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훈련을 받고 그만치 세뇌를 당하고도 그때까지 다섯 번이나 죽고도, 다섯 번이나 죽고 여전히 살아 있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고개를 든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 P81

나샤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좀 힘들어. 그리고 네가 죽을 때마다 매번 더 힘들어져 지난밤에는 정말 괴로웠어. 식스가 죽었을 때보다도, 파이브한테 일이 생겼을 때보다도 더힘들었어. 종료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나는 네가 마음을 바꾸길 바라면서 계속 통신 가능한 거리에서 비행하고 있었어. 결국 포기하고 돔 격납고로 돌아온 다음에도 조종석에 앉아서 한 시간을 어린아이처럼 울었어. 하지만 지금 네가 여기에 있고, 네 이야기처럼 내가 만약 어젯밤에 너를 구했다면 지금의 너는 여기 없을 거야....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 불멸이란 참 이해하기가 어려워, 그렇지?"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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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죽음의 경럼에서 괜챦은 점이 있다면 내가 진짜로 어떤 면에서는 빌어먹을 불멸이라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미키1이 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로 살았던 삶을 기억한다. 뭐, 그의 마지막 몇 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그러니까 나는, 우주선을 타고 이동하던 중 선체가 파손되는 사고가 난 이후 죽었다. 몇 시간 후 미키2가 깨어났고, 그는 당연히 자신이 미드가르드에서 태어난 서른한 살 남자라고 생각했다. 누가 알겠는가. 진짜 그럴 수도 있다. 미키2의 눈으로세상을 보는 진짜 미키 반스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한들 알아차릴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이 동굴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호흡기를 뗀다면 나는 내일 아침 미키8으로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의심이 든다.
나샤와 베르토는 차이를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성 너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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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정오였다. 나지르는 서베르의 첫 손님이었다. 찬바람이 여전히 거리를 휩쓸며 가게의 차양막을 뒤흔들었다. 근처 화장실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서베르의 얼굴까지 날아왔다. 법원 뒷길에 있는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몇몇 청원서 대필업자들은 비닐로 책상을 덮고 서둘러 기도하러 갔다. 서베르는 꽤 오래 사원에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게 불확실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신조차도. 그는 비닐을 책상위로 당겨서 펴고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1년 전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지고 나서 법원 주위로 높이 세워진 콘크리트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 당국은 카불의 옛 모습 일부를 그 벽에 그려 놓았다. 전후 재건된 다룰 아만Dural Aman 궁전과 아프가니스탄 병사에게 꽃을 주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벽 밑은 소변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일부는 아직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3. 개의 탓이 아니다
마수마 카우사리 - P37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그녀는 2층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회색 차가 건물 계단 근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던 운전기사가 그녀를 발견하고 경적을 멈췄다. 상가sunga는 서둘러 핸드백을 메고 방을 나섰다. 복도에서 그녀가 외쳤다. "어머니 다녀올게요. 차가 왔어요."

5. 야간근무
샤리파 퍼순 - P54

상가는 국영 방송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낮에는 카불의 대학생, 밤에는 방송국 앵커였다. 그녀는 곧장 건물 왼쪽 1층 복도 끝에 있는 분장실로 향했다. 분장 담당 마리얌Maryam이 이미 분장실에 있었다. 마리얌은 갈색 곱슬머리에 키가 컸는데, 안경을 머리위에 걸치고 안경줄을 고리 모양으로 목뒤에 늘어뜨렸다. 그녀는 중앙 거울 앞에 서서 분주하게 다른 뉴스 앵커의 머리에서 헤어롤을 빼고 있었다.
상가는 세면대에서 따뜻한 물로 세수한 뒤 거울을 보며 종이 타월로 얼굴을 닦았다. 마리얌이 머리를 손질해 주던 여자에게 물었다. "분장도 해 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하실래요?" 7시 뉴스 앵커가 말했다. "지금은 상가의 머리를 손질해야 하잖아요. 분장은 그냥 제가 할게요."
상가가 7시 뉴스 앵커 옆에 앉자 마리얌은 상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상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복장을 점검했다. "얌전하군요. 좋아요." 상가는 이런 말을 듣는 게 내키지 않았다. 자신은 늘 얌전하고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5. 야간근무
샤리파 퍼순 - P55

