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후‘는 민간에서 부르는 상하이의 별칭이다.
1932년 1·28 ‘상하이 사면‘ 이후 중일 간 ‘상하이 정전협정‘을 맺음으로써 일본은 상하이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게 되었을 뿐아니라 해병대 사령부를 홍커우 일본 조계지 내에 설치하였고 중국군은 시 중심에서 전부 물러나게 되었다.
- P10

양국이 이처럼생사의 결투를벌이는 가운데,
한 가지 놀라운사실은 양국 모두선전포고를 하지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줄곧
‘지나사변‘으로 이 시기 전쟁을 명명하였다.
- P68

중국은 국제 여론,
무기 거래, 중립국조계지 및 자국 교민등 여러 요인을 고려하여 1941년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대일본 선전포고를 하였다.
사실상 양국 간 교전은1931년부터 시작되었다.
- P68

일본군은 교전시 국제 공약을 어기고 독가스탄을 사용하였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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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E. 홉킨스 1859~1930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변적 글쓰기의 역사는 19세기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다음과 같은 작가들에서 시작되었다. 마틴 딜레이니와 대체 역사를 다룬 그의 시리즈 소설 『블레이크 혹은, 아메리카의오두막집he at. The Furs of Americes (1859~1862), 서턴 그릭스의 1899년 유토피아 소설 『국가 내 국가 Impertamin Impering, 찰스 체스트넛의 1899년모음집 『여자 마법사 The Conjure Woman, W. E. B. 뒤보아의 종말을 다루는 이야기 『혜성The Come」(1920) 등, 모두 당대의 인종차별주의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변 소설들의 매력적인 사례들이다. 이 시기, 같은줄기에서 활동했던 또 다른 작가로 폴린 엘리자베스 홉킨스가 있다.
홉킨스의 이름은 21세기 독자들에게 친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학자 리처드 야보로에 따르면 그녀는 "21세기로 들어서는 시점에 가장 생산적이었던 독보적인 흑인 여성 작가" 였다. 야보로는 1900년과 1905년 사이에 홉킨스가 네 편의 장편 소설을 출간했으며, 최소한 7편의단편 소설과 아프리카에 대한 역사적인 소책자, 스무 편 이상의 자전적인 스케치들...... - P92

이디스 워튼 1862~1937

이디스 워튼은 언젠가 좋은 유령 이야기라면 "등줄기를 따라 오싹한 기운이 끼치게 해야 한다고 썼다. 그녀는 이를 초자연적인 이야기의 ‘온도적 특성‘이라 불렀다. 워튼은 이런 유령의 특성에 가장 최적화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젊은 시절그녀는 유령 이야기를 너무너무 무서워해서 어딘가에 유령 책이 있는집에서는 잠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20세기가장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 중 몇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그녀가 바로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썼다고도 한다.
워튼은 1862년 1월 24일 뉴욕 시티에서 이디스 뉴볼드 존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세 아이 중 막내(이자 외동딸)로, 워튼은 폭 넓은 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여자아이들에게는 아직 일반적이지 않았다. - P112

허구의 초자연적인 조사 전문가들과 반발하는 적대적인 존재들은 「튤립 꽃병‘The Port of Tulips,
(1855)에 처음 등장했던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의 캐릭터 해리 에스코트 ‘어스름한 유리 속에서In I Glass Darkly』에 등장한 셰리던 르 파뉴의 오컬트 탐정 닥터 마틴 헤셀리우스, 그리고 물론, 『드라큘라』 (1897)에 나오는 브램 스토커의 뱀파이어 사냥꾼 에이브러햄 반 헬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87년 셜록 홈스의 등장 이후, 조수와 함께하는 과짜 사립탐정이라는 개념은 불가사의한 조사를 다루는 이야기들에도 빠르게 적용되었다. 그 결과 등장한 오컬트 탐정이라는 장르가 인기를누리게 된 것은 독자가 곧 만나게 될 몇몇 여성 작가들 덕이다.
소설 세계 바깥에서 오컬트에 대한 매혹은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19세기 후반에 정점에 도달했다. 점점 더해가던 관심은 심령론 전파 운동의 결과였다. 세기말에 이르면 그 인기도 시들해지지만, 심령론적인 아이디어들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사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이 흥미를 끌었다), 초자연 현상에 대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연구를 시도하는 단체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 P120

기타 소설가들, 헨리 제임스(그의 형제인 윌리엄이 미국심령협회의 설립자였다, 버논 리, 마크 트웨인, 아서 코넌 도일, 마저리 로렌스 등의령협회의 회원이거나 혹은 그들의 연구에 적어도 흥미를 보였다.  - P121

