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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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관련한 책을 산 건 이번이 두번째이다. 처음은 선물하려고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샀고, 두 번째는 마종기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이다.  검색을 하다 광고를 보고 클릭해서 본문을 보았는데, 그 때 본 시가 <정신과 병동>이었다. 

     시에서 풍기는 쓸쓸한 분위기가 좋고 그 뒤에 시를 쓰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의 에세이가 붙어있어서 이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집의 특성상 소설처럼 쭉쭉 읽으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마종기란 시인이 해주는 이야기때문에 계속 볼 수밖에 없 

     었다. 시를 읽기 위해서보다, 시 뒤에 있는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그가 쓸쓸해하며 쓴 시들, 인생을 더 

     많이 살면서 겪은 경험들을 난 쏙쏙 흡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데에는 충실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시대적 상황때문에 타국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국,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시를 쓰고, 쓰고 난 뒤에 눈물을 흘린적이 많았다는 그를 상상하면서 그가 느꼈을 쓸쓸함을 조금이나마 추측 

     해본다. 전반적으로 쓸쓸하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진실된 사람인 듯한 느낌이..   

     후배들의 헌사가 4편이나 실려있어 마종기란 시인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다.

 

      읽다보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문학교과서에 실려서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해줄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었다. 사실 문학교과서에서 접하는 시들은 그 구성이 진부하고 진부해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 보이지 않는다. (그게 학교에서 해석하고, 외우는 방식때문에 그렇기는 해도) 나는 마종기 라는 시인을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를 학교 교과서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시를 보면서 시가 마냥 어려운 건 아니구나 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학생때 버릇때문에 이 시는 이미지즘적이 

      고, 종교적이고, 주된 정서는 쓸쓸함, 그리움이다 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정리?해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태까지 시를  

      거의 읽지 않고 살았는데, 앞으로 시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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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2010-07-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고 쓸쓸할때 읽으니 더 좋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 글은 감상, 끄적거림에 불과하고 글 잘 쓰는 이에게 보여주면 장난이냐며 웃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걸까?   

     그게 궁금했다.  

    학교에서 하는 독서모임에서도 토론을 한 뒤 글을 쓰고, 내가 따로 읽는 책은 여기에다 글을 쓴다. 학교에도 책 이야기 

    를 하는 사이트가 있어 많은 학생들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다. 근데 그들은 왜 글을 쓰는 걸까? 난 궁금하다. 

         

    나는 왜 끄적거리는 걸까? 누구는 쓰는 행위는 한번 사는 인간을 영원하게 해준다고 했지만, 내가 그걸 바라는 거 같지 

    않다.  글쓰는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책 읽은 기억, 느낌을 잡아두려고?  하도 블로그 블로그 하니까? 그도 아니면  

    창작욕구?? 

      

     나는 어떤 인간이길래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까? 어떤 날은 리뷰든 페이퍼에 쓰는 신변잡기든 뭔가 적고 싶다는  

   욕구가 들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날은 정말 정말 드물다. 내가 아는 분은 작가가 되고 싶은데, 슬플 때에만 글을 쓰고  

    싶고 써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글 쓰는게 너무 괴롭다고 하였다. 그런 건 어떻게 하지?  또 기자를 지망하는 어떤 분은 글 

  로 세상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기에 글을 쓴다고 하였다.   

 

    난 그런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처럼 '확실한 목표'가 있으면 좋겠으면 싶지만도, 그러면 얽매 

   이게 될까봐 싫기도 하고.. 내가 글을  쓰는 게 일종의 '허세'에서 비롯된 행위면 어쩌지? 란 생각도 든다.  

 

     중요한 건, 이런 넋두리는 조금 더 내가 글을 더 써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뭘 좀 더 많이 써보고 고민해봐야  

    내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해답을 미리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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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정. 그녀와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알라딘 인문강좌를 신청해놓고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를 실제로 보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 좋았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내가 만나게 된다니! 
  
 
         [뼛속가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보고 받은 느낌은 참 이 사람 행운이 따라다니는 사람이구나, 였다.  
 
    모든건 국경을 넘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그녀의 글을 보면서 나도 프랑스 가면 목수정처럼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내 
 
내 따라다녔다. 그리고 쉽게 잘 읽히는 그녀의 글이, 글솜씨가 부러웠다.    
 
 
         그런 그녀를 직접 보게 되다니! 물론 목수정이란 사람을 알게 된 지 고작해야 일주일이고, 책도 한 권밖에 안 읽은 나 
 
였지만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 웅진이 마련한 자리에서 기다리는 동안 강의안을 읽었고, 그녀는 건너편 막에서 나왔다.  
 
그녀가 나왔을 때 느낌이란 ! 이쁘다, 이런거를 다 떠나 난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을 여지껏 본적이 없었다. 난 사람의  
 
위기에서 그 사람의 삶의 태도나 성격이 묻어나온다고 생각하기에 분위기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근데 목수정은 처음 보 
 
는 분위기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강연은 편안하게 이루어졌다. 그녀가 앞으로 낼 책이 내용이 강연내용이라던데 '한국사회에서 왜 사랑의 에너지가 사 
 
라졌는가? ' '한국사회의 기형적 성 생활, 한국인들의 각종 우울한 수치들을 '사랑'과 연관지은 강연이었다. 지금 이 사회에 
 
는 결혼도 아니고, 돈을 주고 지불하는 성 산업이 발달해 있다며 성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라는 게 문제의식 
 
 듯 하였다. '사랑'이란 마법이 사회전체에 퍼지면 성폭력, 우울증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논지 
 
인 듯 하다. 그리고 그녀는 10대들에게도 사랑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딸에게 그런 엄마가 되는 게 꿈이 
 
는 그녀의 주장은 어찌보면 과격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낭만적이기도 하다.   
 
