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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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2편에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p.70  그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냉소적인 것, 소위 쿨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인생은 상처는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더욱 황당한 것은 상처는 후회도 해 보고 반항도 해 보고 나면 그 후에 무언가를 극복도 해볼수 있지만 후회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공허는 후회조차 할 수 없어서 쿨(cool)하다 못해 서늘(chill)해져 버린다는 거지.

         1년 전 즈음에 이 글을 봤으면 어땠을까? 위녕처럼 상처받지 않는게 그래도 좋은 게 아니냐고 했을 거다. 지금 나는, 상처가 오면, 상처를 받게 된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그 상처를 견디고 더 나아갈 수 있을지. 그 상처가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줄지.. 나도 비바람때문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처럼, 깊이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상처를 받더라도 그 상처가 나를 너무나도 '쿨'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 

 

  p.80  엄마 친구가 그러더라. 인생의 길을 올바로 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이 세 가지를 질문하면 된다는 거야. 네가 원하는 길인가? 남들도 그게 너의 길이라고 하나? 마지막으로 운명도 그것이 당신의 길이라고 하는가?

       남들이 나의 길이라고 안하면 어떡하지??? 혹시라도 내가 가게 될 길이 너무나도 시대를 앞서간 것이어서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그러나 내가 그런 삶을 살 것 같지는 않은..)     

 

 p.100  고통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고통과 작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 고통을 놓아 버린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릔 신부님)

       지금 고통받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고통스러워할 나날이 있을 것이기에, 이 글귀를 적어둔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자가 되어 이 글을 볼 수 있길.    

 

p.144   우선적으로 가장 강한 자들을 원할 것인지 아니면 가장 약한 자들을 위해 봉사할 것인지는 우리가 내려야 할 진정한 사회적 선택이다. 이 선택이야말로 한 가정이, 한 종족이, 한 나라가, 또는 한 문화가 위대한지 또는 저급한지를 결정짓는 것이다.(피에르 신부)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생각하게 해본 구절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외치고 있으니(지배세력이),.. 나중에 더 어른이 되면 꼭 새겨놓고 살아야겠다. 그때 나는 가장 약한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 

  

 p. 164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열정>>

        모든 것의 끝에, 내 인생으로 대답을 하게 된다는 말.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전 생애로 답해야 한다는 게 중간고사, 기말고사 전범위 시험을 본다는 것처럼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 마지막에 서서, 나는 자신있게  "난 이렇게 살았어요! 행복하게,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았어요!"라고 외칠 수 있을까? 한순간 한순간을 열심히 살라는 공지영의 목소리도 들린다. 나중에, 내 전 생애가 송두리째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고생해야겠다.

 

p.165    자네 영혼의 밑바탕에는 갈등, 자네가 아닌 사람이고 싶은 동경이 숨어 있었어.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시련은 없네.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보다 더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

         나도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든 자유자재로 감쪽같이 될 수 있다'는 능력을 가졌을 때는 정말 부러웠다. 나도 그 주인공처럼 내가 원할때마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 성격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시련은 없다는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자기를 인정하려면, 일단 현재의 자신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내가 두려운 건 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p. 179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네, 이렇게 사랑할게요 공지영씨. 내 사랑과 상대방의 사랑이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삶의 기쁨이 되도록요.   

 

p.228    여성의 가장 큰 매력인 여성스러움을 왜 버리려 할까 (타샤 할머니) 

         사실 공지영씨가 한때 그랬다는 것처럼, 나도 여성적이지 않은 옷차림을 좋아하며 그런 게 멋있다고 생각한다. 대놓고 '나 여자에요'하는 옷은 싫어한다. 다만 ,, 정도의 차이지만 이제 그 여성스러움에 대해 좀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왜냐면, 젊었을 때의 여성스러움은 나이들었을 때의 여성스러움과 차이가 있을 것이며, 다시 한번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도 마음껏 발산하고(!)  