1920년부터 1950년대까지 호러, S. F, 판타지 소설의 매거진들을 통해 자신들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펄프 매거진은 이 소설들이 연재된 목재 펄프 종이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펄프 매거진들은 역시 싸구려 종이로 만들어진 염가 페이퍼백들과 더불어 소설을 더욱 광범위한 독자의 손에 쥐어 주려 했다. 워낙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저렴한 재료의 덧없는 속성이 뜻하는 바는 이 수많은 이야기들이 순전히 무(無)로 분해되어 버리는 종이에 인쇄됐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펄프 매거진들은 출판 발행인을 자주 바꿨고 이런 이동 시에는 누구도 오래된 재고를 보존하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 몇몇 펄프 매거진은 수집가들, 대학 도서관 아카이브, 의회 도서관 등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지만, 산발적인 수집과복구 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잊힌 작가들의 전체적인 경력은 소실되었다. 선집으로 엮인 이야기들은 H. P. 러브크래프트, A. 메릿,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와 같은 당대에 보다 인기 있었던 작가들 주로 남성들에 한정된 경향니 있다. - P160


이 모든 사실은 1980년대 초기에 사변 소설을 쓴 여성은 거의 없으며, 대신 그 혈통은 어슐러 르 귄, 조애너 러스와 같은 각가들의 등장으로 1950년대와 1970년대에 태동했다는 설이 통용되는 현실을 뒷받침한다. 사실은, 헬프 매거진의 전성기에도 많은 선구적인 여성들이 글을 쓰고 있었고, 그들의 작품은 기이한 이야기를 (주)로 러브크래프트와 밀접하게 관련된 호러 매거진), (갤럭시〉, 〈경이로운 이야기들 Ausing Stones), (충격적인 이야기들 Staring Sene), (소름끼치게놀라운 이야기들 Tinatings Wounter Stries)과 같은 주요 사변 소설 잡지들에실렸다.
역사가들과 문학 비평가들은 이 초기 여성 작가들에 대한 참고자료들, 이를테면 독자 편지 같은 케케묵은 자료들을 발굴해 왔다. 역사가 에릭 레이프 다빈은 저서 『경이로운 파트너들: 여성과 SF의 탄생Pattiners in Wonder: Wornien and the Birth of Science Fiction 1926~1965』(2005)에서펄프 매거진에서 활동했던 여성 작가들을 분류했다. 그는 1926년에서1960년까지 SF 잡지들에 기고했던 203명의 여성들 목록을 추려 냈고,
더불어 1923년에서 1954년까지 기이한 이야기들에 작품이 실렸던127명의 여성들도 발굴해 냈다.
수상 경력에 빛나는 SF 작가 코니 윌리스는 1992년 10월 아이작아시모프의 SF 매거진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이름을 따 1977년 발행하기시작한 미국의 SF/판타지 잡지 옮긴이)에 실린 자신의 기고문 ‘SF가 보지 못한 여성들‘을 통해 초기 펄프 매거진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존재를 지적했다. - P163

18세기 고딕 시절부터 호러 이야기꾼들은 황야 지대나 외국의 땅에 위치한 유령 들린 성들을 제시하면서 비밀스러운 통로들, 눈으로 상대를 따라오는 듯한 움직이는 초상화들, 쩔걱거리는 사슬들에, 필수적으로 지하 감옥(미궁으로 설계되었다면 금상첨화일)을 덧붙여 완성했다.
미국 혁명 이전과 이후의 작가들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배경은 살짝 달라졌다. 워싱턴 어빙, 찰스 브록덴 브라운, 너새니얼 호손 같은작가들은 자신들의 호러 이야기에 초창기 이주자들의 청교도적인 신앙과 원주민들 에 대한 두려움에 영향을 받은 독특한 미국적 요소들을 덧붙였다. - P206

