점진적인 붕괴는 문화 대혁명에서 파생된 의도치 않은 결과 중하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잔재가 사라진 것도마찬가지였다. 마오쩌둥이 사망했을 즈음에는 농민들이 보다 많은 경제적기회를 요구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대중은 수십 년째 그들을 구속해오던 마오쩌둥주의라는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었다. 끝없는 사상 개조운동의 결과로 심지어 당원들 사이에서도 회의론이 만연해 있었다.


공산주의 논리에 따르면 생산 수단의 소유 문제를 둘러싼 사회주의식개혁이 일단락된 다음에는 개인주의적인 사고부터 민간 시장에이르기까지 부르주아 문화의 모든 흔적을 영원히 제거할 새로운 혁명이필요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데 혁명이 필요한 것처럼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갈 때도 혁명이 필요했다. 마오쩌둥은 이를문화 대혁명이라고 불렀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 이후, 노쇠한 마오쩌둥은 잃어버린 자신의 위상을회복하고 정적들을 제거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적 시장 정책이 공산주의이념의 순수성을 위협한다는 주장과 함께 문화 대혁명이 일어났다.
마오쩌둥을 숭배한 홍위병들이 득세했고, 라이벌 당파와의 권력 투쟁이벌어졌다. 순수성이라는 이름 아래, 거리는 반자동 무기를 든 군인들로가득 찼다. 그리고 인민의 50분의 1을 짓밟은 피의 숙청이 이어졌다.
디쾨터는 이 책을 통해 마오쩌둥의 마지막 시기와 격동의 중국을교차함으로써, 문화 대혁명의 전모를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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