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남편이 금화 세례를 퍼부을 테고 그러면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 P10

원래 돌이었으니 당연히 맥이 느릴 수밖에 없지만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뉘우치는 동시에 귀담아 듣는 것처럼 으으으으음, 하기만 했다.  - P12

"좀 걸으면 한결 나을 것 같아요."
의사는 말했다.
"그러기에는 몸이 너무 약하세요. 그러다 다치기라도하면 제가 부군을 뵐 면목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원래 돌이었어요. 그러니까 걷는 정도로다치진 않아요."
"그만하세요." - P12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내 덕분에 부자가 됐지만 남편은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싫어한다. 첫째로는 여신의능력, 다음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자신이 대리석을 깎아서 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내가 탄생된이후에 사실 탄생된 건 아니지만 달리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 P15

"살아나라, 살아나라, 내 생명, 내 사랑이여.
살아나라."
나는 바로 이 순간, 이슬을 머금은 새끼 사슴처럼눈을 떠 마치 태양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고 경외와 감사가 담긴 탄성을 조그맣게 터뜨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나를 따먹는다. - P19

 그랬으니, 내가 살아 숨쉬기를 바랐을 때, 그는 따먹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지기만을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니어리석지 않은가. 어떻게 내가 인간인 동시에 여전히석상일 수 있을까. 태어난 지 11년밖에 안 된 나도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데. - P26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군."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침대에 눕히고 횃불을 들어 내 목에 남은 벌건 자국과 팔과 가슴에 자주색으로남은 자신의 손자국을 비춰보았다. 멍이 아니라 얼룩이라도 되는 듯이 그걸 문질렀다.
"색이 완벽하네. 이것좀 봐."
그가 말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신처럼 귀한 캔버스는 없어." - P33

"우리, 밖에 다녀올까?"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 얘기하지 말고 나가자."
우리는 옆 마을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다들 우리를알아봤다. 피부가 우유처럼 새하얀 한 쌍이니 눈에 띌수밖에 없었다. - P34

여신이 존재하는지모르겠지만, 존재한다면 저 조각달은 여신이 나를 내려다보며 짓는 미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P39

파도가 우리 입을 향해 출렁거렸다. 바로 지금이에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 P45

둘이서 물속으로 추락하듯 가라앉는 동안 나는게들이 어떤 식으로 하얀 내 어깨를 넘어 그를 먹으러올지를 상상했다. 해저는 모래가 깔려 있어서 베개처럼 푹신했다. 나는 거기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 P46

 피그말리온의 해피엔딩은 몇 가지 혐오스러운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라야 해피엔딩이라는 평가를내릴 수 있다. 착한 여자는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 말고는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발상, 여성의 성적 순결에대한 집착, ‘새하얀‘ 상앗빛 피부가 완벽하다는 통념,
여성의 현실보다 우선시되는 남성의 환상.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할애된 대사는없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되지 않고 그냥 ‘여자‘라고 불린다. 그저 순종적인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였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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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정은 세상과 닿는 단면이 놀랍도록 넓은 작가다. 그 면적이 광활하고 비옥한건 기자로서 살아온 시간과 관련이 깊다. 속고 싶지도 속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기자일 때 방황은 숙명이 된다. 고통을 측량하다가 자주 실패한 자, 취재의 핍진성과 폭력성을 곱씹어온 자가 옮긴 세계는 매끈하지도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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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오후 나 자신의 규칙을 정했다. 어머니와대립각을 세우고, 이따금 보이는 그녀의 친절에 절대 유혹당하지 않고, 중요한 것에 관해서는 절대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머니를 믿지 않기로 했다. 만일 내 삶에서어머니를 뿌리 뽑지 않으면 어머니가 나를 갈가리 찢어버릴 것임을 분명하게 보았다. 나는 올바르게 살 것이고,
의를 지킬 것이고, 무엇보다도 존엄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나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P146

그러나 고전음악 청중이 줄고 또 나이가 들고, 새로운세대 음악가와 음악 프로모터가 위대함이라는 말에서 속물의 냄새가 난다고 느끼기 시작하자 ‘위대하다‘는 말은 냉대를 받게 되었다. 위대함은 고급문화에 적용될 때 점점가부장제나 계급이라는 관념과 결부되어, 이 말을 피하는것이 수백 년에 걸친 위계와 인종차별적 배제에 대한 필수적인 속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 말은 쉽게 대중문화로 이주했는데, [롤링스톤즈」 같은 잡지에서 아무런부끄러움 없이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을 선정했으며, 위대함이라는 낡은 개념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거나 오프라의 최애" 같은 위장된 형태로 돌아왔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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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는 바흐의 작품들의 상당한 부분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위대한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과 [오르간을위한 파사칼리아 (단조)는 변주곡 형식의 기념비적 활용일 뿐 아니라 "유사하게 반복되는 화성적 기초"에 바탕을두고 있다. 바흐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가의 솜씨를 발휘했던 다성 푸가 fugue 또한 고도로 구조화된 모티프 morif변주의 활용으로, 개별 성부는 화성적 또는 극적 효과를위해 필요에 따라 원래의 선율을 바꾸고, 박자를 압축하거나 늘이고, 핵심 악상을 조각냈다가 다시 합친다.  - P63

