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50여쪽이 되는 책을 다 읽고나니 왜이렇게 노트에 받아적을 글귀가 많은지 모르겠다. 딸에게 전해주던 편지를 묶어서 낸 에세이라 그런지 '진심어린' 글이 묵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이 책을 읽은 모두의 감성을 건드리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게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책이 잠시라도 모두의 마음을 두드렸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이런 에세이를 읽는 재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삶을 한 번 되돌아보고 생각해보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받아적은 글귀들로 이번 리뷰를 쓰려고 한다.       

 

   p.13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될 그런 사람.

    내가 이 글이 좋아서 적어놓으니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말했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이별이 '좋게'이뤄질 수 있냐고 말이다. 두 의견 모두 맞는 것 같다. 다만 '좋다'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다른게 아닌가 싶다. 연인과의 이별 그 자체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인연을 나중에 떠올릴 때 '참 좋은 사람과 사랑을 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좋게' 헤어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말이 의미 있다고 본다.  

 

p.35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 용기가 있는지도 의문, 남한테 내가 바라는 방식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의문. 둘 다 하려면 얼마나 더 자라야 할까.  

     

p.37  넌 스무 해를 살았니? 어쩌면 똑같은 일 년을 스무 번 산 것은 아니니? 네 스무살이 일 년의 스무 번의 반복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p.38  여러분 대부분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이 살아지도록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삶이 아닙니다. (안소니 신부의 말)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뜨끔한 구절. 남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은 내가 항상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난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살고 있다고 느끼는 때는 언제이지?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도전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에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자아실현을 위해 산다고 한다. 나는 .. 내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 것 같은 순간은, 자연의 냄새(여름냄새, 봄 냄새, 겨울냄새, 비 냄새, 풀 내음 등)를 맡을 때인것 같다.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다면 더 좋고. ...... 내가 느끼는 순간들은 이렇게 작고 보잘것 없는 것 같은데, 이게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진정한 순간들일까. 성취감이나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내가 유유자적하는 사람처럼 같이 보일뿐이다. 그들이 맞고 내가 틀린거?  그건 아니다. 그럼 뭘까. 더 생각해봐야겠다. 살아지는 내가 아니라 살고 있는 내가 되기 위해.

 

p. 38  위녕, 아직 젊은 너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삶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구나. 그 이유는 반복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런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복이 일상이 된다면 삶은 권태로울 것 같다. 물론 그 권태로움 속에서도 조그마한 즐거움은 있겠지만. 삶이 쏜살같이 가지 않고, 천천히 내가 가는 속도로 가게하려면 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 말은 쉽다.    

 

 p.55 '아아 이런 때야'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읽으면서 속으로 '아-아--- 이런 때야---'라고 하게 한 구절.  '아- 아 이런 때야---'가 오면 꼭 소리내어 "아아---- 이런 때야!!"라고 말해야지!!! 그래서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p. 66   우정은 정적이지 않다. 우정은 마치 강물과 같아서 어떤 방향으로건 흐를 때만 의미가 있다. 언제나 발전하고 변화하고 넒어지고 새로운 경험을 흡수해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잉글랜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친구는 결코 배타적인 소유물이 될 수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친구를 나누거나 잃는 일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 해 한 해 살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다. 특정 시기의 특정 경험을 공유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친구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친구'라는 표현에 깜짝 놀랐다. 내 생각과 맞닿아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칫 이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는 정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와 대학생이 되고 나서까지 연락을 하고 잘 지냈지만 그때만큼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마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놓여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왜 너는 연락을 먼저 안하냐며 툴툴댔을 나는, 이제 한결 편안한(?)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게 되었다. 뭐랄까. .  그 친구가 진정 나와 인연이라면 굳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그리고 문득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놓은 듯 하다. 물론 친구도 연락을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점이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뭔가 '특별한'게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친구를 나누거나 잃는 일. 잃은 적은 없지만, 나누는 경험은 해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게 은근 학창 시절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친구를 나누는 일은 어쩌면 친구를 잃는 것 보다 더 마음이 쓰라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다른 친구와 함께 놀아야 하니 말이다. 소위 '쿨함'을 가장하는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도 친구를 나누는 일은 태연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친구로만 남아줄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와 친하게 되면, 그 때의 쓸쓸함이란! (물론 이제는 그다지 연연하지도 않지만. 이 또한 쿨해보이려는 것일 수도..) 학창시절 맘에 드는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온갖 친절을 베풀고, 얘기를 쉼없이 하던걸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애를 써야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 그렇다. .  

     #리뷰 2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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