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어떻게 착취되는가
버마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놓여 있다. 민족학적으로 인도차이나에 속한다. 크기는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합친 것보다 3배 더 크고, 인구는 1400만 명이며, 그들 중 대략 900만 명이 버마족이다. 나머지는 중앙아시아의 온대 초원지역에서 여러 기간에 걸쳐 버마에 이주해 온 수많은 몽골족과 영국 지배 이후 들어온 인도인들이다. 버마인들은 불교를 신봉하고 나머지 국민들은 여러 이교도 신을 숭배한다. 버마에 살고 있는 이 다양한 혈통을 가진 사람들과 말하기 위해서는 120여 개의 언어와 방언을 알아야 한다. 인구밀도가 잉글랜드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이 나라는 세계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 자원은 최근에 개발되기 시작하고 있다. 주석, 텅스텐, 옥, 루비 등이 풍부하며, 이밖에도 엄청난 양의 광물자원이 매장되어있다. - P47
지금 이 나라는 세계 석유의 5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는데, 석유 매장량은 좀체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큰 부의 원천은 80에서 90퍼센트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벼를 생산하는 논이라 할 수 있다. 벼는 버마를 남북으로 관통해서 흐르는 이라와디 강 주변의 모든 분지에서 경작된다. 이라와디 강이 매년 많은 양의 충적토를 흘려보내는 남부지방의 거대한 삼각주에 있는 평야는 엄청나게 비옥하다. 질과 양에 있어서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쌀의 수확으로 버마는 인도, 유럽, 심지어 미국까지 쌀을 수출한다. 게다가 연중 기온 차이는 인도만큼 불규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크지도 않다. 풍부한 강우량, 특히 남부지방에 비가 많이 내려 가뭄 걱정이 없고 더위도 강렬하지 않다. 그래서 이곳의기후는 대체로 열대 지역 중에서 가장 건강에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버마 시골이 넓은 강, 높은 산, 사시사철 푸른 숲, 밝은 색깔의 꽃, 이국적 과일 등이 널려 있는 정말로 아름다운 장소라는 것을 덧붙여 말한다면, 지상의 낙원‘이라는 구절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니 영국 사람들이 이 나라를 손에 넣으려고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820년 영국인들은 이 거대한 지역을 점령했고, 마침내1882년에 유니언 잭이 미얀마의 거의 모든 영토 위에 나부끼게되었다. 미개 부족들이 살고 있는 북쪽 산악지역은 최근까지 영국인의 손에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쉽게 말하면 평화로운 합병이고 완곡하게 말하면 ‘평화로운 침투‘를 의미하는 과정 덕분에 이미 점령된 지역과 똑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 P48
이 글에서 나는 대영제국주의의 이런 징후에 찬사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모든 제국주의 정책의 논리적 결과라고 말해두고 싶다. 버마에서 영국 행정부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경제적 및 정치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이다.