이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상실 후에 찾아오는 어떤 것,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아는 데서 오는 혼란이라는 고무줄 같은감각을 희미하게 알려주었다.  - P66

세 음표를 올라가다가 여섯 음표 내려가는 부드러운 선율, 한 번의 가벼운 호흡 뒤의 긴 한숨.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단순해 보였다. 순수하고 어려 보였다. 어린 시절 가족실에 있던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습을 할 때는 어머니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했다. 어머니는 기분이 나쁠 때는 실수를 찾아내며 내가 엉성하게 하거나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무시한다는 증거를모았다. 분노에 찬 상태에서는 나와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달려와 내가 일부러 그런다고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를 달래거나 변명을 하려 했다. 물론 그것은 내가 화가 나지 않았을 때이고, 나 또한 화가 났을 때는 싸웠다. 이런 싸움의결과는 그녀에게 달려 있었고 늘 둘 중의 하나로 흘러갔다. 어머니는 내 목과 팔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다나를 내 방으로 보냈다.  - P70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은 가장기본적인 것, 매력과 부드러움이 넘치는 익숙한 고전음악과 간단한 곡들로 축소되었다. 내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악구를 습득하거나 예술적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을 근육의힘으로 통과해나가려고 노력하면 그녀는 불안해했다.  - P70

이제는 그 목소리의 느낌이 완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정신은 충실한 개처럼 잘 훈련되어 있어, 어머니가 특별히 좋아했던 방향으로 음악이 아름다워지면 나는지금도 더 부드럽게 치면서 보상을 기대한다. "그거 좋구나, 플립." - P70

그것은 작곡가와 연주자와 감상자를 완벽한 원 안에 함께 엮는, 노련한 예술가의 뛰어난 능력을 젊은 음악가의 활력, 그리고 이상적인 청자의교양과 결합하는 매혹적인 일화다. 작곡가는 연주자를 갈망하고, 연주자는 청자를 갈망하고, 청자는 음악이 바로자신을 위해 연주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 P73

나는 글을 읽기 전에 피아노를 칠 수 있었으니까 네살이나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음악은 언어처럼 무의식적으로 고통 없이 내 삶에 들어왔다. 틀림없이 누나들이집에서 몇 가지를 가르쳤겠지만 기본적인 것은 마이판위에게서 배웠다. 그럼에도 뭘 배웠다거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마이판위의집으로 갔고, 노래하고 건반을 두드리고 웃음을 터뜨리며즐겁게 30분을 보낸 기억뿐이다.  - P79

그 어린 시절 동안 어머니는 자신이 모성의 의무라고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했으며 거기에는 자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도 포함되었다. 큰 딸들에게는 바이올린을주고 직접 가르쳤는데, 그것은 실수였다. 그녀는 딸들과함께 연주하면서 좌절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부주의하고서툴다고 야단을 쳤다.  - P79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아니?" 내가피아노를 너무 크게 치자 그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모른다고 자백했다. "허시 바 두 개야." 즉 약 90그램이라는 뜻이다. 한번은 운 좋게 캔디 바 두 개를 얻었을 때,
그것들을 건반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로 건반이 가라앉으면서 조용히 현이 울리는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캔디 바 두개의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샬롯의 말이 옳은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연주를 하려고 할 때면 지금도 "허시 바 두 개"라고 꾸짖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 P87

그가 실용적인 건반 조언서에서 사용한 비유는 잔혹할 정도였다. "손가락은 말을 안 듣는 작은 생물같아 고삐를 잘 죄고 있지 않으면 약간 유연해지자마자 길들이지 않은 망아지처럼 달아나는 경향이 있다." - P92

새로운 교사를 만나면 그 전 교사가 손의 위치에서부터 연습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엉터리로 가르쳤다는 말을 듣는 것이 드문일이 아니었다. 교사를 바꾸는 것은 종종 종교를 바꾸는일과 약간 비슷하게 느껴졌다.  - P97

우리에게 있는 모든 그림에서 바흐는 약간 뚱뚱한 남자다. 지금 전해지는 그의 가정과 가족 이야기 대부분에는 활기, 음악, 대화, 주흥이 넘치며 시끌벅적하다. 그러나우리는 그의 젊은 시절의 두 일화로부터 그가 적어도 가끔은 굶주렸고, 음악이 간절했으며, 아마도 이 두 가지가어떤 식으로인가 그의 마음에서 결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버려진 청어에서 감추어진 돈을 발견 - P109