 

     이제 내가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다 썼다. 저자가 각 에피소드의 끝마다 수영을 하러 가야 한다며 (끝내 가지 않았지만) 늘어놓던 핑계(!)와  음,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그녀가 가려던 수영장이 나중엔 슈퍼로 바뀌고 말았는데, 평소 생각에 대단해보이던 사람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킥킥 웃을 수 있던 게 좋았다. 에필로그로 그녀의 딸, 위녕이 쓴 편지도 너무 좋았다. 이런 모녀가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다. 또, 장차 그녀가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도 하게된다. 참- 읽으면서 따뜻한 책이었다.  

   자,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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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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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여쪽이 되는 책을 다 읽고나니 왜이렇게 노트에 받아적을 글귀가 많은지 모르겠다. 딸에게 전해주던 편지를 묶어서 낸 에세이라 그런지 '진심어린' 글이 묵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이 책을 읽은 모두의 감성을 건드리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게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책이 잠시라도 모두의 마음을 두드렸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이런 에세이를 읽는 재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삶을 한 번 되돌아보고 생각해보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받아적은 글귀들로 이번 리뷰를 쓰려고 한다.       

 

   p.13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될 그런 사람.

    내가 이 글이 좋아서 적어놓으니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말했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이별이 '좋게'이뤄질 수 있냐고 말이다. 두 의견 모두 맞는 것 같다. 다만 '좋다'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다른게 아닌가 싶다. 연인과의 이별 그 자체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인연을 나중에 떠올릴 때 '참 좋은 사람과 사랑을 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좋게' 헤어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말이 의미 있다고 본다.  

 

p.35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 용기가 있는지도 의문, 남한테 내가 바라는 방식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의문. 둘 다 하려면 얼마나 더 자라야 할까.  

     

p.37  넌 스무 해를 살았니? 어쩌면 똑같은 일 년을 스무 번 산 것은 아니니? 네 스무살이 일 년의 스무 번의 반복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p.38  여러분 대부분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이 살아지도록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삶이 아닙니다. (안소니 신부의 말)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뜨끔한 구절. 남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은 내가 항상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난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살고 있다고 느끼는 때는 언제이지?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도전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에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자아실현을 위해 산다고 한다. 나는 .. 내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 것 같은 순간은, 자연의 냄새(여름냄새, 봄 냄새, 겨울냄새, 비 냄새, 풀 내음 등)를 맡을 때인것 같다.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다면 더 좋고. ...... 내가 느끼는 순간들은 이렇게 작고 보잘것 없는 것 같은데, 이게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진정한 순간들일까. 성취감이나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내가 유유자적하는 사람처럼 같이 보일뿐이다. 그들이 맞고 내가 틀린거?  그건 아니다. 그럼 뭘까. 더 생각해봐야겠다. 살아지는 내가 아니라 살고 있는 내가 되기 위해.

 

p. 38  위녕, 아직 젊은 너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삶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구나. 그 이유는 반복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런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복이 일상이 된다면 삶은 권태로울 것 같다. 물론 그 권태로움 속에서도 조그마한 즐거움은 있겠지만. 삶이 쏜살같이 가지 않고, 천천히 내가 가는 속도로 가게하려면 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 말은 쉽다.    

 