상가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중앙에 있는 긴 책상으로 갔다. 동료는 그녀의 노트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일단 작성된 노트를 받아 들었다. 씽- 휘파람 같은 소리와 함께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상가는 밑줄을 그으며 대본을 읽었다. 이번 로켓탄은 방송국 본부 뒤편에 있는 신축건물에 떨어졌다. 강한 폭발 때문에 보도국 창문도 산산조각 났고 칼바람이 들이쳤다. 아직 가을이었지만 바람은 매서웠다. 누가문을 열고 소리쳤다. "당장 아래층으로 가세요! 폭탄이 더 떨어질수 있어요!"
모두 겁에 질려 자리를 떠났다. 직원들은 바삐 떠나면서도 펜과 종이를 챙겼지만, 상가는 노트를 책상에 두고 왔다. 누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다 괜찮을 테니까." 상가도 입을 열었다. "많은 폭탄을 봤어요. 폭탄은 매일 떨어지니까. 로켓탄은 무섭지 않아요. 신이 두려울 따름이죠." 그녀가 말을 끝맺기 무섭게 또 다른 폭탄이 근처 행정 건물에 떨어졌다. 보도국 창문으로 그 건물의 옥상이 내려다보였다. 상가가 보도국 출구에 도착하자마자 불과 몇 초 전까지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파편이 날아와 박혔다.

5. 야간근무
샤리파 퍼순 - P58

 첫 번째 로터리를 돌기도 전에 로켓단이차 앞에 떨어졌다. 상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사방을가득 메운 공포와 혼돈 속에서 그녀는 성인 남녀와 어린아이의 비명을 들었다. 집에 안전하게 도착하기만 하면 이번에는 기필코뉴스 앵커를 그만두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이전에도 그녀는 몇번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이 없는삶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이 없는 삶은 죽음만큼 끔찍했다.
두 번째 로터리 부근에 또 다른 로켓탄이 떨어졌다. 폭탄은그들의 차를 지나쳐 로터리의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기사와 상가는 몸을 숙였다. 겁에 질려 당황한 나머지 기사는 거의 차를 제어하지 못했다.
차는 간신히 그녀가 사는 마크로얀으로 진입했다. 다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소리쳤지만 달려가서 그들을 돕는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상가는 밤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파트로뛰어 올라가서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의 귀가를 기다리며 문 뒤에 서 있던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었다.
어머니의 눈에 참았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머니는 상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상가는 가머이의 침대로 다가갔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5. 야간근무
샤리파 퍼순 - P60

이튿날 나는 상가를 보았다. 그녀는 방송국 건물에 도착해회색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카키색 재킷에 검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핸드백과 책 몇 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핸드백을 고쳐 멘뒤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에 걸쳤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그녀는 전날 입은 피해의 흔적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신중하고 차분하게 현장을 관찰하고 나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5. 야간근무
샤리파 퍼순 - P62

집은 다시 텅 비었다. 텅 빈 집에는 나와 내 고독밖에 없다.
집이 비면 알 수 없는 욕망의 세계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짓누른다. 집이 비면 나는 달라진다. 아니, 어쩌면 그냥 마음 깊이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집이 비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집이 비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 다시 집이 비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내 고독과 함께 독서를 하려고 한다. 책장 사이로 시선을 옮기며 행간의 내용에 집중하지만 잘되진 않는다. 집중하기에 나는 너무 자유롭다.
불현듯 몸이 간지럽다. 뭔가가 몸 이곳저곳을 기어다니며 나를 간지럽힌다. 집이 반나절 넘게 빈다는 사실에 나는 슬며시 미소 짓는다. 그와 동시에 이런저런 몸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숨이 벅차오른다. 회색 벽이 생동감 있게 물들고, 집의 냄새도 바뀐다. 

7. 나에게는 날개가 없다
바를 하이다리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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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죽을지 몰라. 죽으면 어떡하지? 신이시여, 제 몸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죠?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과연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무도 제 죽음을 모른다면 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겁니다. 불쌍한 몸, 불쌍한 내몸뚱이.