으스스한 숲, 악마, 마녀 같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호러 소설은 지역의 역사와 결부되어 초자연적인 악마, 다른 인종, 폭력적인 과거가 불러온 끔찍한 결과들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된 공포를 다층적으로 다루는 책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미국의 호러 소설은 집을 이런 공포가 싹트고 유령이 출몰하는 전장으로 탈바꿈시킨다. 집은 내밀한 가족 폭력, 트라우마, 고통스러운비밀의 장일 수도 있다. 집은 사람을 가둘 수도 있고 침입자에 포위될수도 있다. 집은 소유자 혹은 설계자 정신의 뒤틀린 모방이 될 수도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서의 집이나 셜리 잭슨의 힐 하우스처럼..
위어드 픽션이 고딕 스타일의 성과 허물어져 가는 저택들에서 주된배경을 옮겨 감에 따라, 작가들 대다수는 여성들인은 몇 가지 중요한 방식들로 이 하위 장르를 발달시켰다. 그들은 독자에게 도메스틱호러가 도시 외곽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고립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보여 주었다. 이런 현상의 주요한 사례는 앤 리버스 시돈스의 『옆집!The(House Next Doot』 (1978)으로, 이 책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상위 중산 계급이 사는 교외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 작가들은 유령 들린 집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서 내적이고도 외적인 호러를 표현했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과 대서양 건너에서 도러시 맥아들, 셜리 잭슨, 대프니 듀 모리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심리적인 영향 탓이라고 제시하는 유령의 집 소설을 발달시켰다.
- P207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집 안 영역에 머무르며 살림을 돌보고 이이를을 보살폈다. 심지어 많은 가정에서 양육자가 모두 맞벌이로 일하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성을 양육, 그리고 살림과 결부시키도록 사회화되었다. 한편으로는 여성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즐거운 가정생활과 보람찬 직업 모두를 가질 수 있다는 문화적 신념 또한 존재한다.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여성들이 이런 이분법과 씨워 왔다.
집과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작가로서의 경력을 키우고싶은 욕구, 유령 들린 집을 다루는 소설들은 여성이 오랜 기간 고심해온 가정 내 문제들에 대한 복합적인 두려움과 걱정들을 담고 있다.
이런 집들에서 유령의 출몰은 가족과 그들을 따라붙는 긴장감에서유발된다. 비밀들과 어긋난 관계들은 초자연적인 활동에 기름을 붓는다. 맥아들과 잭슨의 초점은 엄마와 딸에 있으며, 듀 모리에의 『레베카』에서는 그 초점이 결혼에 있다. 커다란 집 안의 내밀한 공간들도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맥아들의 클리프 엔드와 잭슨의 힐 하우스(그리고 보다 이후에 수전 힐이 쓴 『우먼 인 블랙의 엘 미시 하우스)에 시는 아이들의 놀이방이 듀 모리에의 맨덜리 저택에서는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의침실, 내실, 서재가.
모든 집과 그 과거가 다르듯, 모든 도메스틱 호러 이야기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유령의 출몰에 접근한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엄마와 딸의 관계, 그리고 비밀스럽고 고통스러운 과거에 초점을 둔다.
이 과거는 내전 이후 오하이오와 켄터키에서 살아가는 예전에 노예화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캐릭터들의 깊은 트라우마와 결부되어 있다.  - P208

 1980년에, 호러는 미국에서 주류를 달렸다. 이 시기에 자란 아이들은 프레디 크루거 (웨스 레이븐의 영화 <나이트메어>의 주인공, 희생자들의 꿈에 나타나 꿈속에서 그들을 죽이는데 실제 세계에서도 똑같이 죽게 된다. 옮긴이나가비지 폐일 키즈(일종의 게임용 카드-옮긴이)와 같은 대중문화의 지표들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블록버스터 비디오(지금은 사라진 대형 비디오 대여 체인점-옮긴이) 통로를 다니면서 특정한 VHS 테이프 표지는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렸던 기억이 있다 (성공하지는 못했다). 우리는그런 영화들을 보기 위해 수년간 용기를 모은 끝에 처음으로 핀헤드와 제이슨 부히스(각각 영화 〈헬레이저〉와 〈13일의 금요일>의 주인공-옮긴이)를 접했다. 비디오 대여점들이 공포가 다스리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었다.
공포는 모든 B. 달턴(미국의 서점 체인 옮긴이)의 서가에 늘어선 페이퍼백들 표지에도 기거했다. 모든 식료품점 통로도 안전하지 않았다. 호러와 위어드 픽션이 새천년을 접수한 이야기라면 제8장에서 좀 더 얘기하자, 초기 호러 혁명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엑소시스트)와같은 대성공을 거둔 호러 영화들이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페이퍼백호러 소설의 유행에 불씨를 당겼다. 이제는 사라진 지브라나 레져 같은 상업적인 출판사들과 임프린트들이 사탄, 섹스, 몬스터, 살인으로 점철된 소설들을 정신없이 내뱉었다.
이 모든 것들은 대담하게도 책표지에 버젓이 전시되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모든 페이퍼백들이 충격적인 그림을 실어야 하는 것만 같았다. - P248

고딕이 돌아왔다. 하지만 고딕이 정확히 무엇일까? 이 용어의 의미는 파악하기 힘들다. 보다 적절하게 말하자면, 애매하다. 대개는 ‘분위기 있는‘ 혹은 ‘매력적인‘ 혹은 다른 비슷하게 모호한 형용사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고딕 호러‘라는 표현은 그 분위기가 우울하고 주인공들이 음울한, 쓸쓸한, 그리고 아마도 검은 옷을 입는 창작품을 묘사하는 문구였다. 로맨스, 시대극, 그리고 황량함 역시 떠오른다. 벨벳 옷을입은 슬픈 소녀가 자신의 음울한 저택에서 맴도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녀의 애인은 뱀파이어이거나 적어도 그와 아주 비슷한 존재일것이다. 또한 고딕적이리라. 앞서 언급한 저택에 한 무리의 유령이 출몰한다면,
하지만 제1부에서 논했듯이, 고딕 소설은 강한 문학적 전통과 어둡고 허물어져 가는 성을 침울하게 헤매고 다니는 이상의 핵심적인 특성들이 있다. 고립, 나약함, 가족간의 분쟁, 숨겨진 비밀의 분출과 같은주제를 다루는 소설은 이야기가 황야를 배경으로 하든, 시골 농가를배경으로 하든, 혹은 도시 배경이든 뭐든 간에 의심할 바 없이 고덕적이다.
- P294