우선 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대영제국주의 통제 하에 있는 인도 지역의 모든 식민정부는 필연적으로 독재적이다. 왜냐하면 군대의 위협만이 수백만 명의 피식민주의자들을 진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독재는 민주주의라는 가면 뒤에 숨겨져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동양인들을 지배하는 데 영국 사람들이즐겨 사용하는 속담은 ‘동양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유럽 사람에게 결코 시키지 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절대 권력은 영국 사람들이 쥐고 있지만 일일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업무상 원주민들과 접촉을 해야 하는 하급 공무원 자리는 그 지방에 거주하는 원주민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버마에서 하급 치안판사, 경감까지의 모든 경찰, 우체국 직원, 행정직원, 마을 이장 등은 모두 버마인들이다. 최근에 여론을 잠재우고 우려할 만한 민족주의 소요사태를 막기 위해 영국은 교육받은 원주민 후보들을 받아들여 몇 개의 요직에 앉히기로 결정했다. 원주민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제도는 세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원주민들은 유럽인들보다 적은 봉급을 받는다. - P49
두 번째, 그들은 같은 원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법적 분행을 쉽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 그들은 그들에게 생계비를 지급해주는 정부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인들이나 어느 정도 교육받은 계층과 밀접한 협조를 이어나감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불만이 생길 경우이들 계층에서 반란 지도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 물론 버마는 인도의 각지역처럼 의회 (언제나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는)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그 의회는 힘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권도 정의롭게 발동되는 경우가 없다. 식민정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정부의 꼭두각시들이다. 식민정부는 반항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 꼭두각시를 이용해 그 싹을 미리 잘라버린다. 게다가, 각 지역에는 영국이 임명하는 지사가 있다. 지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처럼 절대적인 거부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영국 식민정부가 본질적으로 독재적일지라도 그들이 버마에서 인기가 없는것은 결코 아니다. 영국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물론 버마인들에도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도로와 운하를 건설하며 병원과 학교를 만들고 법과 질서를 세운다. 게다가 결국 버마인들은 땅을경작하는 데 몰두한 소작농에 불과하다. 그들은 독립주의자로 나아가는 지적 발전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 P50
버마인들에게 그들의 마을은 그들의 소우주에 해당된다. 논밭에서 평화롭게 농사짓도록만 해주면 그들은 자신의 주인이 백인이든 흑인이든상관하지 않는다. 버마인들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냉담하다는 사실은 영국인들로 구성된 2개 보병 대대, 인도인들로 구성된 10개보병 대대와 기마경찰 정도만이 이 나라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이 인도인들로 구성된1만 2천 명의 군인들만 있으면 1천4백만 명의 인구를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것이다. 식민정부에 가장 위험한 적은 젊은 지식인 계급이다. 만일 이계층 사람들의 수가 많아진다면, 어쩌면 이들은 혁명의 깃발을들어 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첫째로 버마인들은 대다수가 소작농이다. 둘째로 영국 정부는 버마인들에게 단지 심부름꾼, 하급 공무원, 하찮은 변호사 서기, 그 밖의 다른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길러낼 만큼의 별로 유익하지 않은 지식만을 가르치려 할 뿐이다. 기술과 산업 지식을 가르쳐주는 일은 절대 없다. 인도 전역에 퍼져 있는 이 규칙의 목적은 인도를 영국과 경쟁할 수 있는 산업국가로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제대로 교육받은 버마인들은 대체로 모두 영국에서공부한 사람들이며, 그 결과 이들은 부유한 소수 계층에 속한다. 그래서 버마에는 지식 계급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국에 대한 반역을 부추길 수 있는 여론 형성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P51
경제적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미얀마 사람들은 대체로 무지해서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분노도 표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현재로선 그들은 큰 경제적 손실도 입지 않고 있다. 영국인들이 광산과 유전을 장악하고 있고 목재 산업도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모든 중개인, 브로커, 제분업자, 수출업자들이 쌀로부터 엄청난 부를 긁어모으고 있는데도 정작 생산자인 원주민 농민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쌀이나 석유로 많은 돈을 벌어들여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업가들이 이 나라의 복지에써야 할 돈을 쓰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돈은 지방세도 내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가 영국에서 소비된다. 솔직히 말해 영국 사람들은 버마를 뻔뻔스럽게도 도적질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으로선 버마 사람들이 이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나라는 부유하고, 그들의 인구는 드문드문 산재해 있으며, 모든 동양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욕심이 적어 그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땅패기를 경작하는 소농들은 말하자면 마르코 폴로 시절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수준 그대로 살고 있다. 원한다면 그들은 적당한 가격으로 미개척지를 살 수 있다. - P52