나는 1악장의 제시를 난도질했다. 클라라는 내가 끝을 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냥 일어서더니 말했다. "그만 됐다." 어머니는 굴욕감을 느꼈다.
나는 수치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좋은 식사나 외고모할머니가 정열과 재능을 쏟아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스튜디오 방문 등이 포함된 나머지 시간에 어떤 즐거움도느낄 수 없었다. 오후 늦게 떠날 때 클라라는 누나와 나와함께 사진을 찍는 데 동의하고는 우리를 바싹 끌어안으며우리가 자신의 육중한 몸을 감추어주면 그렇게 뚱뚱하게나오지 않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그녀는 다시 경쾌하고시니컬해졌지만 나는 나의 실패에만 빠져 있었고, 그 느낌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차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도대체 왜 그 모양이니?"
- P122

다음 레슨이나 리사이틀 때 우리를 벌할 분노의 여신들을 달래기 위한 연습이었다. 한때 우리 조상이 아
‘침에 반드시 해가 뜨도록, 계절이 순서대로 이어지도록 어면 제의를 거행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연습을 했다. 그러나기도의 효과는 변덕스러웠다. 우리는 피아노에게로 나아가 스승에게 절을 하고 동료 학생들의 악의에 찬 감시를받으며 흑단과 상아의 신성한 기하학 위에 손가락을 얹고그 순간에 자신이 의무적으로 바쳐지는 제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 P124

그녀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마음의 눈으로어려운 악절을 보라고 말했다. 오른손이 음표를 연주한다.
고 상상해보라. 모든 근육을 상상해보라, 한 건반에서 다음 건반으로 손가락을 뻗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아주 천천히 해서 모든 음이 그 전 음과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며 오직 악보에 대한 완전히 의식적인 기억의 허락을 받아야만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에 오는 음을 마음속으로 연주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들어라. 두 손을 허벅지에모으고 소리 없이 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한 악절에서한 손이 연주하는 부분을 완전히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다음에 왼손을 똑같이 힘겨운 내적 방식으로 상상하고,
그런 다음 오른손의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왼손이 오른손을 소리 없이 반주한다고 상상하고 그런 다음 두 손을바꾸어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 P128

그러나 음악은 우리에게 더 집요하게 요구한다. 음악은 대상이나 물건, 우리가 소유하거나 내줄 수 있는 어떤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이며, 그것을 우리 삶에서 잘라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부분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음악으로 돌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음악이 희망과또 우리가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끈질김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인생 초반부에 많은 시간 연주했던 바이올린은 끝까지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비록 오래전에 선반으로 은퇴하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바이올린을 생각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가끔 화도 났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머니 세계의 영원한 붙박이였다. 나에게는 피아노가 그랬다. 내가 지금 몇 년째 씨름하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관계의 중심 장소, 음악과 내가매달, 매년 옛사랑에 새로 불을 지피기 위해 다시 만나는장소가 되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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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훌륭한 여행 음악이기도 하다. 바흐의 CD 한두 장이 다른 음악 몇 시간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충족감을 주며, 그 어떤 음악보다 감정적으로 효율적이어서 빈 곳을 채우거나 덧붙일 필요가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바흐는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고있든, 일하든 놀든, 잘나가든 간신히 버티는 무기력하게 뒹굴든 모든 분위기에 맞는다. 그의 음악은 해변에서 나를즐겁게 해주는 만큼이나 11월 말의 잿빛 사막 풍경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준다. 그곳에 있는 동안 베토벤, 브람스, 바그녀를 틀지 않을 이유는 백가지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바흐를 물리칠 이유는 한 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 P11

심야 뉴스의 어리석음, 날씨 예보 아나운서의 활기참, 살인과 교통과 퍼레이드를 분석하는 예쁜 앵커우먼의 광적인 농담이 어머니의 머리 위 벽에 반사되어어지러운 파란 형체와 관념들로 증류되었다. 불과 몇 미터떨어져 있는 널찍한 평면 스크린을 정면으로 보다 보면, 무한히 멀고 의미 없어 보이는 세계로 들어가는 그 관문을보면, 현실과 묶인 끈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 P12

어머니가 겁에 질린 명료한 정신에서 혼란을 지나 마침내 침묵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던 마지막 며칠 동안, 바흐는 내가 들을 수 있던 유일한 음악이었다. 하찮아 보이거나 무미해 보이거나 삶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음악. - P12