우리가 신 고딕이라 부르는, 이런 문학적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이야기들은 18세기 고딕 소설의 엄격한 규칙들을 뒤로하고 대신초자연적인 것을 아우르는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려 애쓰는 주인공들에 초점을 둔다. 전통적인 고딕 이야기에서는 여주인공의 순결이 위험에 처하곤 했다. 현대의 고딕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대개) 여성이지만, 오늘날 위험에 처하는 것은 그녀의 정신이다. 그녀는 초자연적인 힘과 현실에 대한 통제를 잃을 위기에 맞서 분투한다.
신 고딕 작가들은 또한 그들의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 중 일부에 대한 조정책‘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고딕 소설에서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혹은 영국인이 아닌, 혹은 백인이 아닌)이란 악당임을 간단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고딕 작가들은 21세기 독자들이 보다 공감하기 쉬운 다양한 범주의 캐릭터들을 창조하며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든다.
고딕은 사실, 결코 유행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고딕 호러라는 이 새로운 경향은 20세기 중반 셜리 잭슨의 『우리는 언제나 성에서 살았다. 1962), 마이클 맥도웰의 원소들 The Elementalks (1981), 스티븐 킹의 「샤이닝』(1977) 같은 소설들이 등장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 고딕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크림슨 피크> 같은 영화나 쇼타임의 페니 드레드풀), 넷플릭스의 <그레이스 Alias Grace) 같은 TV 시리즈로 정형화되었다. 이런 유행은 또한 코믹스와 그래픽 노블에서도 드러난다. 에밀리 캐롤의 『숲으로 Through the Wools」(2014)와 같은 작품은, 잔혹 동화처럼 읽히는 다섯 편의 극찬받은 그래픽 호러 스토리 모음집이다.
- P295

고딕 호러에 재차 부여된 관심은 현대의 공포에 대한 응답일지도 모른다. 특히, 기술이 아찔한 속도로 발달하면서 이 새로운 혁신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대한 (안녕,블랙 미러[기술 발달이 불러오는 예측 불가한 미래의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는 영국 드라마 시리즈 옮긴이) 호러는 항상 카타르시스를 불러왔다. 호러는 독자가 안전한 장소에서 공포를 경험하고 위험에 맞설 수 있게 해 준다. 세상은 비록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때로는 무서운 방향으로), 신 고딕 소설에서 우리 앞에 출몰하는 유령들은 친숙하다. 유령이 들린 장소 역시 그러하다. 그 장소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우리의 눈을 돌려 과거를 상기시키는 무성하고 썩어 가는 장치이다.
이유야 어떻든, 《오트란토 성 》이후 250년 세월이 지나도록 독자도작가도 아직은 고딕적인 장치들에 질리지 않은 것 같다.
- P198

앞에서 증명했듯이, 여성 작가들은 장르가 탄생한 이래 내내 호러소설을 써왔다. 그리고 그들은 다양한 분파와 하위 범주들에 공헌하며, 그 과정에서 혁신을 이루어내며 이 장르가 나아가도록 했다.
그리고 호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격하고 있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는 호러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독자들은 호러와 사변 소설에 점점 더 손을 뻗고 있으며, 여성들이 쓴 책이 독자들의 책꽂이에 줄을 잇고 있다. 또한 2018년에, 사변 소설과 SF를 쓰는(그의 다른 장르들도 쓰지만) 작가 켈리 링크가 맥아더 펠로우십 (미국의 맥아더재단에서 한 해 가장 창의적인 역량을 보인 이들에게 기금 형식으로 수여한다. 옮긴이)수여자 명단에 올랐다. 이는 때로 어둡고 항상 마법을 다루는 그녀의 단편집 『말썽Citin Titt」이 퓰리처 상 소설 부문 후보에 오른 지 2년 뒤였다.
다시 말해 보자. 맥아더 펠로우십과 퓰리처 상 최종 후보, 사변 소설이니 호러니 위어드 픽션이니는 차치하고, 소설 자체가 이보다 더 큰찬사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남성 작가의 영역이라는 태도가 아직도 존재한다.  - P342

뉴 위어드

위어드 픽션은 1900년대 초기 이래 호러의 하위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고딕이라는 말처럼, 위어드라는 용어 역시 문학계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 1927년 에세이 ‘문학에서의 초자연적인 공포에서, H. P.
러브크래프트는 위어드 픽션이 유령 이야기와 고딕 호러의 장치들을넘어서는 방식으로 불안을 조성한다고 주장했다. 러브크래프트에게기이한 이야기란 아주 가벼운 특성을 지니는데 물리적인 세계를 초월하는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는 우주적 공포, 혹은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알려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아우른다. 위어드 픽션에서일어나는 사건들은 합리적인, 혹은 과학적인 이해를 진실로 벗어나 있다. 기이한 것은, 그것이 우주 바깥에서 오든, 대양 아래서 오든, 혹은머리카락 한 올만큼 떨어진 평행 우주에서 오든 인류에게는 이질적이다. 앤과 제프 밴더미어는 위어드 픽션을 이렇게 정의한다.  - P346

