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캐번디시 1623~1673
여성에게 주부 이외의 직업적 선택지가 거의 없던 시기에, 그리고 권리는 심지어 더욱 없던 시기에, 한 여성이 우리가 지금 사변 소설이라 부르는 장르를 예고하는 놀랄 만큼 풍부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마거릿 캐번디시는 고딕 소설이 흥하기 한 세기 전에 자신만의 이질적인 소설을 생산했던 선구자이다. 정의되기를 그토록 거부했던 이 여성에게는 그런 점이 매우 걸맞아 보인다. 그녀는 시인이었다. 그녀는 지성적인 면에서 토머스 홉스- 저명한 영국 정치 철학가- 나 당대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기타 인물들과 견줄 법한 철학자였고, 담대하게도 남성들만이 토론하던 정치와 철학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자서전이라는 문학적 형식이 비교적 새로웠던 시대에 자서전을 썼다. 그에 더하여 희곡들, 에세이들, 소설들을 출간했다. 그리고 캐번디시는 영국 역사상 최초의 문인 유명인사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공공연하게 명성을 추구했던 것은 나름대로 당대의 사회를 조롱하는 방식이었다. - P18
그리고 이내 마거릿 캐번디시는 과감한 패션이며 뻔뻔하고 경박한 행동거지 덕에 상류 사회의 공동체들 사이에서 ‘미친 매지‘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녀를 당대의 카다시안이라 부르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캐번디시는 사실 자신의 악명을 매우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유명인사로서 자신의 명성을 구축했다. 한번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이 악명 높은 여성을 보려고 몰려든 군중에게 공격당한 적도 있었다. 그녀의 악명이 얼마나 높았냐고? 캐번디시는 여러 번 상류사회를 들쑤셨다. 극장에 가슴을 노출하는 드레스를 입고, 드러난 젖꼭지는 세심하게 빨강으로 칠하고 나타난 적도 있다. 유명한 일기 작가, 새뮤얼 피프스는 그녀를 미친, 오만하고 터무니없는 이라고 일컬은 바 있다. 이는 아마도 캐번디시가 당대의 여성에게 허용된 사회적 역할, 다시말해서 얌전하고 공손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침묵하는 여성이기를 거부했다고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 - P20
여성은 철학이나 정치처럼 ‘남성적인 주제‘라고 간주되는 부분에 대해 발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글을 쓸 줄 안다 해도, 여성은 결코 자신이 쓴글을 출판할 수 없었다. 캐번디시는 홉스나 데카르트 같은 당대의 주요 철학서들을 읽었을 뿐 아니라, 1668년에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논하는 수많은 편지와 에세이들을 출간했다. 당당하게 첫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박은 채로. - P21
앤 래드클리프 1764~1823
분명히 하자, 그녀는 호러 작가가 아니다. 앤 래드클리프는 독자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려 했다.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가 생생한 느낌을받도록. 그녀는 피와 살인과 끔찍하게 무서운 악당들을 써냈다. 하지만 그녀는 호러 작가가 아니었다. 전혀. 그럴 필요도 없었다. 18세기 영국 독자들은 질리지도 않고 으스스한것들을 원했고, 18세기 후반부에는 고딕 소설이 가장 인기 있는 문학장르였다. 그리고 앤 래드클리프가 등장한다. 1790년대 가장 인기 있는 고딕 로맨스들을 써내며 당대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고 이 장르에 대한 완벽한 공식을 만들면서. 그녀는 지금도 18세기 영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딕 소설가로 여겨지며, 1700년대 마지막 10년간에는 여성을 위한 소설을 쓰는 여성이라는, 유례없이 여성 주도적인한 시대의 최전방에 섰다. - P25
오늘날, 래드클리프는 그녀가 써낸 장르 분야에서 의 선구가일 뿐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목소리로도 평가된다. 그녀가 보인 특이성(그리고 엄청난 인기 덕분에 이후 여성 작가의 고딕은 남자의 손에 특히 결혼 같은 전통적인 제도를 통해 고통받고 학대받는 여성들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비록 호러 그 자체를 쓰지는 않았지만, 래드클리프는 독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작품은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작가들에 영감을 주었다. 월터 스콧 경, 사드 후작, 심지어 에드거 앨런 포마저 그녀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녀는 성공적인 여성 작가의 사례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그녀의 시대에,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고딕 소설을 쓰게 되면서 비평가들은 그들을 ‘래드클리프 파(派)‘라고 불렀다. 고딕의 친숙한 요소를 없이, 래드클리프의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 없이 호러 장르를 상상하기란 어려우며, 어쩌면 그들 없이는 고딕 호러 소설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30