  
          10대의 사랑. 전 공정택 교육감의 10대 연애에 관한 철학은 이랬다고 한다. 연애 금지, 성관계 적발시 퇴학. 전 서울 
 
 교육감처럼 10대를 무지한 인간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목수정 그녀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 위험한 듯 하 
 
다.  연애는 허락하는게 가능하다. 그런데 10대의 성관계까지 허락하는 것은 나는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물론 건강한, 책 
 
임을 지는 관계를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10대는 커녕, 20대의 성 또한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 분위 
 
기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깜깜하다.
 
            
           
          3일 들었던 강연과 목수정을 본 기억을 생각하면 나도 그녀처럼 되고 싶다. 혹은 그녀처럼 분위기를 풀풀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면서 살면 나도 언젠간 그녀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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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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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한창 스폰서 검사라고 해서 시끄러웠다. 한 두번 터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려니 했던 그들이 갑자기 알고 싶어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검사, 판사, 변호사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난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티비에서 보는 것에서 유추해서 아 저런 일을 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다.      

 

        2008년 7월 기준으로 변호사, 판사, 검사는 총 1만 4201명이라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많은 숫자지만 법조계는 굉장히 좁은 바닥이라 근무지와 경력을 얘기해도 법조계 인사는 누군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은 매우 위험한 도전을 한 책이 아닌가 싶다. 23명의 법조인, 법률 사무인 등을 인터뷰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히듯이 이 책은 '그들만의 경험'이라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일단은) 하지만 종종 읽다보면 사법전체가 이러하다 라고 생각하면서 읽는 나를 보게 된다.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동안 사법계에 품어왔던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걷어버린다. 특히나, 우리 사회가 지적하는 비리, 로비 등은 그들의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서 비롯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보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 거절할 수 없는 관계라고 칭한 관계가 '거절할 수도 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해결책이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게 했다. 또, 일명 로비스트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정말 솔직하다. 법률 사무실에 있는 사무실장은 모두 로비스트라 보면 된다며 그 사람들을 잡아가면 된다는 법률사무소 직원의 말은 우리 사회가 이들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현재 로스쿨 교수가 쓴 이 책은 그 자신이 사법고시패스생이었기도 해서 얼마간은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점은 우리가 모두 사법집단을 매도하지 말고 그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며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지만 정작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든 인맥을 동원해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청탁이 될 수도 있고, 밤 못드는 잠을 만들 부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신흥 귀족이라는 듯 우러러보지만, 그들도 같은 고민을 하는 인간임을 깨닫는다면 법조인에 대한 무작정의 동경도,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아, 이 책 희망제작소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책이다. 게다가 삼성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책이다! 이런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독자입장에선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김용철 변호사 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어찌 봐야 할 지도 아리송하다.)

      (역시나, 이 책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분들, 현재 법조계에 계시는 분들이 일차적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법대생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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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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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슴도치의 우아함?? 

        이 책은 프랑스에서 40만부가 넘게 팔린 책이라고 한다. 500쪽에 육박하는 분량과 쉽지 않은 소설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문장들은 '철학선생 아니랄까봐 어렵게 썼나'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문장들은 조금조금 흘리고 르네와 팔로마에게 집중한다면 정말 어려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 2명은 모두 특이하다. 세상에 어떤 책의 주인공이 특이하지 않으리만, 철학과 영화와 문학을 좋아하는 경비실 수위(르네)가 어디있으며, 부잣집 딸로 태어나 열두살에 자살을 생각하는 소녀(팔로마)는 어디있을까 싶다. 이 책이 힘을 얻는 이유는 캐릭터가 독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2명의 주인공의 공통점은 이러하다 : 지적 수준이 뛰어나다, 다른 사람과 행복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거의)없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산다   

      소설에서 르네와 팔로마는 쉽사리 만나지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 즈음에서야 두사람이 만나 이야기하고, 내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이들은 일상을 정말 일상처럼 살았다. 흥미로운 건 이 두사람이 서로에게 더 다가가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카쿠로 오주라는 일본인이다. 르네는 오주와 첫 눈에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물론 르네는 정체가 탄로날까 망설이고, 오주와 친구가 되어서도 계급을 뛰어넘는 우정은 있을 수 없다며 부정하긴 한다. 르네와 오주, 팔로마는 서로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혹은 사랑을 나눈다.  

      '고슴도치' 가 흔히 의미하는 바는 남과 관계를 맺고 싶어도 못 맺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 고슴도치는 르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르네가 자신의 본모습을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 이다. 또, 르네와 팔로마는 둘다 지적 수준이 뛰어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혹은 귀찮아지지 않으려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 이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화'가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들은 지적수준이 자신들과 안 맞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카쿠로 오주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뛰어난 지적수준과 취향때문이었다.  

      뭘까?  꼭 지적수준이 뛰어난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어 마음을 털어놓고,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닐것이다. 아마 우리가 친구가 되는 이유는 성격, 취향, 계급이 비슷해서여서 이런 설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에 계속 나온 문장이 있다.  

                                                                                   "여러분, 친구는 하나만 사귀세요. 하지만 잘 선택하세요."   

      

  인간의 고독함은 친구 하나만 잘 사귀어도 왠만큼 해결될 수 있을까. 그런가보다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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