"호러처럼 어둡지만 그 기이함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결코 주어지지 않을 불가해한 것과의 조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거릿 세인트 클레어나 대프니 듀 모리에, 그리고 펄프 소설 시대 그들의 계승자들은 기이한 것을 상업적인 소설, 주로 남성적인 듯 보이는 세계로 진입하는 문으로 이용했다. 사실, 글을 쓰는 여성들은 늘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서, 그리고 생의 깊은 트라우마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상하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이용해왔다. 오늘날 그들은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보다 다양한 형태로 계속해서 그런 글들을 쓰고 있다. 이는 아마도 가부장적인 이 사회에서 여성의 경험이 신빙성 없게 여겨지고 또한… 음… 기이하게 받아들여지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실이 낯선 것, 이상한 것, 다른 것을 포용한다면여성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여성은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한다는것이 어떤 뜻인지 알 뿐 아니라, 그렇게 존재하는 속에서 한껏 즐긴다.
는 의미도 알고 있다. 때문에 여성들이 기이한 것을 쓰려고 몰려드는것이다. 그들은 기이한 것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 가장 이상한 것,
가장 매혹적인 것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정상‘ 사회를 넘어서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점이 우리는 기쁠 뿐이다.
위어드 픽션이라는 용어는 러브크래프트와 20세기 초 그의 동시대작가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하위 장르는 보다 최근에 거듭 부상하고 있다. 소위 뉴 위어드라 불리는 이것은 1990년대에 시작되어 밀레니엄까지 지속되어 왔고, ...... - P347

뉴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화려하다. 그들은 섹시하다. 그들은 부유하다. 그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산다. 브램 스토커의 유럽 태생 귀족적인 악귀가 책 속에 내려앉은 이래, 독자들은 일상의 단조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뱀파이어 이야기들로 몰려들었다. 현대의 뱀파이어들은 그 선임자들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그 플롯들은 현대 독자의 삶에 한발 더 다가들어 있다. 예를 들어,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타, 아르망, 그리고 천사 같은 어린 클라우디아는 아빠가 둘있는 한 가족을 형성한다. 뱀파이어들을 그토록 참을성 있게 만드는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그 어떤 문제도 그들보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 P354

용어

우리가 호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러라는 장르는 정의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결이 다른 이야기속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호러는 저항적인 장르이다. 누군가에게 호러는연쇄 살인범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수 있다. 다른 이는 공포와충격으로 가득한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다른 이는 이 용어를 스릴러나 다크 판타지와 대체 가능한 용어로 이용할지도 모른다. 혼돈을 피하기 위해 여기에 책 전반에 걸쳐 사용한핵심 용어들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정의를 소개한다.

코스믹 호러: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도 거대하고, 너무도 초월적인힘을 마주하여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사람은 보잘것없는 존재라는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야기. H. P. 러브크래프트가 쓴 이야기를하나라도 읽었다면, 코스믹 호러를 읽은 것이다.

고딕 :고딕 문학에는 몇 가지 하위 장르가 있다. 남부 고딕과 고딕로맨스가 두 가지 사례이다. 따로 명시하지 않은 경우, 우리가 언급한고딕은 고딕 호러를 뜻한다. 대체로 고뇌 어린 과거가 현재에 되살아나면서 발생하는 갈등에 사로잡힌 젊은 여성을 다룬다. 전형적으로 버물어져 가는 저택과 유령들이 제시된다.
- P383

호러: 우리는 이 용어를 폭넓게 사용한다. 두렵게 한다면, 몸서리치게 한다면, 오싹하게 한다면, 우리에게 그것은 호러이다. 호러 소설에는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포함될 수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페니 드레드풀: 식스페니, 혹은 페니 블러드로 불리며 18세기와 19세기에 대중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싸구려 종이에 인쇄된 책이었다. 종종이 책들에는 고딕과 호러 이야기들이 담겼다.

펄프: 저렴하게 인쇄된 잡지들로 독자에게 다양한 이야기들, 주로SF와 호러를 소개했다. 20세기판 페니 드레드풀로 생각하면 된다. 펄프라는 용어는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 조잡하게 인쇄된 페이퍼백책들을 뜻하기도 한다.

사변 소설: 이 분야의 문학은 그럴듯한 세계를 상상한다. SF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과학적인 기반을 두지 않은 환상적인 요소들을담은 소설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범주이다. 이 용어는 종종 하나의 이야기 속에 몇 가지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칭한다.