빅토리아시대의 유령 이야기는 앞선 고딕 소설들과 일정 부분을 공유했다. 특히 고립된, 오래된 영지의 저택, 문명과 동떨어진 배경 등은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유령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결정적으로 고딕과 달랐다. 고딕 작가들은 로맨스와 비현실적일 정도로 흘러넘치는 감정적인 표현을 한껏 즐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빅토리아 시대유령 이야기는 심령 과학과 사회적 사실주의 사이의 흐릿한 경계선상에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유령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산 자와 지식을 교환하기 위해서 어떤 유령들은 단순히 그들의 살아 있는 친척들이 자신이 남기고 떠난 숨겨진 재산을 찾기 원했다. 어떤 유령들은 임박한 운명에 대해 경고했다. 어떻든, 이런 방문들은진지한 연구를 정당화하는 듯이 보였다. 심령론 전파 운동은 1848년에 저 믿기 힘든 폭스 자매에서 비롯됐다. 빅토리아 시대 유령 이야기 역시 1840년대 즈음에 찰스 디킨스가 쓰던 부류의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유령 이야기들이 출간되면서 날개가 돋았다. 두 가지 유행 모두 지나가게 된다. 세기말에 이르면, 냉소주의가 빅토리아 유령 이야기를 대체했고, 심령론은 유명한 영매들이내세와 소통하기 위해 연출 기법에 의존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시들해졌다. 그러나 유령과 유령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개념들 다수가 이 시대에,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장막이 손에 잡힐 듯 실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시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 P65
엘리자베스 개스켈 1810~1865
19세기 여성들은 아내와 엄마로서 훌륭한 살림꾼이 되라는 기대를받았다. 가정이 그들의 영역이었다. 남자들이 도시에 나가 일을 하는동안 아내들은 집에 남아 그날그날의 집안일을 돌보았다. 엘리자베스 개스켈 그녀를 아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미시즈 개스이었던은 자신의 가정생활을 너무도 완벽하게 돌봤던 나머지, 남편은 전혀 모르게 제2의 집을 유지했다. 어떤 식으로 했냐고? 미시즈 개스켈은 유령 이야기를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령 이야기를 쓴 빅토리아 시대 작가라고 하면이내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부터 떠올린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얼핏 떠오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녀는 디킨스의 잡지 <온 가족 이야기 Houschold Words)에 유령 이야기를 기고했고, 스스로도 유력한 작가였다. 그녀는 『메리 바턴 Mary Barton (1848)으로 처음 디킨스의 찬사를 얻었다. 이 소설은 영국 사회의 사회적 문제들을 진단했고, 이는 디킨스 역시 흥미를 품었던 주제였다. - P65
개스켈은 당대의 사회 문제들을 비판하는 사실주의적인 소설들로가장 유명하다. 1830년대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딸들은 영국의 맨체스터에 살았다. 당시 맨체스터는 산업과 급진적인 정치의 온상이자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의 소우주였다. 한때 작은 마을이었던 그곳은 산업화와 공장 작업의 폭발적인 증가 덕분에 번창하고 있었다. 아동의 노동은 흔했고 실업 역시 흔했다.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필요치않았기 때문에 공장들은 근로자들을 예고도 없이 종종 해고하곤 했다. 노동자 계급이 증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귀족적인 상류 계급의 증가를 따라잡을 만큼은 아니었다. 가난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특히 여성의 곤경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개스켈의 열망은 가장 널리알려진 그녀의 몇몇 작품에서 드러났다. - P69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새로운 종류의 고딕 소설을 개척했다. 초기 고딕 소설들, 특히 앤 래드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들에서는 플롯이 설명된 초자연 현상‘(말하자면, 래드클리프의 여주인공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구혼자들에게 쫓기고 있었거나 그들의 유산 때문에 가스라이팅을당한 것이었다)을 맴돌았다. 개스켈 시대의 여성들이 글을 쓸 무렵에는, 래드클리프의 붕괴된 성과 파괴된 수도원 같은 배경들이 오래된 영국의 저택들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고딕 소설의 배경은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보다 사실적으로 전환괸 반면, 이 이야기들 속 유령들은 덜 사실적이 되었다. -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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