어린 시절 처음 음악을 발견했을 때 나는 종종 듣게 되는위대한 작곡가들에 관한 신화와 동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을 표현하려고 「레퀴엠 Requiem」을 작곡했다는 이야기, 로시니는 아주 게으르면서도 신동이었기 때문에 침대에서 몸을 굴려바닥에 떨어진 악보를 집어 드는 게 귀찮아 아예 새로운서곡을 쓰는 쪽을 택했다는 이야기, 하이든은 청중 가운데 지루해서 조는 속물을 깨우기 위해 「놀람교향곡 SurpriseSymphony」에서 악기들이 느닷없이 요란하게 포르티시모로연주하게 했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음악을 더 극적으로 들리게 했으며, 음악에 대한 경험을 역사라는 더 넓은 감각과 연결해주었다.  - P17

 바흐의음악이 슬픈 것은 바흐가 슬펐기 때문이라는 것. - P18

특히 우리가 그 음악에 감정적으로 취약할 때는 우리는 음악이 이야기를 해주기를, 단순히 청각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삶에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를 기쁘게만 하는 음악은 거리를 두고 검토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음악이어떤 깊고 압도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때는 학자적 양심에만 복종하기가 어렵다.  - P18

 여러 가지를 물어보다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지인과도 진짜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깨달았다. 부모를 잃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모두 유년의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 속으로 들어가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다시 아이가 된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한 시기에 갑자기 이 한 가지 엄청나고 충격적인 일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놀랄 만큼 새롭다.  - P20

 이상적으로 보자면 부모의 죽음은 우리가 죽는 것을 배우도록 돕는다. 가끔은 명시적으로 통찰을 주고 자신들의 죽음 때문에 슬퍼할 우리를 위로하여,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 올 때 견디기 쉬워질 것이다. - P23

하지만 어머니는 불행했고, 불행한 채로 죽었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의 삶이 낭비되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으며, 내가 어릴 때는 내가 피아노를 칠 때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는데,
이것은 어머니가 버린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고,
말년에는 이 악기를 언급하기만 해도 혐오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 P25

너의 외할아버지가실제로 딸의 꿈을 짓밟았다고 말했다. 나는 외할아버지를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나에게 그는 주로 어머니가 구축한 신화적 인물이었지만, 마치 그가 초대도 받지 않고 불쑥 방에 들어온 것처럼 갑자기 그에게 불같은 증오를 느꼈다. 그 뒤로 어머니의 삶은 결혼과 가족 돌보기에 바쳐졌는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사는 여자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십대가 되어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었을 무렵에도 어머니는 원한과 분노를 품은 채 더럽지도 않은 집을청소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 P25

음악은 기껏해야 삶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뿐이다. 우리가 음악의 힘을 위로와 혼동한다면 그것은 엉성한 사고 때문이다.  - P27

바흐는 「샤콘]에서 어떤 위로도 목표로 삼지 않는다.
형식은 아치 형태로 완성되어야 하며 음악은 단조로 돌아가고 화성은 더 엉기고 텍스처terture는 더 복잡해진다.
후퇴는 없고 음악적 목적은 더 강화될 뿐이다. 음악은 어떤 화성적 꾸밈도 없이 단음 레로 끝난다.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 음악의 많은 선율은 암묵적이든 노골적이든 최종의 통일, 즉 하나의 음에 자리를 내주고, 이음은 나무 위에 팽팽하게 당겨진 33센티미터의 양 창자 또는 금속선 위에서 진동한다. - P29

피아노는 절대 어머니의 악기가 아니었다. 그 덕에 나는 숨 쉴 여지가좀 생겨 피아노를 배우고 사랑하게 되었다. 십대가 되었을때 내 피아노 솜씨는 어머니의 바이올린 솜씨보다 나아졌고 음악은 그녀의 삶보다 내 삶을 훨씬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음악을 하도록 격려했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서 나와 함께 연주하는 것을 중단했고, 그것이나는 늘 슬펐다. 결국 어머니 또한 바이올린을 치워버렸다.
연주를 요청하면 어머니는 조용한 분노의 눈으로 자신의왼손을 보았다. 마치 손이 그것만의 어떤 의지로 알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키는 바람에 자신이 음악 연주와 멀어지게되기라도 한 것처럼. - P36

나이가 드는 것에 관해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갖추면우리는 꿈을 버리게 된다.  - P40

질 수밖에 없는 죽음과의 싸움에서는 우아하게 물러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음악은 우리 나이가 어떻든 터무니없어 보이는 끈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으며, 인생에서 끈기는 열쇠이기도 하다.  - P42

어머니가 죽은 그해에 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거의 포기했다. 음악을 들었고 콘서트에 갔고 새 녹음이 나오면 찾아 들었지만 몇 달 동안 피아노는 치지 않았다. 단지 바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인생‘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 P51

바흐를 공부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는 것과약간 비슷하다. 예술적 유산의 깊이와 폭에 비할 때 믿을만한 전기적 증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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