테러: 우리는 앤 래드클리프의 정의를 따른다 (제1부에서 그녀의 이력을보라), 호러는 폭탄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독자를 완전히 파괴하거나혹은 파괴하려 시도한다. 테러는 반면에 독자를 좀 더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데, 절벽 가장자리에 매달 뿐 밀지는 않는다.
- P384

스릴러 :경험상 자기들은 호러나는 용어로 기부되고 신기 않을 때이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차이집이 있다. 라는 독자가 이야기를경험하면서 느끼는 주로 주인공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감정에 대한것이다. 스릴러는 비유적인 똑딱 시계거림, 반응을 밀어내기 위한롯 장치들에 의존한다.

위어드 픽션: 이 장르는 경의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 범주에드는 이야기들은 종종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위어드 이야기들은 단순히 ‘유령이 출몰하는 집‘ 이야기를어서서 그 초자연적인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무엇으로 바꾸어 버린다.
위어드 픽션에서의 긴장감은 코스믹 호러처럼 평범한 주인공이 미지의 것을 대면한 결과인 두려움이라는 감각에 있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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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캐번디시 1623~1673

여성에게 주부 이외의 직업적 선택지가 거의 없던 시기에, 그리고 권리는 심지어 더욱 없던 시기에, 한 여성이 우리가 지금 사변 소설이라 부르는 장르를 예고하는 놀랄 만큼 풍부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마거릿 캐번디시는 고딕 소설이 흥하기 한 세기 전에 자신만의 이질적인 소설을 생산했던 선구자이다. 정의되기를 그토록 거부했던 이 여성에게는 그런 점이 매우 걸맞아 보인다. 그녀는 시인이었다. 그녀는 지성적인 면에서 토머스 홉스- 저명한 영국 정치 철학가- 나 당대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기타 인물들과 견줄 법한 철학자였고, 담대하게도 남성들만이 토론하던 정치와 철학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자서전이라는 문학적 형식이 비교적 새로웠던 시대에 자서전을 썼다. 그에 더하여 희곡들, 에세이들, 소설들을 출간했다. 그리고 캐번디시는 영국 역사상 최초의 문인 유명인사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공공연하게 명성을 추구했던 것은 나름대로 당대의 사회를 조롱하는 방식이었다.  - P18

그리고 이내 마거릿 캐번디시는 과감한 패션이며 뻔뻔하고 경박한 행동거지 덕에 상류 사회의 공동체들 사이에서 ‘미친 매지‘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녀를 당대의 카다시안이라 부르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캐번디시는 사실 자신의 악명을 매우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유명인사로서 자신의 명성을 구축했다. 한번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이 악명 높은 여성을 보려고 몰려든 군중에게 공격당한 적도 있었다. 그녀의 악명이 얼마나 높았냐고? 캐번디시는 여러 번 상류사회를 들쑤셨다. 극장에 가슴을 노출하는 드레스를 입고, 드러난 젖꼭지는 세심하게 빨강으로 칠하고 나타난 적도 있다. 유명한 일기 작가, 새뮤얼 피프스는 그녀를 미친, 오만하고 터무니없는 이라고 일컬은 바 있다.
이는 아마도 캐번디시가 당대의 여성에게 허용된 사회적 역할, 다시말해서 얌전하고 공손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침묵하는 여성이기를 거부했다고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  - P20

여성은 철학이나 정치처럼 ‘남성적인 주제‘라고 간주되는 부분에 대해 발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글을 쓸 줄 안다 해도, 여성은 결코 자신이 쓴글을 출판할 수 없었다. 캐번디시는 홉스나 데카르트 같은 당대의 주요 철학서들을 읽었을 뿐 아니라, 1668년에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논하는 수많은 편지와 에세이들을 출간했다. 당당하게 첫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박은 채로.
- P21

앤 래드클리프 1764~1823

분명히 하자, 그녀는 호러 작가가 아니다. 앤 래드클리프는 독자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려 했다.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가 생생한 느낌을받도록. 그녀는 피와 살인과 끔찍하게 무서운 악당들을 써냈다. 하지만 그녀는 호러 작가가 아니었다. 전혀.
그럴 필요도 없었다. 18세기 영국 독자들은 질리지도 않고 으스스한것들을 원했고, 18세기 후반부에는 고딕 소설이 가장 인기 있는 문학장르였다. 그리고 앤 래드클리프가 등장한다. 1790년대 가장 인기 있는 고딕 로맨스들을 써내며 당대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고 이 장르에 대한 완벽한 공식을 만들면서. 그녀는 지금도 18세기 영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딕 소설가로 여겨지며, 1700년대 마지막 10년간에는 여성을 위한 소설을 쓰는 여성이라는, 유례없이 여성 주도적인한 시대의 최전방에 섰다.
- P25

