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이어서 카페에 남아 있는 손님은 노인 하나뿐이었다. 그는 전등 빛을 받은 나뭇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곳에 앉아 있었다. 그는 거리에 가라앉는 날리던 먼지가 이슬에 가라앉는 이런 늦은 시간에 거기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귀가 먹었지만, 낮과는 다른 밤의 고요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카페 안의 웨이터 둘은 노인이 조금 취했다는 걸 감지하고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좋은 손님이긴 했지만 많이 취한날에는 돈을 안 내고 가버리기 때문이었다.
"지난주에 저 사람이 자살을 시도했대. "웨이터 하나가 말했다.
"왜요?"
‘"절망에 빠진 거지"
"뭐에 절망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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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화도 잘 내지만 잘 웃는 사람이어서 아버지의 찾은 실직에도 개의치 않고 쾌활함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오보에도 잘 불고 요리도하고 나도 잘 돌보았다. 아버지가 차린 저녁 식탁에 마주앉을 때면 두 사람은 사소한 얘기를 끊임없이 나누었고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웃었고, 웃고 나서는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이유도 모르고 나도 함께 웃었다. 두 사람은 나를 웃기려고 그랬다.
는 듯 만족스러워했고, 나는 행복감을 느끼며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의 충만감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결코 웃지 않게 된 후에도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웃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정한 공기가 어째서 희박해졌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외할아버지의 간병으로 인한 갈등이나 혹은그보다 오래 지속되어온 두 사람의 성향 차이, 불균형한경제적 부담 따위가 원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고작 내가 내린 결론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공기가 소멸하면 저절로 연소하는 촛불처럼 그저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라고.

.....다음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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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에서 본 조형물이 떠오른다. 남편과 나는 방학이면함께 여행을 다니고 항상 미술관에 들른다. 조형물은 정면
에서 보면 철사와 고철류를 아무렇게나 길쭉하게 뭉쳐놓은 덩어리이지만 벽에 비친 그림자는 곱슬머리 남자의 옆모습이다. 남편은 그 조형물을 잠자코 응시하더니, 쓰레기를 뭉쳐두니 사람이 되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어떤 얼굴은 어둠 속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종종 문자메시지에서 본 욕설이 떠오른다. 담당자와 통화할 때 억울한 표정을 짓는 남편을 볼 때, 길에서 어떤 남자가 툭 부딪히고도 사과하지 않고 가버릴 때, 계산하려고 내려놓은 물건을 슈퍼마켓 계산원이 무심코 바닥에 떨어드림 때, 그럴 때면 욕을 우겨넣기 위해 입술을 깨무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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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대해 잘 알 만큼 오래 살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이제는 남편이 상대와 화제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나를 툭 치고 가는 임시교사에게 분노를 느끼는 인간이 될 줄 몰랐다.
언젠가 남편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본 적 있다. 남편이 마당의 잡초를 거칠게 뽑아대는 동안 휴대전화는 거실에무심히 놓여 있었다. 오래전 것은 지워졌고 최근에 보낸 문자메시지가 몇 개 남아 있었다. 천박하고 속된 욕설로 가득 찬 문자였다. 나는 여러 번 그 문자를 읽었다. 남편은 임시교사에게 겁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고, 나는 겁을 먹었다.
나는 결코 남편에게 임시교사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알아차린 것 같다. 어딘가 달라진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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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특별한 일보다 우리가 더 많이 겪은 것은 의미없이 흘러간 지루한 시간들이다. 우리는 기억에 남지 않을 하루하루를 함께 보냈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순간만 인생인 것은 아니니까. 봄날의 지열처럼 미지근한 나날이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인생에 가깝다.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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