 p.55 '아아 이런 때야'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읽으면서 속으로 '아-아--- 이런 때야---'라고 하게 한 구절.  '아- 아 이런 때야---'가 오면 꼭 소리내어 "아아---- 이런 때야!!"라고 말해야지!!! 그래서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p. 66   우정은 정적이지 않다. 우정은 마치 강물과 같아서 어떤 방향으로건 흐를 때만 의미가 있다. 언제나 발전하고 변화하고 넒어지고 새로운 경험을 흡수해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잉글랜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친구는 결코 배타적인 소유물이 될 수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친구를 나누거나 잃는 일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 해 한 해 살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다. 특정 시기의 특정 경험을 공유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친구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친구'라는 표현에 깜짝 놀랐다. 내 생각과 맞닿아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칫 이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는 정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와 대학생이 되고 나서까지 연락을 하고 잘 지냈지만 그때만큼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마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놓여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왜 너는 연락을 먼저 안하냐며 툴툴댔을 나는, 이제 한결 편안한(?)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게 되었다. 뭐랄까. .  그 친구가 진정 나와 인연이라면 굳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그리고 문득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놓은 듯 하다. 물론 친구도 연락을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점이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뭔가 '특별한'게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친구를 나누거나 잃는 일. 잃은 적은 없지만, 나누는 경험은 해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게 은근 학창 시절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친구를 나누는 일은 어쩌면 친구를 잃는 것 보다 더 마음이 쓰라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다른 친구와 함께 놀아야 하니 말이다. 소위 '쿨함'을 가장하는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도 친구를 나누는 일은 태연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친구로만 남아줄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와 친하게 되면, 그 때의 쓸쓸함이란! (물론 이제는 그다지 연연하지도 않지만. 이 또한 쿨해보이려는 것일 수도..) 학창시절 맘에 드는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온갖 친절을 베풀고, 얘기를 쉼없이 하던걸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애를 써야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 그렇다. .  

     #리뷰 2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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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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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관련한 책을 산 건 이번이 두번째이다. 처음은 선물하려고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샀고, 두 번째는 마종기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이다.  검색을 하다 광고를 보고 클릭해서 본문을 보았는데, 그 때 본 시가 <정신과 병동>이었다. 

     시에서 풍기는 쓸쓸한 분위기가 좋고 그 뒤에 시를 쓰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의 에세이가 붙어있어서 이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집의 특성상 소설처럼 쭉쭉 읽으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마종기란 시인이 해주는 이야기때문에 계속 볼 수밖에 없 

     었다. 시를 읽기 위해서보다, 시 뒤에 있는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그가 쓸쓸해하며 쓴 시들, 인생을 더 

     많이 살면서 겪은 경험들을 난 쏙쏙 흡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데에는 충실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시대적 상황때문에 타국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국,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시를 쓰고, 쓰고 난 뒤에 눈물을 흘린적이 많았다는 그를 상상하면서 그가 느꼈을 쓸쓸함을 조금이나마 추측 

     해본다. 전반적으로 쓸쓸하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진실된 사람인 듯한 느낌이..   

     후배들의 헌사가 4편이나 실려있어 마종기란 시인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다.

 

      읽다보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문학교과서에 실려서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해줄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었다. 사실 문학교과서에서 접하는 시들은 그 구성이 진부하고 진부해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 보이지 않는다. (그게 학교에서 해석하고, 외우는 방식때문에 그렇기는 해도) 나는 마종기 라는 시인을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를 학교 교과서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시를 보면서 시가 마냥 어려운 건 아니구나 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학생때 버릇때문에 이 시는 이미지즘적이 

      고, 종교적이고, 주된 정서는 쓸쓸함, 그리움이다 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정리?해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태까지 시를  

      거의 읽지 않고 살았는데, 앞으로 시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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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2010-07-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고 쓸쓸할때 읽으니 더 좋다.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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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한창 스폰서 검사라고 해서 시끄러웠다. 한 두번 터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려니 했던 그들이 갑자기 알고 싶어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검사, 판사, 변호사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난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티비에서 보는 것에서 유추해서 아 저런 일을 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다.      