오늘날, 래드클리프는 그녀가 써낸 장르 분야에서 의 선구가일 뿐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목소리로도 평가된다. 그녀가 보인  특이성(그리고 엄청난 인기 덕분에 이후 여성 작가의 고딕은 남자의 손에 특히 결혼 같은 전통적인 제도를 통해 고통받고 학대받는 여성들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비록 호러 그 자체를 쓰지는 않았지만, 래드클리프는 독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작품은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작가들에 영감을 주었다. 월터 스콧 경, 사드 후작, 심지어 에드거 앨런 포마저 그녀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녀는 성공적인 여성 작가의 사례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그녀의 시대에,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고딕 소설을 쓰게 되면서 비평가들은 그들을 ‘래드클리프 파(派)‘라고 불렀다.
고딕의 친숙한 요소를 없이, 래드클리프의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 없이 호러 장르를 상상하기란 어려우며, 어쩌면 그들 없이는 고딕 호러 소설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30

빅토리아시대의 유령 이야기는 앞선 고딕 소설들과 일정 부분을 공유했다. 특히 고립된, 오래된 영지의 저택, 문명과 동떨어진 배경 등은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유령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결정적으로 고딕과 달랐다. 고딕 작가들은 로맨스와 비현실적일 정도로 흘러넘치는 감정적인 표현을 한껏 즐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빅토리아 시대유령 이야기는 심령 과학과 사회적 사실주의 사이의 흐릿한 경계선상에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유령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산 자와 지식을 교환하기 위해서 어떤 유령들은 단순히 그들의 살아 있는 친척들이 자신이 남기고 떠난 숨겨진 재산을 찾기 원했다.
어떤 유령들은 임박한 운명에 대해 경고했다. 어떻든, 이런 방문들은진지한 연구를 정당화하는 듯이 보였다.
심령론 전파 운동은 1848년에 저 믿기 힘든 폭스 자매에서 비롯됐다. 빅토리아 시대 유령 이야기 역시 1840년대 즈음에 찰스 디킨스가 쓰던 부류의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유령 이야기들이 출간되면서 날개가 돋았다. 두 가지 유행 모두 지나가게 된다. 세기말에 이르면, 냉소주의가 빅토리아 유령 이야기를 대체했고, 심령론은 유명한 영매들이내세와 소통하기 위해 연출 기법에 의존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시들해졌다. 그러나 유령과 유령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개념들 다수가 이 시대에,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장막이 손에 잡힐 듯 실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시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 P65

엘리자베스 개스켈 1810~1865

19세기 여성들은 아내와 엄마로서 훌륭한 살림꾼이 되라는 기대를받았다. 가정이 그들의 영역이었다. 남자들이 도시에 나가 일을 하는동안 아내들은 집에 남아 그날그날의 집안일을 돌보았다.
엘리자베스 개스켈 그녀를 아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미시즈 개스이었던은 자신의 가정생활을 너무도 완벽하게 돌봤던 나머지, 남편은 전혀 모르게 제2의 집을 유지했다.
어떤 식으로 했냐고? 미시즈 개스켈은 유령 이야기를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령 이야기를 쓴 빅토리아 시대 작가라고 하면이내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부터 떠올린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얼핏 떠오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녀는 디킨스의 잡지 <온 가족 이야기 Houschold Words)에 유령 이야기를 기고했고, 스스로도 유력한 작가였다. 그녀는 『메리 바턴 Mary Barton (1848)으로 처음 디킨스의 찬사를 얻었다. 이 소설은 영국 사회의 사회적 문제들을 진단했고, 이는 디킨스 역시 흥미를 품었던 주제였다.
- P65