1. 동반자
마리암 마흐주바 - P20

빗물이 뽕잎을 천천히 씻어 내린다. 흰 개는 눈을 감고 그녀의 문밖에 앉아 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그녀는 빗속으로 연기를 내뿜는다.

1.동반자
마리암 마흐주바 - P22

옆방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시어머니와 시누가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하다. 샤리파 sharith와 너자닌Nazanin이 어디 있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임신 8개월이 된지금까지 나는 정기 검진조차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들일 것같지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두렵다. 부드러운 목소리가들린다. 누구지? 셋째 딸 버스미나 Basmeena다. 버스미나는 날 위해 샐러드 접시를 준비한다. 고사리손이 너무 사랑스럽다.
시금치와 고기 요리는 쉽고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다. 나는두 요리를 금세 마친다. 그런데 이 밥솥을 어떻게 혼자 들지 막막하다. 지난번 마카이Makai 아주머니는 쩔쩔매며 물 양동이를 드는 나를 보고 알아서 일을 도와주셨다. 지금 이 밥솥은 그 양동이보다 훨씬 크다.

2. 여덟 번째 딸
프리쉬타 가니 - P24

때마침 물라ulian(이슬람교 성직자)가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린다. 어쩌면 누가방에서 나와 밥솥 드는 것을 도와줄지 모른다. 사람들이 나오기전에 나는 금식을 멈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집어 먹기 직전에 큰시누가 들어와 다그친다. ‘잘하는 짓이다. 손님들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사흘 굶은 고양이처럼 냄비를 핥고 있네!"
한 입 겨우 밀어넣은 음식이 목구멍에 걸렸다. 겁에 질려 음식이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나는 얼른 접시를 치운다. 더이상뭘 먹을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할 말은 많지만 나는 조용히 서서입을 닫는다. 친정어머니는 늘 시어머니에게 불손하게 굴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알았어요. 어머니 시누가 부엌에서 나가자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큰 솥을 씻어 스토브 위에 올리고 불을 키운다. 내 삶이 꼭 솥 안에서 끓고 있는 물 같다. 행복은 수증기처럼 끓어 증발해 버리곤 한다. 쌀이 부드럽게 잘 익었다. 창밖을 내다봐도 솥을 내리도록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들면 된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2. 여덟 번째 딸
프리쉬타 가니 - P25

심장이 빠르게 뛴다. 이번에는 제발 아들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신이 이번에는 내 기도를 들어주셨겠지만, 또 딸이면 어떡하지. 내 삶은 지옥이 될 것이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뛴다. 내 기도가 이루어졌기를 이번에는 정말 아들을 낳고 싶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아들을 낳았다면 당신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베풀고 나누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금식하고 성지순례도 하겠습니다. - P27

여자들이 부엌으로 들어온다. 누가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불쌍한 사람 같으니, 이 여자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잖아요." 누가 큰소리로 맞장구친다. "정말안됐지. 운이 안 좋았어. 이번이 여덟 번째인데, 또 딸이래."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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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나 연착을 해!" 첫 번째 친위 대원이 씩씩대더니,
내 갈비뼈 끝에 대고 있던 총구를 더 깊이 쑤셔 넣었다. 지금 엄습해 오는 느낌은 지난 3개월 전 죽으려고 시도했던 그때와는 달랐다.
그날 저녁, 차표를 사려고 고개 숙여 매표소 안을 들여다보니 빨강 머리 여직원이 앉아 있었다.
"차표 한장 주세요."
여직원이 나를 알아보고 말했다. - P42