 

        2008년 7월 기준으로 변호사, 판사, 검사는 총 1만 4201명이라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많은 숫자지만 법조계는 굉장히 좁은 바닥이라 근무지와 경력을 얘기해도 법조계 인사는 누군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은 매우 위험한 도전을 한 책이 아닌가 싶다. 23명의 법조인, 법률 사무인 등을 인터뷰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히듯이 이 책은 '그들만의 경험'이라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일단은) 하지만 종종 읽다보면 사법전체가 이러하다 라고 생각하면서 읽는 나를 보게 된다.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동안 사법계에 품어왔던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걷어버린다. 특히나, 우리 사회가 지적하는 비리, 로비 등은 그들의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서 비롯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보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 거절할 수 없는 관계라고 칭한 관계가 '거절할 수도 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해결책이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게 했다. 또, 일명 로비스트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정말 솔직하다. 법률 사무실에 있는 사무실장은 모두 로비스트라 보면 된다며 그 사람들을 잡아가면 된다는 법률사무소 직원의 말은 우리 사회가 이들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현재 로스쿨 교수가 쓴 이 책은 그 자신이 사법고시패스생이었기도 해서 얼마간은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점은 우리가 모두 사법집단을 매도하지 말고 그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며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지만 정작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든 인맥을 동원해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청탁이 될 수도 있고, 밤 못드는 잠을 만들 부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신흥 귀족이라는 듯 우러러보지만, 그들도 같은 고민을 하는 인간임을 깨닫는다면 법조인에 대한 무작정의 동경도,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아, 이 책 희망제작소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책이다. 게다가 삼성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책이다! 이런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독자입장에선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김용철 변호사 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어찌 봐야 할 지도 아리송하다.)

      (역시나, 이 책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분들, 현재 법조계에 계시는 분들이 일차적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법대생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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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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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슴도치의 우아함?? 

        이 책은 프랑스에서 40만부가 넘게 팔린 책이라고 한다. 500쪽에 육박하는 분량과 쉽지 않은 소설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문장들은 '철학선생 아니랄까봐 어렵게 썼나'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문장들은 조금조금 흘리고 르네와 팔로마에게 집중한다면 정말 어려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 2명은 모두 특이하다. 세상에 어떤 책의 주인공이 특이하지 않으리만, 철학과 영화와 문학을 좋아하는 경비실 수위(르네)가 어디있으며, 부잣집 딸로 태어나 열두살에 자살을 생각하는 소녀(팔로마)는 어디있을까 싶다. 이 책이 힘을 얻는 이유는 캐릭터가 독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2명의 주인공의 공통점은 이러하다 : 지적 수준이 뛰어나다, 다른 사람과 행복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거의)없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산다   

      소설에서 르네와 팔로마는 쉽사리 만나지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 즈음에서야 두사람이 만나 이야기하고, 내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이들은 일상을 정말 일상처럼 살았다. 흥미로운 건 이 두사람이 서로에게 더 다가가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카쿠로 오주라는 일본인이다. 르네는 오주와 첫 눈에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물론 르네는 정체가 탄로날까 망설이고, 오주와 친구가 되어서도 계급을 뛰어넘는 우정은 있을 수 없다며 부정하긴 한다. 르네와 오주, 팔로마는 서로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혹은 사랑을 나눈다.  

      '고슴도치' 가 흔히 의미하는 바는 남과 관계를 맺고 싶어도 못 맺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 고슴도치는 르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르네가 자신의 본모습을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 이다. 또, 르네와 팔로마는 둘다 지적 수준이 뛰어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혹은 귀찮아지지 않으려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 이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화'가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들은 지적수준이 자신들과 안 맞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카쿠로 오주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뛰어난 지적수준과 취향때문이었다.  

      뭘까?  꼭 지적수준이 뛰어난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어 마음을 털어놓고,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닐것이다. 아마 우리가 친구가 되는 이유는 성격, 취향, 계급이 비슷해서여서 이런 설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에 계속 나온 문장이 있다.  

                                                                                   "여러분, 친구는 하나만 사귀세요. 하지만 잘 선택하세요."   

      

  인간의 고독함은 친구 하나만 잘 사귀어도 왠만큼 해결될 수 있을까. 그런가보다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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