개스켈은 당대의 사회 문제들을 비판하는 사실주의적인 소설들로가장 유명하다. 1830년대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딸들은 영국의 맨체스터에 살았다. 당시 맨체스터는 산업과 급진적인 정치의 온상이자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의 소우주였다. 한때 작은 마을이었던 그곳은 산업화와 공장 작업의 폭발적인 증가 덕분에 번창하고 있었다. 아동의 노동은 흔했고 실업 역시 흔했다.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필요치않았기 때문에 공장들은 근로자들을 예고도 없이 종종 해고하곤 했다.
노동자 계급이 증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귀족적인 상류 계급의 증가를 따라잡을 만큼은 아니었다. 가난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특히 여성의 곤경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개스켈의 열망은 가장 널리알려진 그녀의 몇몇 작품에서 드러났다.  - P69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새로운 종류의 고딕 소설을 개척했다. 초기 고딕 소설들, 특히 앤 래드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들에서는 플롯이 설명된 초자연 현상‘(말하자면, 래드클리프의 여주인공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구혼자들에게 쫓기고 있었거나 그들의 유산 때문에 가스라이팅을당한 것이었다)을 맴돌았다. 개스켈 시대의 여성들이 글을 쓸 무렵에는,
래드클리프의 붕괴된 성과 파괴된 수도원 같은 배경들이 오래된 영국의 저택들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고딕 소설의 배경은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보다 사실적으로 전환괸 반면, 이 이야기들 속 유령들은 덜 사실적이 되었다. -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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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피를 즐기는 괴물들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정상성‘이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프리모 레비는 "괴물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진정으로 위협적인 존재가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나 적다. 그런데 더 위험한 존재들이 있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다"라고 인정한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논쟁적인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열정적이긴 하지만 민망할 만큼 진부한 태도를 지닌 어떤 하급 공무원을 언급한다. 그는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선악을 구별하는 데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렌트는 이 사람의 죄를 덜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각자의 내면에도 비인간성이 존재하고, 악의 평범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사고‘ 해야 하며, 결코 이성을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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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29일, 공판이 시작된 4월 11일에서 10주일이 지나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제출을 끝냈고, 세르바티우스 박사가 피고를 위해 변론을 개시했다. 8월 14일, 114회의 공판이 있은 다음 모든 심리가 종결되었다. 그리고 법정은 4개월 동안 휴정에 들어갔고 12월 11일에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다시 개정했다. 이틀 동안 5차례의 개정을 거듭하면서 세 판사가 244항목으로 이루어진 판결문을 낭독했다. 검찰이 주장한 ‘음모‘ 죄는 기각되었는데, 이 항목으로 그는 주요 전범이 되어 최종 해결책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자동적으로 책임지도록 되어있었다. 그들은 비록 몇몇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를 시키기는 했지만 15개의 기소 항목 모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죄목과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범했다. 즉 1)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상함으로써, 2)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신체적인 파멸로 이끄는상황으로 몰아감으로써, 3) 그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끼침으로써, 4)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유대인 여성들의 출산을 금하고 임신을 방해함으로써 이 민족을 파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에 대해범죄를 저질렀다는 4가지 기소 항목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1941년 8월 이전의 시기에 대해 부과된 어떠한 죄목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는데, 그 시점은 총통의 명령이 전달된 때였다. 그 이전의 시기의 활동들과 베를린 및 빈, 프라하에서 그는 ‘유대인을 파멸하려는‘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 P339

5번에서 12번까지의 기소 항목은 ‘인류에 대한 범죄‘를 다루것이었다. 이것은 (집시와 폴란드인들과 같은) 비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막론하고 이들에게 저지른 살인을 포함한 모든 다른 범죄들을 포함하지만, 이러한 범죄가 이러한 민족 전체의  파멸을 의도한 가운데 저질러진 것이 아닌 까닭에 이스라엘의  법에서는 이상한 개념이었다. 따라서 아이히만이 총통의 명령에 앞서 한 모든 일들과 비유대인에게 행한 모든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총괄되었다.
여기에다 다시 한번 그 이후에 유대인에 대해 범한 그의 모든 범죄들이 더해졌는데 왜냐하면 이런 범죄는 일상적인 범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5항에서는 그에게 1항과 2항에서 열거된 것과 동일한 죄목이 부과되었고, 6항에서는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이유에서 유대인을처형‘한 죄목이 부과되었다. 7항은 이들 유대인에 대해.. 살인과 연관한..... 재산의 약탈을 다루고 있으며, 8항은 이 모든 행위들을 ‘전쟁 범죄‘로 다시금 종합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일들 대부분이 전쟁기간 동안 저질러졌기 때문이었다. 9항에서 12항까지는 비유대인에 대한범죄를 다루고 있다. 9항에서는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들을 고향에서… 추방한 죄목을 다루고 있으며, 10항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1만 4000명의 슬로베니아인들을 추방한 죄목을 다루었고, 11항에서는 수천 명의 집시들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한 것을 다루었다. 그러나 판결문에서는 "피고가 집시들을 파멸 지역으로 이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가 우리 앞에서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말의 의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대량학살 죄목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집시들의 처형이 상식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아이히만은 경찰심문 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힘러의  명령이었다는 것, 유대인에 대해서 있었던 것과 같은 ‘지시사항‘이 집시들에게는 없었다는 것, 그리거 ‘집시 문제‘에 대해서는 ‘기원과 관습, 습관, 조직......민요......경제‘등과 같은 것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없었다는 것을 아히이만은 희미하게나마 기억했다. - P340

그는 자신이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P349

아이히만의 재판에 내려진 반론들은 다음과 같은 세 부류이다. 첫째반론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제기된 것으로 이번에도 다시 나왔다. 아이히만은 소급법에 의해 재판받았으며 승자의 법정에 섰다는 것이다.
둘째 반론은 단지 예루살렘 법정에만 적용되는 것인데, 이는 이 법정이 재판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점과 납치 행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제기되었다. 그리고 끝으로 가장 중요한 반론은 혐의 자체에 대한 것으로 아이히만은 ‘인류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유대 민족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가 재판을 받고있는 법에 대해 제기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론은 이 범죄를 재판하는 데 유일하게 적절한 곳은 국제 재판소라는 논리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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