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하고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마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자신이 끔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러기를 바란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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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가 후키의 볼을 따끔하게 찔렀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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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전히 어린애구나.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서는 곤란해똑똑히 기억해 둬, 세상에 부는 바람에는 동풍도 없고 남풍도 없어, 전부 북풍뿐이야."
- P100

부모의 시신은 거의 다 타 버려서 얼굴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부상과 화상이 잘 드러나 오히려 더 끔찍했다. 어찌된 일인지 손톱 밑에 흙이 꽉 차 있었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매장하기 전에 어떻게든 손톱밑을 깨끗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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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인내상자의 환영이 오코마의 꿈에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꿈에서 오코마는 불단 앞에 앉아 무릎에 인내상자를 올려놓고 있다. 당장이라도 뚜껑을 열 기세다. 그때 아버지 히코이치로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코마, 열어 보면 안 돼. 그걸 열면 이 아버지처럼 지옥에떨어진다. 절대로 열어 보지 마.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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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 루이가 후대에 남긴 중요한 유산으로 파리 시테섬에 있는 생트샤펠Sainte Chapelle이 있다. 이곳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이마에 둘러있던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지은 소성당이다. 원래 이 가시관은 비잔티움제국의 국보였다. 이 성물이 파리에 온 계기는 말썽 많은 4차 십자군전쟁이다. 1204년, 비잔티움제국을 돕겠다며 떠난 십자군이 오히려 이 나라를 일부 정복하고 소위 라틴제국을 세워 50년 넘게 통치했다(1204~1261),
그러던 중 라틴제국 황제 보두앵 2세가 재정이 악화되자 베네치아의 은행가에게 거액을 빌리면서 가시관을 담보로 내놓았다. 이 소식을 접한 성왕 루이는 13만 5,000리브르라는 엄청난 돈을 갚아주고 이 성물을 파리로 가져왔다. 이로써 파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이며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임을 천명하게 됐다.
가시관뿐 아니라 십자가 일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 예수의 입에 물렸던 해면 등을 함께 확보한 성왕 루이는 이 보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왕실 예배당인 생트샤펠을 지었다. 이 건물은 13세기 고딕 건축의 보석으로서, 특히 벽면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구약의 첫 부분부터 신약의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1,100 장면을 표현한 후마지막 부분에 성 유물을 파리로 모셔 오는 루이 국왕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가시관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존하며 특별미사 때 신자들에게 공개했다. 2019년 노트르담 성당에 큰 화재가 났을 때소방관들은 매뉴얼에 따라 가장 먼저 가시관을 구해 가지고 나왔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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