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괜찮다. 오래가지 않있다.
남자의 말대로 올여름은 지독할 것이다. 벌써부터 맹위를 떨치는 더위 얘기가 아니다. 남편과 나는 여름 내내 함게 지내야 한다. 이수가 집에 머무는 시간도 늘 것이다. 우리는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고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조절하며 소소하게 서로를 배척할 것이다.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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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활기를 띠었다. 오랜만에 이수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세상에는 어디에나 잘못을 함께 고쳐나가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남편 맞은편에 앉은 이수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밥만 욱여넣었다. 남편은 언제나 이수에게 교훈을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수는 스스로 배웠다.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생각하고 의미를 헤아리고 판단할 줄 알았다이수를 어리다 여겼고 나이보다 어린 줄 알았지만, 아니다.
남편은 대꾸 없는 이수를 서운한 듯 쳐다보지만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그는 앞으로 이수에게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수가 얼마 전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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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룻바닥이 지그시 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소진은 만지던 물건에서 손을 떼고 얼른 문 뒤쪽 벽에 기댔다. 빈집이라는 사실도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다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간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책상 가운데 서랍에 손을 댔다. 서랍은 늘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매번 단단히 잠긴 서랍을 흔들어보았다. 소진이 흔들면 서랍에 든 것이 덩달아 조금 움직였다. 그곳은 오직 유준의 아버지만이, 소도시에서 몇 개 안 되는 공장을 운영하고 커다란 집을 건사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소진은 재빨리 유준의 방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뛰는 가운데 서랍에 든 것이 무엇일지 상상했다. 소진이 형제들에게 들키거나 빼앗기기 싫어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는 일기장이나 선물로 받은 열쇠도리, 싸구려 천지갑 같은 것과는 영 다른  물건이 들어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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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래요. 자, 맘대로 해보시든가. 집 안 어디든지 한번 찾아보시오. 만약 할머니가 나온다면 그건 내가 한 짓이 틀림없을 테니까. 게다가어쩌면 옆집이 남겨두었다는 그 돈도 나올지 모르겠군, 찢어지게 가난하다 보면 사람은 거치적거리는 자기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돈도 슬쩍하게 된다는 뭐 그런 말 있잖소.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파보는 게 어떻겠소?"
순경은,
"그러게요. 그럼 그렇게 할까요?"
하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서 순찰차와 소형 트럭이 뒷골목에 멈췄고 쥐색 작업복을 입은 경찰
대여섯 명이 삽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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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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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이기도 한 로버트 펜 워런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1962)라는 글에서 이런 대답을 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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