그들은 몹시도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체로 그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배고픔과 실업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노동이 있고 굶어죽지 않을 식량이 있다. 불필요하게 뭘 걱정하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머지않아 국가의 거대한 부가 쪼그라들면서 버마 사람들은 서서히 고통받기 시작할 것이다. 버마가 전쟁이후 어느 정도 개발되고는 있지만, 이미 소농들은 20년 전보다더 가난하다. 그들은 토지세의 과중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따라서 수확이 증가해도 늘어난 세금을 벌충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노동자들의 임금 또한 뛰는 생활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영국 정부가 인도인들이 버마에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허가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굶어죽기 직전의 인도인들은 그들의 땅을 떠나 버마로 들어와 임금을 거의 받지 않고 밥만 먹여줘도 일을 해서, 버마인들이 볼 때 인도인들은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되어버렸다. 이 외에도 인구의 가파른 증가가 있다. 작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0년 만에 1천만 명이나 증가했다. 모든 인구과잉 국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조만간 버마인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반(半)노예상태로 전락할 것이며, 더욱이 실업문제도 불거져 나올 것이다. 그때가 되서야 그들은 오늘날 거의 의심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 이를테면 유전, 광산, 제분업, 쌀의생산과 판매 등이 영국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자신의 산업적 무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 P53
버마에 대한 영국의 정책은 인도에서와 똑같다. 인도에서의 산업정책은 의도적으로 낙후시키는 것이다. 인도는 손으로 제작할수 있는 기본 필수품 정도만 생산 가능하다. 이를테면 원양선을건조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소총, 시계, 전구 같은것도 만들 수 없다. 동시에 그들은 서구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공장에서 만든 제품에 의존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영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의 중요한 배출구 역할을 하는것이다. 대외 경쟁은 턱없이 높은 관세의 장벽에 막혀 있다. 그래서 두려워할 게 없는 영국 공장 소유주들은 시장을 마음대로 주물러 엄청난 이득을 챙긴다. 버마인들은 아직은 크게 고통 받지않고 있는데 이 나라가 대체로 농업국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마인들은 모든 동양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인들과 접촉함으로써 그들의 아버지 세대에서 없었던 현대 산업제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그 결과 영국인들은 버마에서 두 가지방법으로 도둑질을 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버마의 천연자원을 약탈하고 있고 두 번째는 이곳에서 버마인들이 필요로 하는 제조품을 팔 독점권을 행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버마인들은스스로 산업자본주의자가 될 희망을 가지고 산업자본주의에 휘말려들게 된다. 게다가 인도인들의 경우처럼 버마인들도 순전히군사적 고려 때문에 대영제국의 지배하에 있다. - P54
그들은 사실상 배를 건조할 수도 없고, 총이나 현대 전쟁에 필요한 그 밖의 무기를 만들 수도 없다. 만일 영국인들이 현 상태로 인도를 포기한다면, 인도의 주인만 바뀌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 나라는 다른 강대국에 의해 침략되고 착취될 것이다. 영국의 인도 지배는 본질적으로 군사 보호를 상업 독점과 교환하는 데 놓여 있지만, 이거래는 인도의 모든 영역에까지 지배가 미치는 영국에 훨씬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버마가 영국인들로부터 부수적인 이득을 취한다해도 버마는 대단히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금까지 영국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원주민들을 심하게 억압하지 않고 있다. 버마인들은 아직도 농업 소농에서 제조 산업분야의 노동자로 탈바꿈하는 과도기의 초기단계에 놓여 있다. 그들의 상황은 상업과 산업에 필요한 자본, 건설 자재, 지식, 영향력 등이전적으로 외국인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 빼고 18세기 유럽의 상황과 비교될 수 있다. 그래서 버마인들은 독재정치의 보호 하에 놓이게 되었다. 독재정치는 그 자체를 위해 그들을지켜주지만 그들의 효용성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내팽개쳐버릴것이다. 대영제국과 그들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이다. 주인이 좋은가, 나쁜가? 이것은 질문이 되지 못한다. 주인의 지배는 독재적, 쉽게 말하자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두자. - P55
버마인들은 지금까지 저항의 명분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국가의 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들은 자본주의가 자체의 존립을 위해 지금까지 그들에게 신세져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부당하게 대우받아왔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 1929년 5월 4일, <시민의 진보>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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