 그때 대위의 눈길이 자기처럼 흉터가 있는 내 손목에 멈줬다. 손잡이를 잡은 팔의 옷소매가 흘러 내려와 있었다. 대위는 무슨 책이라도 읽듯이 내 흉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벌써 더 많은 걸 눈치챘거나, 아니면 모든 걸 다른 관점에서 보고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눈이 돌멩이 두 조각 같았다. 이제 기관차 사람들 모두가 내 손목을 보고 있었다. 대위가 들고 있던 작은 채찍으로 내 다른 쪽 옷소매를 들어 올려, 그쪽 흉터도 봤다.
"동지!"
대위가 부르며 신호를 보내자, 엄중히 감시받는 병력수송 열차가 속도를 줄였다. 나를 겨누던 두 개의 총구가 치워졌다. 이제 나는 잘생긴 친위 대원 두 명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아래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격자형 강철 바닥이 기관차가 선로를 따라 달려가는 대로 흔들렸다. 대위가 말했다.
"가라!"
"고맙습니다." - P46

우리 바로 옆집에 살던 카라스코바부인은 일찍이 1940년에 독일군에게 잡혀갔다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풀려났다. 그녀는 4년 내내 페치카르나에 있는 나치 사령부에 감금되어 있있다. 그곳에서 한 일은 사형 집행이 끝나면 바닥에 고인 피를 닦는 일이었다.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피를 닦았다. 그곳 최고 집행관은 그녀를 잘 대해주었다. 가끔 훈제 햄을 갖다주면서 <매혹적인 검은 눈의 아가씨여, 왜 울고 있나요?>라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고, 항상 ‘제발, 부탁해요! 미안하지만‘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난데없이 그녀를 풀어주었고, 사과한다는 내용의 공식 서한까지 보냈다. 하지만 이미 카라스코바 부인은 그동안에 겪었던 일로 정신이 온전하지않았다. 독일 노동청은 그녀에게 기관차고에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곳에서 그녀가 하는 일은 기름통을 들고 기관차 베어링에 기름질하는 것이었다. - P48

나는 다시 승강장으로 나가 전선에서 오는 병원 열차에 통과 신호를 보냈다. 병원으로 개조된 특급 차량 열차였다. 이병원 열차를 보면서 뭔가 아주 낯설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눈빛, 바로 부상병들의 눈빛이었다. 전선에서 경험한 고통, 자신들이 받았고 또 자신들 역시 남에게 주었을 그 고통이 이들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나 보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가던 독일 병사들보다 이 독일 부상병들에게 좀 더 마음이 갔다.
이들 모두 단조롭기만 한 시골 풍경을 어린아이처럼 열심히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 P76

그는 승강장으로 나가 손짓으로 궤도차를 불렀다. 즈테니치카도 궤도차에 올라 운수국장 옆에 앉았다. 나는 궤도차를 신고한 다음 출발 신호를 보냈다. 그때 조사관 제드니체크가말했다.
"체코인들이 어떤 인간인지들 아나? 실실 웃어대는 징글징글한 족속이야!"
궤도차가 5번 선로에 서 있는 폭격 맞은 기차 옆을 지나 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사관 제드니체크는 부서진 열차지붕과 기관단총에 뚫린 구멍들을 노려보았다. 역장은 2층으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바닥에 쾅, 쾅 내리쳤다. 1층역무실 천장에서 석회 가루가 떨어졌다. 그러더니 부엌 환기통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 P78

길고 긴 구름이 달을 스쳐 지나갔다.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멀리서 차광유리를 댄 기관차 불빛이 보였다. 달이 미끄러지듯이 눈구름을 헤치고 나오자 차가운 밤에 눈 덮인 들판이 빛났다. 얼어붙은 눈의 입자 하나하나에 무지갯빛 시계 초침이 달린 듯, 사방에서 째깍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신호기 기둥을 기어올랐다. 다시 구름이 달을 가렸고, 하루살이가 날듯 가볍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타고 앉았다. 기관차가 역으로 들어오며 요란스럽게 기적을 울렸다. 진입 신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호기 가로대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내 손도같이 올라갔다. 신호등이 빨강에서 초록으로 바뀌었다. 진입위치에 가 있는 신호기 가로대는 나를 숨겨주기에 충분했다.
나보다 컸다. - P116

나는 의식을 잃어버리기 직전, 그 마지막 순간까지 죽은 병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듣지도 못하는 그의 귀에 대고, 특급 우편 열차장이 드레스덴에서 싣고 왔던 비참한 독일인들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집구석에 궁둥이 붙이고 얌전히 앉아 있었어야지!"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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