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소재를 잡는 데서부터 그러했다. 내게 칼럼을쓴다는 것은 ‘기승전결‘을 갖춘 1,500자짜리 이야기만을 글감으로 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었다. 늘 끼고 있던 필터가 하루아침에 무화될 리 없다.
뭣보다 칼럼은 매 원고가 그 독자에게 가닿는 혹은 평가받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독자가 나의 지난글을 기억할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가령 ‘이전 글에 썼듯이와 같이.) 매 원고 새로운 독자를 상정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글 하나 허투루 메시지를담아서는 안 되었다. 각각의 글이 분명하고 독자적인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만 했다.

단편적이지만 유의미한 이야기, 명시적이지 않지만 새로운 정서적 경험을 제공하는 세련된 이야기들을, 나는 쓸 수 없었다. "뭐야, 고작 이런 걸로도 글을써?"보다는 "이건 너무 주제의식이 대놓고 교훈적인거 아니야?"가 안전하게 느껴졌다. 고작 이런 걸로도글을 쓰는 심지어는 잘만 쓰는 사람들의 산문집을 들춰 보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이르렀으니 분에 넘치는 기회였음은 자명하다. 그뿐만아니라 좋아하는 것들, 좋았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주인공으로 삼아 생각하고 문장화한 산물들을 들추어볼 때에는, 공적인 지면에 별나지 않은 생애를 전시해놓은 것 같아 송구하기는 하지만, 뿌듯하다.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다. 한 편 한 편, 한 장 한 장이 두고두고꺼내 보고 싶은 기념엽서 같다. 여행의 끝에서 이 얼마나 예쁘고 귀한 보물들일지를 생각하면 되려 고료를받은 것이 염치없기까지 하다.

이 책이 나오면 나는 아마 책 제목을 수식어로 내이름을 검색해 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혹평 필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다이어리를펼쳐 들고 울고 웃고 있을 훗날의 나에게, 그저 건투를빈다.

‘혼자 여행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 나의 세계는확장되었고, 혼자 소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그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언제든 동행에 구애받지 않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언제든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수 있으며 즉 생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언제든 발 디딘 자리에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임을 자신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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